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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공연창작집단 뛰다,『휴먼 푸가』 (2019)

 

공연창작집단 뛰다의 마지막 공연이라는 『휴먼 푸가』를 봤다. (훼이크였다! 내년에 광주에서, 그리고 폴란드에서도 휴먼 푸가를 공연한다고 한다!!!) 뛰다가 소재한 화천의 예술텃밭 극장에서 한번, 그리고 서울 남산예술극장에서의 마지막 공연으로 두번. 

 

"휴먼 푸가"라는 이름에서 두 가지 다른 작품이 떠오른다. 하나는 당연히 『휴먼 푸가』가 기반으로 했던 텍스트인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의 바바라 스미스의 영역본 제목 Human Acts이며, 다른 하나는 파울 첼란의 「죽음의 푸가」.

 

학생 시절 퍼포먼스는 지겹도록 봤지만, 연극을 많이 본 편은 아니었다. 추상적인 퍼포먼스는 지겹도록 봐 왔지만, 『휴먼 푸가』처럼 추상성을 매체로 한 것만 같은 퍼포먼스는 잘 보지 못했다. 눈 앞에서 퍼포머들이 살아 움직이고 말을 하고 악기를 연주하고 오브제를 다루는데도, 연극이 영화보다도, 문학보다도 더 멀리 느껴졌다. 끈질기게 보여주지 않는 연극 같았다. 동시에, 퍼포먼스가 강렬해서인지, 어떤 다른 이유에서인지, 다른 무언가를 보거나 생각하게 하는 여유를 주지는 않았다. 시각적으로 상상하게 만들어주지 않는 연극인 것 같았다. 연극의 각 장면부터 시작해서, 텍스트, 배우의 말과 몸짓, 그리고 악기의 연주는 잘게 쪼개어져서 맥락없이 반복되는 와중에 무대 위 상황과 때때로 맞물렸다. 잘게 쪼개진 배우의 몸짓이 오브제와 같이 수행될 때는, 배우와 오브제가 서로 상호작용한다기 보다 서로 다른 차원에 있으면서 조우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소설에서 죽은 사람이 자신의 시체를 보기만 할 뿐,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것처럼. 한강의 텍스트(혹은 프리모 레비와 같은 다른 레퍼런스)에서 가져온 듯한 대사들은, 정말 텍스트같지 않은 대사들, 아니면 대사같지 않은 텍스트들이었다. 그래서 독일어를 문장, 단어, 음절 단위로 쪼개고 쪼개며 더 쪼갤 수 없을 때까지 독일어를 학대하는 첼란이 떠오른 것 같다. 화천 공연이 끝나고 이런 생각에서 왜 "휴먼 푸가"라고 이름을 지었나요? 라고 물어봤지만 대답을 듣지는 못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죽은 김진수 옆에 놓여져 있던 사진을 설명하는 장면이다 (물론 사진은 오브제로 쓰이지 않았다. 수많은 무색 투명병과 까만 의자만 있었을 뿐). 중고등학생이 계단에서 나란히 누워 죽어있는 사진을 설명하며, 배우는 이 학생들이 죽기 전에, 자신과 김진수를 비롯해 도청을 지키고 있던 청년들은 어둠 속에서 계엄군이 계단을 올라오는 걸 보면서도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고 했다. 총을 들었지만, 쏘지는 못했다고 했다. 이 장면이 가장 인상깊게 남았던 이유는 병역거부자 오경택 씨의 재판을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2019년 4월 2일, "양심적 병역거부"의 진위를 가리려는 2심 공판에서 검사는 오경택씨에게 5.18의 상황에서 시민군이 총을 든 것이 폭력 행위라고 생각하는지, 피고의 양심에 반하는 것인지에 대해 물었다. 오경택씨는 한참을 생각한 후, 자신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총을 들었을 것 같다고 대답했다. 오경택 씨의 변호사는, 만약 오경택씨가 전남도청에 남았다면 계엄군을 쏘았을 것 같나고 오경태씨에게 질문했다. 역시 한참을 생각한 후 오경택 씨는 그러지 못했을 것 같다고 대답했다. 검사는 이를 언어유희라고 비판했고, 오경택씨의 양심은 가변적인 것이라며 양심적 병역거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오경택씨는 5월 16일에 유죄를 판결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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