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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극단 신세계, 『별들의 전쟁』(2021)

생각을 보다 더 잘 정리하기 위한 조금 두서없는 감상 끄적이입니다. 보다 두서있는 글인  이길보라, 『기억의 전쟁』 리뷰를 참조하면서 빗대보시면 이해에 도움이 될 듯도,안 될 듯도.

점자로 된 팜플렛이 개인적으로 내게는 너무 의미있는. 그리고 파인트 잔 잘 쓸게요

『별들의 전쟁』은 2018년 4월 열렸던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에 대한 시민평화법정"을 바탕으로 만들어져 상연된, 극단 신세계의 공동창작 연극 작품이다. 실제로 시민평화법정을 주도했던 한겨레 고경태 기자, 한베평화재단 구수정 전 이사, 시민평화법정 조사팀 간사 심아정 선생님, 민변의 박선영 변호사, 그리고 『기억의 전쟁』을 만든 이길보라 감독의 자문을 받았으며 상연기간 내내 공연장소인 아르코예술극장 입구 근처에서는 한국의 베트남전 참전 역사를 왜곡하는 연극을 반대한다는 팻말을 걸고 유인물을 나눠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연극은 "재판극"으로 소개되었는데, 이는 재미있게도 실제 시민평화법정 준비과정에 있었던 한 일화를 상기시켰다. 준비기간에 있었던, 법률팀, 조사팀, 총무팀 등으로 구성된 전체 워크숍 당시, 연극연출가 한 분이 자문으로 섭외되어 있었다. 시민평화법정, 즉 트리뷰널Tribunal은 실제 법적 구속력이 있는 법정이 아니지만, 실제 법정에서 잘 다뤄지지 못하거나 않는 사회적 중대사안을 대중적으로 환기시키고, 법학계 및 법조계에서 논의를 촉발하며, 실제 소송 등으로 이어지기 위한 초석으로도 여겨진다. 평화법정의 법률팀은 민변의 변호사들로 구성하고 있었는데, 핵심적 역할을 맡고 있던 변호사 중 한명인 (모 선생님이 지어준 별명이 "똘똘이 스머프"였던) 박 모 변호사는 실제 법정에 가깝도록 엄밀하고 엄격한 분위기와 절차 그리고 법리다툼 프로세스를 고수하기를 원했다. 이에 반해 연극연출가는, 따지고 보면 (시민법정만이 아니라) 실제 재판이라는 것 자체가 연극적 요소가 굉장히 다분한 것이다. 재판을 위해 고안된 의상(코스츔)을 입으며, 정해진 용어와 어투로 버벌 퍼포먼스verbal performance를, 그리고 다분히 인위적이라 볼 수 있는 행동과 제스쳐를 통해 그 과정을 수행해 나가는 것이니까. 나라면 이러한 관점에 입각해 시민평화법정을 접근할 것이다, 라는 취지의 코멘트를 남겼다. 박 모 변호사는 굉장히 이 코멘트를 불편해했다. 그리고 시민평화법정은 박변호사가 원하는 방향으로 기획되어 흘러갔고, 적어도 내가 아는 한 그 누구도 공식적인 자리에서 시민평화법정 혹은 재판의 연극성을 거론한 적은 없다. 재판trial, 시민평화법정tribunal, 그리고 연극theatre이 이루는 이 오묘한 관계가 연극을 보는 나의 맥락을 설정했다.  

 

공연에 앞서 나는 "굳이 재판을 연극으로?"라는 불신을 갖고 있었다. 왜냐하면 시민평화법정이 애초에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중 하나는 폭넓은 문제를 다루고 의제화할 수 있는 역량의 부족이었다. 행사 자체가 법률팀이 주인공이 되는 행사였기 때문에, 조사팀의 역할은 물론 배정된 예산이 극히 제한적이었던 것, 생존자 인터뷰 필드워크에 참여했던 조사팀 중에서 아무도 베트남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 (한국에서 베트남 연구로 이름있는 학자는 법정준비기간 막바지에 참여했던 심주형을 제외하고 단 한명도 참여하지 않았다), 그리고 과거 2000년대 초중반에 같은 문제를 다뤘던 조사인력이 일궈놓은 자산들을 넘겨받는 과정이 매우 단절적이어서, 조사팀의 노동량 중 많은 부분이 이미 20년 전에 확보된 자료 확인 및 분석에 치중되어 있었다는 것 등이 요인이었다. 어쩌면 시민평화법정이 법률팀을 주인공으로 하는 행사이기 때문에, 위안부 문제를 주로 "한일외교문제," 즉 국제법 위반문제로 끌고 나가던 정의연식 운동방식을 연상시켰을 수도 있기 때문에 그 수많은 "베트남 전문가"들이 (어느정도 현명하게도) 참여를 꺼려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조사팀 역사학자 장 모 선생님은 그 전문가 선생님들이 참여 안했다는 사실에 빡쳐했지만) 따라서 조사팀은 (아직도) 베트남에서의 한국군 학살문제에 있어서 면피용이 아닌 방식으로 미군의 역할과 책임을 물을 역량이 없고, (한국 내 뿐만 아니라 영미 학술권 내에서도조차 매우 희박한) 젠더적 관점에서 베트남전쟁과 학살문제를 다루지 못하는 이 상황을 의미있게 돌파해 보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 (20년전 "베트남 문제"가 처음 거론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노근리 학살을 연상시켰지만, 오늘날은 오히려 위안부 문제를 연상시킨다는 것이 특징적이다. 이러한 변화는 법정과 함께 개최된 학술대회에서 하민홍 교수의 개회사 ['노근리 학살' 현장에서 '베트남 민간인 학살'을 떠올리다"]와 Q&A에서 청중들이 던진 질문들 간의 차이에서도 잘 드러났고, 아시아 여성 문제를 다루는 대중매체 April Magazine의 커버리지에서도 유추할 수 있다) 베트남에서의 (한국어를 전공하고 있거나 한국에서 유학하고 있던 베트남인 대학생 통역을 낀) 필드워크 또한 이미 증언을 몇차례 해온 생존자들의 증언에서 법적인 근거와 일관성을 확보하는 데에 치우쳐져 있었고, 여기에 보조인력마냥 참여하고 있었던, 베트남어를 전혀 구사할 수 없었던 나로서는 더 섬세하고 실험적인 필드워크를 수행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따라서, 나라면 법적으로 이 사안을 다룰 때 드러나는 허점들, 법의 테두리 밖으로 넘쳐 흐르는 것들을 창작의 기점으로 활용했을 것이니까, 재판극이라니?라는 반신반의의 마음을 들고 공연을 보았다.

 

출연진

연극은 시민평화법정의 한계를 여러 방식을 통해 넘어선다. 그 중 하나는 진짜 찰진 캐릭터 구성과 이를 수행해 나가는 배우들의 연기이다. 판사, 원고, 변호사들을 제외하면 모든 캐릭터들은 증인으로서 차례차례 등장하는데, 처음에는 굉장히 일차원적이고 단순한 캐릭터들이 임팩트 있는 연기로 압도하는 것으로 시작하더니 (참전군인 어머니 엄원희, 참전군인 변구윤, 해병대를 갓 제대한 이문안 등), 점점 다차원적이고 결이 복잡한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탈영병 유정호, 참전 간호장교 여상미, "라이따이한" 낙인이 찍힌 쩐반낌, 참전군인의 손녀 장용선등). 이들의 대사, 이들의 연기를 통해 재판극은 시민평화법정에서 다뤄지지 않았던 전시 성폭력문제, "피해자성을 내포한 가해자성" 문제, 증언의 진실성과 법적 정당성 논란 등을 매우 밀도있게 그리고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밀고 나가며, 미군 관련 문제 또한 극중에서 물흐르듯 거론한다. 극중에서도 언급되는 구정대공세 (Tet Offensive)를 전후로 학살이 만연하게 된 분위기 조성에 대한 미군과 그 동맹군의 지휘계통 최상위층이 져야할 책임문제를 더 잘 녹여냈으면 더 좋았을 듯 싶다고 생각했다. 가장 내게 강한 인상을 남겼던 캐릭터는 참전간호장교 여상미 캐릭터였다. 파병 한국군에서의 여군장교의 위치라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관점에서 이 전쟁학살 문제가 가진 젠더요소를 바라보게 했기 때문이다. 조사팀 활동을 하면서 찾아볼 수 없었던 내용이라, 어떤 자료에 기반해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지만, 이와 상관없이 캐릭터 구성이 매우 설득력있고 충격적이었다. 

 

『시의 교실』의 한 장면

보면서 생각났던 다른 작업들이 있다. 하나는 공연창작집단 뛰다와 새의극장(鳥の劇場)의 공동작품 『시詩의 교실』. 『시의 교실』의 2부에서는, 연극 안에서의 재판극을 선보인다. 극중에서 배우들은 교실에서 역사 이야기를 나누다가, "반민특위" 재판을 다시 해보자는 이야기를 하고, 이를 실제 뛰다가 과거 선보인 바 있는, 리어왕에 기반한 『이 슬픈 시대의 무게』의 재판 장면을 반민특위 재판에 적용시켜 재창조하는, 일종의 셀프 패러디 식으로 선보인다. 배우들이 번갈아가면서 전쟁과 관련한 시를 낭송하는 부분에서, 특히 태평양전쟁 당시 군국주의 동요를 부르는 장면이, 『별들의 전쟁』에서 해병대청년 이문안의 군가부르는 장면과 많이 겹쳤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응우옌 찐 티의 『제5영화』. 조사팀 하면서 지겹도록 봐왔던, 극중에서 "증거자료"로 프로젝터 화면을 통해 등장하는 다양한 사료들은 (실제 사료들을 사용했다) 응우옌 찐 티의 『제5영화』를 생각하면서 봤다. 굉장히 다른 장르이긴 한데, 창작에서의 아카이브 자료 활용에 대해 생각하게 했기 때문. 연극에서 아카이브 자료는 어떻게 더 실험적으로 활용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떠올렸다. 

 

 『제5영화』의 한 장면

증언이 연극에서 활용되는 방법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시의 교실』 또한 위안부 증언자료, 위안소를 사용했거나 목격했던 군인들의 증언자료 등을 참조했는데, 사용 방법이 매우 직접적이어서 공연 녹화 영상을 보다가 깜짝 놀란적이 있다. 『시의 교실』은 증언을 "재연"re-enact한다. 『별들의 전쟁』은 증언자로서 등장하는 캐릭터들 자체가 실제 참전군인 및 생존자들을 종합한 형태로 나오기 때문에, 그들의 증언들이 『시의 교실』의 그것만큼이나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재현re-present에 가깝다. 다만, 시민평화법정과 법정 이후 벌어졌던 크고 작은 해프닝들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어떤 순간들은 매우 익숙하게 다가오고, 그것이 어떻게 가공되어서 연극에 활용되었는지 파악된다.

 

극중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 탈영병이었던 유정호 캐릭터는 실제 학살과 관련해 면담을 했었거나 매체에 등장했던 참전군인들 중 두세 명에 기반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미라이 학살사건 현장에서 일부러 자신의 발에다 총을 쏘아 부상을 이유로 그곳을 이탈한 흑인 미군 허버트 L 카터 일병을 아----주 잠깐 생각나게도 했다. 다만, 극중 유정호가 응우옌에게 사과를 건네는 장면을 보면서, 이러한 연출적 선택에 대해 매우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비화를 모르는 이들에게는 임팩트있는 순간, 즉 다른 의미로 착잡했을 순간으로 다가왔겠지만, 실제로 이 "사과" 해프닝 (주범: 영국 BBC)이 어떻게 벌어졌는지 아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연출적 선택은 많은 맥락을 의도적으로 거세한 것으로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 거세된 맥락은 연극 전체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베트남 전쟁 학살 문제를 다루는 방식 전체를 관통하는 미국과 "서구"의 부재와 연관이 있다.

 

연결된 지점인데, 유정호와 변구윤은 내 기준으로 굉장히 입체적이지 못한 참전군인 캐릭터들이다. 내가 실제로 필드워크를 하면서 만난 참전군인(R)의 캐릭터가 굉장히 특출난 것 때문에 비교대상으로서 그렇게 생각되는 것도 분명 있다. 이 지점을 계속 생각해보다가, 이길보라 감독의 『기억의 전쟁』과 『별들의 전쟁』의 공통적인 부분이 여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두 작품 다 이마리오 감독의 『미친 시간』에 등장하는 "자성적" 참전군인과 같은 입체적인 캐릭터가 없다. 물론 이마리오 감독에 등장하는 학살 생존자들과 그의 가족/지인들은 피해자적인 면모와 피해사실만 강조되기 때문에, 이러한 패턴은 거울쌍과도 같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불현듯 이러한 시각이 지금 동시대 예술계를 형성하고 있는 흐름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이걸 문제적으로 보아야 하는가?라고 내 자신에게 되묻게 되었다 (나는 분명 『기억의 전쟁』 리뷰에서 이게 문제적이라고 보았다). 『별들의 전쟁』에서 나무가 최후증인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기억의 전쟁』에서도 나무는 존재감있게 등장한다. 

 

 

재판극의 원고로 등장한 응우옌 티 쭝 캐릭터는 실제 시민평화법정에서 원고로 참여하였던 두 명의 응우옌 티 탄을 묘하게 겹쳐놓은 것 같은 캐릭터이다. 모든 출연진을 통틀어 배우로서 맡기 제일 까다로운 역할이었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환영받지 못한 자들Persona Non Grata』에서 베트남 이주여성 미용사 역할을 맡았던 배우 이슬 님이 생각나기도 한다), 베트남인을 연기하는 것 말고도 여기에는 또 하나의 복잡요소가 있다. 실제 시민평화법정 당시 퐁니퐁넛 마을의 응우옌 티 탄은 통역을 끼고 진술하였는데, 법정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베트남어로 전달되고, 그리고 그 감정을 프로세스 (가 잘 안되기도) 하면서 통역을 통해 전달되는 진술 모습이 가졌던 임팩트와 복잡한 결들을, 연극에서 한명의 배우가 한국어로 대사를 하면서 효과적으로 "재현" 혹은 전달하기란 불가능에 가깝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다만 의상, 몸짓, 그리고 오묘하게 사투리가 섞여 들어간 말투를 사용하는 것을 보면서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했고, 다른 피부를 가지고 다른 언어를 쓰는 캐릭터를 소화하는 방법을 위한 하나의 레퍼런스로 삼아볼 수 있을 것 같다. 공연 마지막에 춤을 추면서 배우들이 짓는 표정은, 퐁니 퐁넛 마을의 응우옌 티 탄이 시민평화법정 최종판결이 나왔을 때 지었던,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은 묘한 표정을 떠올리게 한다.

 

판결 직후. 왼쪽에서 두번째가 퐁니퐁넛 마을의 응우옌 티 탄. 맨 오른쪽은 하미 마을의 응우옌 티 탄. 

앞선 부분에서 관객은 기존의 통념에 부합하지 않는 가해자 (혹은 공모자, 방관자, "연루된 자" 등) 캐릭터들과 그들이 가진 복잡함을 마주해야 했다면, 연극의 후반부에는 기존의 통념에 부합하지 않는 피해자 캐릭터와 또한 마주해야만 한다. 극중 변호사와 쩐반낌 사이의 "합의 된 내용"대로 증언해야 하지 않냐며 생기는 분쟁(사실 이는 실제 시민법정 당시 증인으로 등장하는 구수정 선생님과 민변 변호사들 사이에 맞추었던 "합"과 다르게 구선생님이 증언을 하자 법정 끝나고 민변이 화가 났던 비화를 바탕으로 하는 듯하다), 그리고 사례비를 받았다는 사실에 기반하여 응우옌의 증언의 의도를 집요하게 캐묻는, 증언의 일관되지 않은 지점을 물고 늘어지는 "피고 대한민국의 법정대리인" 역할을 맡은 배우의 모습에서, (특히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증언의 진실성 여부를 두고 일었던 수많은 논란들이 스쳐 지나갔다. 이경빈, 이은진, 전민주, 『IMO』 12쪽: "피해자의 증언이 그 자체로 '진실'이라는 주장은 그들의 진술 신뢰성을 의심하며 '거짓'으로 치부하려는 태도의 거울쌍과 같다." 여기서 나는 오히려 연극을 통해 실제 시민평화법정에 대해 질문하게 된다. 과연 시민평화법정과 법정 관계자들은 "피해자다움"을 강요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모든 "피해자다움"에 관한 의견, 관점, 그리고 심상은 지금 여기의 사회적 맥락에서 같은 무게를 가지는가? 우리는 특정 윤리적 가치관에 기반한 당위에 부합하지 않는 생존자의 면모들을 공개하거나 거론하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가? 다시 한번, 이경빈, 이은진, 전민주의 『IMO』를 인용해 보겠다.

"...정작 당사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면, 순수한 피해자의 말도 주체적 운동가의 말도 아닌 당황스러운 목소리들을 많이 만나기 마련이다.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말들, 피해자 스스로 피해자임을 부인하는 말들, 다른 약자에 대한 혐오 발언들. 이런 말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이 잘못임을 가르칠 것인가?...<그것이 알고 싶다>에 몽키하우스와 비밀의 방>이 방영되었을 때, 이 놀라운 사실에 분노하며 어떤 인터넷 기사에는 '박정희를 높이 평가하는 늙은이들'을 욕하는 댓글이 달렸고, 어떤 SNS글에는 '기지촌 피해자님들이 국가를 용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댓글이 달렸다. 그런데 박정희를 높이 평가하는 늙은이와 기지촌의 피해자는 정말 다른 사람인가? 다리가 아픈 이모들은 방 안에서 종일 종편 뉴스를 보고 있었고, 우리에게 들려주는 정치관과 세계관은 흥미로웠다. 역사는 논리적으로 모순적인 것들이 함께인 것을 당연한 현실로 만들어 낸다." (6쪽. 내 강조)

증언과 피해자다움에 관한 내용이 연극 후반부에서 다뤄지는 모습을 보고 탁월하다고 생각했다. 재판극으로 시작한 이 연극은 진행될수록 점점 재판은 뭐고 법적 해결이란 도대체 무엇이고, 법정이란 도대체 어떠한 공간인가를 서서히 허물어 가는 방식으로 전개된다고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별들의 전쟁』에서 마지막에 최후증인으로 등장하는 나무 한 그루에게 증언을 요구하는 다소 황당하면서 가장 적나라하게 허구적이기도 한 이 장면은, 이러한 허물어짐이 가장 단적으로 보여지는 순간이다. (흥미롭게도 『기억의 전쟁』에서 또한 나무들은 존재감있게 등장한다)  『별들의 전쟁』은 왜 법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이 문제를 다루기 힘든지, 왜 법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역사문제는 항상 "양국간 외교 문제"로 혹은 "개인"의 문제로 쉽게 빠져버릴 위험성을 야기하는지 (위안부 문제처럼), 왜 국가폭력과 그 책임을 진다는 것에 대한 의미있는 논의는 쉽게 증발하고 이리도 지난한 논박과 갈등만을 야기하는지...에 대한 현타로 나를 이끈다. 하지만 배심원의 선택이 이루어지는 부분은 좀 짜증났다. 왜냐하면 개인적으로 연극은 피말리고 기빨렸기 때문에, 기권처리가 될 거라는 가능성을 가늠할 여지와 기력이 내게는 남아있지 않았다. 되는 줄 알았다면 기권했을 것이다. 나는 영혼없이 유죄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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