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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차] 로렌 벌랜트Lauren Berlant, 마이클 워너Michael Warner. "공적(公的) 섹스(Sex in Public)" (1998)



1. 사적 생활(privacy)보다 더 공적(public)인 것은 없다.

“공적 섹스”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우리는 이 논문의 대상이 지닌 불투명성, 그리고 논문의 서사가 지닌 비틀린 목적을 가지고 재미있는 시도를 해보려 한다. 이 논문에서 우리는 이미 사람들이 명확하게 알고 있는 성(sex)이라는 개체, 또는 정체성이나 행위, 혹은 억압에서 벗어나야 할 야생성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고, 공론장들(publics)에 의해 매개되는 성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각주:1] 몇몇의 공론장들이 성과 가지는 관계들은 매우 명료하다. 포르노 영화, 폰섹스, 성인지, 랩댄스 등. 그 외 나머지는 성을 중심으로 형성되지만, 꼭 일반적인 의미로의 성행위를 중심으로 두는 것은 아니다. 이성애 문화에서 유리된 퀴어 구역(queer zones)들을 포함한 다른 세계들도 그 예시들 중 하나가 되겠다. 하지만, 국민 신분(national membership)의 성애화(sexualization)를 감추기 위해 사적 생활(privacy)라는 개념에 의존하는 공식 국가문화 같은 좀 더 암묵적인 의미에서의 섹슈얼리티의 장들 또한 이에 속한다.

이 논문의 목적은 우리가 퀴어 문화 건설이라는 급진적 염원의 미명하에 추구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단지 퀴어 섹스를 위한 안전한 영역이 아니라, 이성애적 커플이 더 이상 성 문화의 참조점으로서, 그리고 특권적인 사례로 기능하지 않을 때 드러나는 정체성, 이해가능성(intelligibility), 공론장들, 문화, 그리고 성(sex)의 변화가능성들을 말한다. 섹스처럼, 퀴어 이론과 사회적 실천은 이성애성의 헤게모니를 형성한 특권을 받치고 있는, 혼잡하지만 강력한 규범들을 뒤흔드는 시도를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이성애규범적이라고 서술할노골적으로 성적이지는 않은사유재산과 범凡節의 위계들(hierarchies of property and propriety)로부터 유추될 수 있는 유물론적 실천들(material practices) 또한 뒤흔들고자 한다.[각주:2] 이 논문을 다음 두 공적 섹스의 장면들과 함께 시작해보자.


장면 1


1993년에 타임지는 "미국의 새로운 얼굴The New Face of America”라는 제목[각주:3]으로 이민자에 관한 특별호를 발행했다. 이 특별호의 커버를 장식한 여성은 미국 내 다양한 이주민 구성을 대표하는 얼굴사진들이 종합되어 컴퓨터에서 변형된 것이다. “중동인”, “이태리인”, “아프리카인”, “베트남인”, “앵글로색슨”, “중국인”, 그리고 “히스패닉” 얼굴들의 합성체인 셈이다. 미국의 이러한 새 얼굴은 통계상 예측대로 백인들이 더이상 미국 내 다수가 아니게 될 때인 2004년도의 시민 양식(modal citizen)이 어떠한 모습일지를 표상한 것이다. 맨 피부로, 웃고 있으며, 그저 적당히 백인같지 않아 보이는 모습을 한 이 타임지의 신성한 프랑켄슈타인은 시민권과 국가의 미래에 대한 헤게모니적 낙관론을 형성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타임지의 이론은, 21세기 미국에서 혼혈(interracial) 번식은 매우 큰 스케일로 일어날 것이고, 이에 따라 인종적 차이 그 자체가 드디어 혈족관계에 기반한 가족적 정서에 의해 대체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타임지의 상상에 따르면, 21세기에는 미국의 인종주의가 몇억명의 혼혈인들의 존재로 인해 지워져 버릴 것이다. 이렇게 미국은 “단 하나만의 (혼혈)종”[각주:4]으로만 이루어진, 행복한 단일인종적 문화(racial monoculture)가 된다.

이 특별호의 발행은 아주 잠깐동안 주목을 받았고, 그다지 큰 여파를 일으키지는 못했다. 이러한 따분함(banality)은 우리에게 이러한 일상성(ordinariness)을 생산해내는 기술에 대해 이해하라고 요구한다. 이 이미지로 인해 따분하게 만들어진 '환상'은 법과 일상의 가장 친밀한 틈새들 속에서 메아리치고 있는 그 어떤 것이다. 이 이미지의 노골적인 목적은 대중들로 하여금 현재 “이민자 문제”라는 이름 아래 “정상적” 혹은 “핵심적”인 국가 문화에 가해지는 위협을 처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각주:5] 하지만 동시에 이 위기를 초래하는 것으로 표현되는 이주민 이미지는 백인이 지배하는 사회가 생성해낸 ‘인종적 신기루’ (racial mirage)이기도 하다. 이는 특정 포비아를 생산하여 대중들로 하여금 미국 내의 착취에 대한 좀더 실질적인 논의로부터 눈을 돌리게 한 다음, 이러한 논의를 향수가 아닌 집단적 회피로 인해 신성화된 집단기억의 일부로 재고처리해 버리는 기능을 한다. 이것을 망각의 아카이브라고 명명해보자. 이 아카이브 입구 위에 달린 모토는 “기억은 당신이 선호하는 망각입니다” 이다. 

하지만 인종주의와 착취보다 더 많은 것들이 이 투사와 억제의 소용돌이 안에서 잊혀져 가고 있다. 핵심적 국가문화를 강화하고 소수화에 대한 백인들의 공포를 진정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이민자에서 향수의 이미지로의 형태전환에 있어 가장 중심적인 이것은 자신의 이름을 말할 수 없는 그 어떤 것이지만, 이것이 남기는 서명은 도처에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국가 이성애성(national heterosexuality)이다. 국가 이성애성은 핵심적 국가문화가 감성적인 감정들과 순결한 행위로 이루어진 위생적 공간이자, 순수한 시민권의 공간으로 상상되게 만드는 메커니즘이다. 사회의 가족적 모델은 구조적 인종주의와 다른 종류의 체계적 불평등에 대한 인식을 전치轉置(displace)한다. 이러한 사실은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 가족의 형태는 18세기부터 국가적 존재의 매개자이자 은유(메타포)로서 기능해왔기 때문이다.[각주:6] 우리가 주장하려는 것은 바로, 이러한 기능의 현대판 전개가 국가적 소속에 대한 염원을 공론장의 비판적 문화와 정치적 시민성으로부터 분리시키는 방식을 통해 점진적으로 복지국가의 통치성을 강화한다는 것이다.[각주:7] 이민 위기 또한 이전부터 국가를 위한 보형물로써 기능하는 여성적 도상 (feminine icons)들을 생산해낸 바 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사례가 자유의 여신상인데, 이는 이주민들이 미국의 메타문화에 매끄럽게 동화되는 것을 상징한다. 허나 타임지의 얼굴 사진은 상징적 여성성으로서가 아닌 단일문화적 국가를 보장하는 실용적 이성애성으로 작용한다.

현대 미국 정치가 맺은 그리운 가족 가치관의 서약은 다양한 방식으로 시민성과 성(sex)의 민영화(privatization)를 요구한다. 예를 들어 법과 정치이념의 영역에서, 신성화된 국적이 태아와 아이에게 극적으로 부여되었다. 국가는 이제 아이들을 위해 인터넷을 정화하기 위한 법안과 단속을 후원한다. ‘미국과의 계약서’와 클린턴의 가족주의 사이의 타협으로 인해 통과된 새로운 복지 그리고 세금 “개혁안”은 결혼한 커플과 아이를 가진 부모의 법적 그리고 경제적 특권을 강화시켰다. 바우처(vouchers)와 민영화는 교육의 책임을 시민사회의 영역이 아닌 부모의 영역으로 재설정하였다. 한편, 테드 케네디Ted Kennedy와 제시 헴즈Jesse Helms같은 상원위원들이 지지하는 법안은 “불쾌한 방식으로 배설하는 행위, 혹은 성적인 행위 및 신체부위를 묘사하는 음란물들, 또는 사도마조히즘, 동성애, 아동 성착취, 아니면 성행위를 묘사하고 있는 매체”[각주:8]를 생산하고, 확산시키고, 추구하는” 기관들에 대한 국가기금을 끊게 하는 것이다. 차별화 되어있긴 해도, 이러한 전개는 그들이 성에 관한 헤게모니적 국민여론을 형성하는 방식과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성의 공론장(sex public)은 오로지 이성애적 사생활의 영역을 보호하기 위해서만 작용한다고 공표되기 때문에, 자신들의 실천을 알리고 이상적인 세계를 구축하는 사회적 재생산과 경제적 특권의 제도들표상된 모든 성을 스펙터클하게 악마화함으로써 스스로를 보호한다.


----다음 번역으로 이어집니다. 본 논문은 총 4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각주에 책 제목에 <>를 치면 제목 자체가 사라지네요... 이게무슨일인지. 티스토리 블로그 코딩 문제같네요. 논문제목은 ""안에, 책은 그냥 제목만 적고 뒤에 출판년도를 ()안에 적었습니다.

----상호교차성 실험협업단체인 페대기(https://www.facebook.com/interfemisolidarity)에 연재되는 번역물입니다. 비영리적 목적으로 퍼가시는 건 상관이 없지만 출처는 밝혀주세요 ~


  1. 표준적인 의미의 공적 섹스(public sex)에 대해서는 팻 캘리피아Pat Califia의 Public Sex: The Culture of Radical Sex (1996) 참조. 행위와 정체성에 관해서는 재넷 E. 핼리Janet E. Halley의 The Status/Conduct Distinction in the 1993 Revisions to Military Antigay Policy: A Legal Archaeology (1996) 참조. 성적 해방을 자유의 조건으로 여기는 정치적 논의의 고전적인 예시는 헤르베르트 마르쿠제의 <에로스와 문명> (1966)에서 주장되고 있다. 푸코의 <성의 역사>에서 영감을 받은 섹스에 호의적인 현대의 사유에서는 "성애적 불공정함과 성적 억압의 거부"가 개인의 자유보다는 특정 인구와 그 인구를 관리하는 제도들 사이의 규범적이고 강제적인 관계를 분석하는 데에 더 큰 중요성을 둔다. (게일 루빈, "Thinking Sex: Notes for a Radical Theory of the Politics of Sexuality) 미셸 푸코의 <성의 역사> 또한 참조. [본문으로]
  2. 우리는 이성애규범성(heteronormativity)이란 개념을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이성애규범성이란 이성애성(heterosexuality)을 일관성있게, 즉 섹슈얼리티로써 정립되어 보이게 할 뿐만 아니라 이에 특권을 부여하는 제도, 이해의 구조, 그리고 실천적 지향성(practical orientation)을 뜻한다. 이 일관성은 항상 임시적이고, 그것의 특권은 여러가지의, 가끔씩 모순적인 형태들을 취하곤 한다. 이들은 개인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의 기본적인 관용구와도 같이 작용함으로써 스스로의 표시를 지우기도 하지만, 스스로를 자연스러운 상태(natural state)로써 표시하기도 한다. 또한, 이는 이상적이나 도덕적인 성취로 투사되기도 한다. 이성애규범성은 어떠한 교리처럼 여겨질 수 있는 규범들로 이루어져있다기 보다는, 모순적 현현을 통해 생산되는 올바름의 감수성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모순적 현현들은 실천 혹은 제도들에 내재되어 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삶의 서사, 그리고 세대적 정체성 같이 성행위에 대해 별로 가시적이지 않은 관계에 놓인 맥락들은 이러한 의미에서 이성애규범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에 다른 맥락들에서는 남녀간의 섹스의 형태들이 이성애규범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하여, 이성애규범성은 이성애성과는 차별되는 개념인 것이다. 이들 사이의 가장 분명한 차별점들 중 하나는, 스스로를 동성애성의 반대축으로 설정하는 이성애성과 달리, 이성애규범성은 자신과 평행관계에 놓인 것을 설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동성애성은 절대 (이성애성이 이미 확보한) 비가시적이고, 암묵적이고, 그리고 사회설립적인(society-founding)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동등한 의미로의 “동성애규범성”과 같은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마이클 워너의 “Fear of a Queer Planet” (1991) 참조. [본문으로]
  3. 타임지1993년 가을호 특집 참조. 이 분석은 로렌 벌랜트의 저서 The Queen of America Goes to Washington City: Essays on Sex and Citizenship 중 200-208쪽에 나오는 분석대상에 대한 재작업이다. [본문으로]
  4. “혈족blood”이 미국 국가주의 담론에서 갖는 중심성에 대한 연구는 보니 호니그Bonnie Honig 의 No Place Like Home: Democracy and the Politics of Foreignness 참조. [본문으로]
  5. 예를 들어, 윌리엄 베넷William J. Bennet의 The De-Valuing of America: The Fight for Our Culture and Our Children (1992), 피터 브리멜로Peter Brimelow의 Alien Nation: Common Sense about America’s Immigration Disaster (1995), 그리고 윌리엄 헨리 3세William A. Henry III의 In Defense of Elitism(1994) 참조. [본문으로]
  6. 국가적 수사에서의 가족 형태에 대해서는 제이 플리겔만 Jay Fliegelman 의 Prodigals and Pilgrims: The American Revolution against Patriarchal Authority, 1750-1800 (1982), 셜리 새뮤얼스 Shirley Samuels 의 Romances of the Republic: Women, the Family, and Violence in the Literature of the Early American Nation (1996) 참조. 유전자적 동화에 대한 환상에 대해서는 로버트 틸튼Robert S. Tilton의 Pocahontas: The Evolution of an American Narrative (1994) 9-33장, 그리고 엘리스 르미어 Elise Lemier, “Making Miscegenation” (루트거스대학교 박사논문, 1996) 참조. [본문으로]
  7. 복지국가 통치성의 개념에 대한 문헌이 많아지고 있다. 이에 대한 간결한 내용은 하버마스의 “The New Obscurity: The Crisis of the Welfare State and the Exhaustion of Utopian Energies” (1989) 참조. 마이클 워너는 이 분석과 퀴어 문화 사이의 관계를 그의 논문 “Something Queer about the Nation-State” (1995)에서 논의하였다. [본문으로]
  8. 하원의회기록물. 제101회 하원의회. 1차 세션. 1989년. 135, pt. 134:12967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