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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Portrait in Fragments 미완의 초상 (영국 한국문화원 후원 / 2013년 런던 테레사 학경 차 전시 도록) 일부 번역

서문

 

줄리엣 데고르그 Juliette Desgorgue

런던 ICA

 

예술가 테레사 학경 차가 생전, 그리고 80년대와 90년대 초반에 큰 주목을 받았지만, 그의 작업은 특히 미국 밖에서 조금 주목도가 부족했다고 볼 수 있다. 미국과 유럽의 몇몇 전시관들을 찾았던 주요 순회전시 <관객의 꿈The Dream of the Audience>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테레사 차는 1982년 젊은 나이에 비극적인 죽음알 맞이하였고, 이러한 때이른 죽음은 그의 국제적 지명도가 그닥 높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한 해명도 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그의 퍼포먼스들은 70년대의 샌프란시스코 지역, 즉 학생들의 비공식적인 “해프닝”이 성횡하던 때라 제대로 기록되지 않은 것들이 많았다. 하지만 최근의 테레사 차를 둘러싼 사업들, 예를 들어 2013년에 출간된 단행본 [역주: 프랑스 학자 Elvan Zabunyan의 <Theresa Hak Kyung Cha : Berkeley-1968>를 가리키는 듯함], 파리 베통살롱에서의 단체전, 런던 한국문화원에서의 개인전, 그리고 런던 ICA(Institute of Contemporary Art 현대미술관) 에서 상영된 영상작업 등은 그의 작업에 대한 꾸준한 관심의 반증이며, 우리로 하여금 전후 예술사에서 그를 재위치시키게 한다. 

테레사 차의 글, 특히 단행본 <Dictée>의 경우 널리 논의되었고 특히 미국의 문학 학술 서클 내에서 연구되었지만 그의 시각 작품들, 특히 퍼포먼스와 영상들에 대한 관심은 소홀했다. 테레사 차는 능숙함, 훈련, 그리고 복잡성을 자신의 다양한 예술적 실천에 폭넓게 적용하였고 일관적인 개념들과 주제들을 탐구함과 동시에 매우 독특한 성질의 영상들을 선보였다. 바로 이러한 지점들이 나의 흥미를 끌었고, 2013년 10월 런던의 ICA에서 열린 상영회와 발표회의 중점이 되었다.

테레사 차의 영상 중 가장 중심적인 요소는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공허(void)의 개념이다. 이는 거의 폐쇠공포증과 가까운 느낌을 자아내고 페이드 인과 페이드 아웃, 그리고 흑과 백, 오래 남아있는 침묵을 통해 발현된다. <Vidéoème (1976)>에서 공허함의 감각이 직접적으로 언급되는데, 이 때 제목 자체가 해체되며 ‘vidé’라는 단어(프랑스어로 “비워지다”라는 뜻)가 나타나면서이다. <Re Dis Appearing> (1977)에서 나타나는 음성이 ‘초상화 고정’ (portraits fixes)을 말할 때, 우리에게 보여지는 이미지는 까만 화면이다. 영상작업 <치환Permutations>(1976) 에서는 테레사 차의 여동생 버나뎃 학은 차의 단일한 얼굴 (어떤 순간에는 작가 자신의 얼굴이 나타난다)이 드러나지만, 영상은 체계적으로 그를 뒤집어 뒷머리를 보여주고, 바로 완전히 검은 화면이 등장한다. 기존의 재현 방식들이 반복적으로 사용되지만 (특히 형식과 사운드에 있어), 이러한 것들은 지속적으로 무효화되고 해체된다. 그의 영상들에서 드러나는 자연에 관한 소수의 레퍼런스들, 예를 들어 폭포수 소리, 새소리, 모래사장과 바다의 이미지들은 보다 더 디스토피아스러운 광경들과 자동적으로 부딪힌다. 

69년에서 78년 사이 버클리 소재의 캘리포니아 주립대, 그리고 76년 프랑스 파리의 미국영화연구소에서  수학하며 테레사 차는 구조주의와 프랑스 영상이론를 배웠으며, 이는 특히 알랭 르네, 쟝 룩 고다르, 크리스 마르케 등의 영화인들의 작업을 통해서였다. 1980년, 그는 저명한 영상 이론가들의 텍스트 선집인 <장치, 영상 장치: 선집Cinematographic Apparatus: Selected Writings>를 엮어 Tanam 출판사를 통해 출판하였으며, 이 선집은 심리분석학, 즉 주로 그의 선생이었던 크리스티앙 멧츠의 작업에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었다. 그의 영상은 이러한 맥락에서도 충분히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 형식과 사운드는 구조와 제약들, 즉 재현방식 그 자체, 그리고 영화와 영화 제작의 ‘장치’를 탐구하기 위해 쓰인다. 테레사 차의 영상들은 어느정도 수학적인 구조를 이용하는데, 이는 얼굴, 단어, 혹은 흑백의 화면들의 반복한 표상을 통한 리드미컬한 배열을 통해 작용한다. 이러한 반복적 특성을 통해, 시간은 경직된다. 시청자의 자아 감각은 마치 매 영상을 육체적으로 체험하듯 고조된다.

테레사 차의 작품에서 재현 개념은 언어를 통해 보다 더 구체적으로 다뤄지는데, <입에서 입으로Mouth to Mouth> (1975)에서 한국어의 여덟 개의 모음 문자를 따라하는 입모양을 보여주는 것이 그것이다. 이렇게 분리되고 따라서 조금 비인간화된 입은 뿌옇게 처리된 시각효과와 백색소음으로 인해 질식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저 말하려고 하는 행위에 남은 것은 괴로움 뿐이다. 이 작업에 대한 분석은 1895년 청일전쟁과 그로 인한 한국어와 한국 문화에 대한 억압을 언급한다. 하지만 좀 더 일반적으로, 이 ‘재현된 것/재현될 수 있는 것을 재현하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unrepresenting’을 향한 시도는 <치환>에도 드러나는데, 이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의 한 형태로 이해될 수 있다. 테레사 차의 경우 (그의 저작 <딕테>에서 분명히 드러나듯), 자신의 한국인 여성Korean woman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이 제기되는 것이다. 테레사 차의 작업에 대한 이러한 자전적 분석 외에도, 그가 언어와 재현의 구조 자체에 대해 물음을 던지기 위해 그것들의 작동원리를 다룬다는 것은 분명하다.

테레사 차의 작업이 전후예술사, 그리고 1960-70년대 미국과 프랑스 예술서클에 있어 특히 더 의미가 큰것도 있지만, 그보다 그의 작업은 시간의 흐름을 타지 않는 듯한 성격을 지닌다. 그는 언어, 재현, 정체성 등의 주제를 다룰 뿐만 아니라 영상을 3차원적인 방식으로 다루기도 한다. 오늘날 현대미술에서 퍼포먼스, 영상, 설치예술이 점점 더 많이 통용되면서, 테레사 차의 작업들은 훨씬 더 큰 중요성을 띈다. 그의 유산이 미래의 예술가들, 작가들, 그리고 큐레이터들에게 전해지도록 책임지는 것이 핵심적이다.    

 

미완의 초상: 테레사 학경 차 1951-1982

비 드 수자Bea de Sousa

 

<미완의 초상A Portrait in Fragments>은 한국계-미국인 다원매체 예술가 테레사 학경 차의 작업과 사유에 대한 열린 연구이다. 그는 70년대 버클리에서 수학하고 80년에 뉴욕으로 이주했으며, 그로부터 2년뒤 서른 하나의 나이로 죽음을 맞았다. 버클리 소재 캘리포니아 주립대 버클리 미술관/태평양 필름 아카이브Berkeley Art Museum/Pacific Film Archive (BAM/PFA)의 도움으로 확보한 그의 구조주의 영상 작업들과 영상 대본, 시놉시스, 그리고 노트북, 일기장, 퍼포먼스 사진등은 그의 작업 뒤의 복잡한 정체성의 조각난 이미지를 선보이기 위해 쓰인다. 동시대 예술가인 루스 바커Ruth Barker, 이수진, 제퍼드 호리건Jefford Horrigan, 그리고 송바다는 테레사 차에 대한 작업을 내놓았고, 이 ‘작업대Workstations’들은 점점 커져가는 테레사 차의 영향에 대한 다양한 요소들에 관해 성찰하는 퍼포먼스이다. 

테레사 차의 작업군과 메모는 1992년 그의 가족에 의해 BAM/PFA에 기증되었다. 그때부터 이 자료들은 꼼꼼하게 아카이빙 되고 연구되어, 2004-5년에 큐레이터 로렌스 린더를 필두로 총체적이고 정교한 개관 전시 <관객의 꿈: 테레사 학경 차 (1951-1982)>로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오늘날 그의 작업군에 대한 관심은 현대미술에서 한국계-미국인인 그가 갖는 의미를 다시금 확인하는 동시에 수그러들지 않는 그의 영향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다. 하지만, 테레사 차의 아카이브의 제도화로 인한 그 어떠한 결정론적인 영향도 결국 미완으로 남은 그의 작업, 그리고 그의 작업이 갖는 순간적인 특성과 대비될 것이다. 이러한 긴장관계는 일정 부분 이번 전시가 파헤쳐보고자 하는 것이기도 하다.

테레사 차는 실험성과 일관성에 있어 매우 뛰어난 혁신적 작업들을 생산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레사 차의 아카이브는 매우 파편적인 형태로 남아있으며 이는 일종의 생산적인 위급함과 동시에 너무 이른 죽음으로 인한 피할 수 없는 결과이기도 하다. 많은 물음들, 사유와 작업들은 비록 본질적으로 엮여있긴 하지만 완성되지 않은 상태로 열린 해석을 요구한다. 사후 기획된 전시들은 테레사 차를 페미니즘과 탈식민주의 사이에 위치지으려 시도하였다. 테레사 차의 파편적인 작업과 글들이 점점 매우 중요하게 떠오른—국제 예술계와 (한국의) 개념 언어의 이해에 있어서—지금 이 시점에서, <미완의 초상>은 앞선 전시들처럼 테레사 차의 작업을 분류하려는 시도보다는 열린 논의를 추구하고자 한다. BAM/PFA 아카이브의 이전공사로 인해 테레사 차의 작업들의 선별이 제한적이었던 사실 또한 중절되고 미완으로 남은 작업군을 선보이는 방식으로서의 파편화 개념을 강조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러한 접근법은 우리들로 하여금 테레사 차의 작업의 세밀한 부분들을 콘스탄스 르발렌, 로렌스 린더, 그리고 트린 민하의 순회전시(2001년 버클리에서 2004년 제러랄리 재단, 그리고 2005년 바르셀로나의 안토니 타피에스 재단까지) <관객의 꿈>을 보완하는 차원에서 조명할 수 있도록 한다. 본 전시는 또한 테레사 차의 유산과 그의 사후 수용양상에 대해서도 조망한다.

실제 퍼포먼스와 영상 작업에서 테레사 차의 언어 사용을 매우 강조하는 것은 동시대의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다. 이 전시는 그의 퍼포먼스 사진 기록과 영상 대본 및 요약 복사본을 포함하는데, 이는 구현되거나 구현되지 않았던 의도에 대해 다루며 그의 영상 대본의 매우 희귀한 문학적 형식을 드러낸다. 이 전시의 구성은 루스 바커와 제퍼드 호리건, 그리고 송바다에 의한 두 편의 실황 퍼포먼스를 중심으로 진행되며, 이는 테레사 차가 자신의 작업에서 강조하고 재차 다뤘던 모티브인 지워짐(erasure)과 되돌림(reversal), 즉 그가 한때 ‘스크린 위에 하얗게 쏟아진 피’ (파리의 미국영화연구소에서 열렸던 테레사 차의 공연 <Performance sur Vaympyr> (1976)의 대사)라고 명명했던 것을 반영한다.

 

유산Legacy

 

최근 테레사 학경 차의 작업에 대한 지배적인 수용양상은 그를 페미니스트로 위치짓는다. 케이트 링커Kate Linker의 1984년 (작가의 사후 2년 뒤) <차이Difference> 전展의 경우, 테레사 차의 <Passages, Paysages> (1978)를 섹슈얼리티와 젠더 논의로 끌어들였으며, 이는 데이라 번바움Dara Birnbaum의 <기술/변환: 원더우먼Technology/Transformation: Wonderwoman> (1978-9)전展, 그리고 마사 로슬러Martha Rosler의 <간단히 획득된 시민의 핵심적 통계Vital Statistics of a Citizen, Simply Obtained>와 궤를 같이 한다. <Art in America>지에 실린 이들 전시 리뷰에서 테레사 차의 작업은 호평적인 언급과 함께 조명되었지만, 이 기사의 글쓴이는 작업에 대해 조금 이해가 어려운 듯 보인다. 젠더 정치학의 맥락에서 테레사 차의 작업은 ‘아름답고, 환기적인 [작업이며], 이는 감성적이고 낭만적인 주제들에 대해 다룸’으로써 그가 쓴 리뷰의 논지 이상의 것을 제시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예시는 테레사 차의 작업이 대부분 노골적으로 페미니즘과 궤를 같이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점을 시사한다. 테레사 차가 그의 퍼포먼스, 혹은 영상작업 속의 인물들이나 내레이터를 통해서 매우 의도적으로 여성의 존재를 추구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그의 작업속에서 지울 수 없는 자전적 흔적들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작업들이 페미니스트적 기획과 분명히 궤를 같이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도 던져볼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이 테레사 차의 작업에 대한 페미니스트적 독해의 동력이 되는걸까?”

테레사 차의 죽음 당시, 그의 죽음은 공공의 논란 대상이었으며, 이는 사후 발간된 글들이나 사망 기사에서도 발견된다. 연쇄살인범에게 강간 살해당했다는 사실에 대해 감정적으로 이입되어 나오는 발언에서도 알 수 있듯, 우리 자신들은 테레사 차의 죽음으로 인한 ‘집단적’ 트라우마로부터 선명하게 선을 그을 수 없는 듯 보인다. 그의 죽음의 성격은 우리로부터 페미니스트적인 독해를 끄집어내며, 이는 정신병적으로 여성의 생명에 대한 존중을 철저히 짓밟았던 강간살인범의 희생양인 다른 열두 명의 피해자들과 테레사 차의 죽음을 바로잡고 싶다는 자동적인 소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반응이 자연적이고 사회적인 동기에서 비롯된 것은 분명하지만, 우리는 또한 테레사 차 혹은 그의 작업을 작업 자체를 놓고 이야기하기 보다 사후 신격화시키는 일에 대해 경계심을 품어야 함은 물론, 그의 죽음의 스펙터클을 통해 그의 작업에 대한 우리의 독해를 극적으로 만들고자 하는 유혹을 멀리해야한다

…(중략)…이러한 주장은 테레사 차의 작업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의 비극적인 개인사를 통해서보다는, 작업 자체의 메세지에 주목함으로서 우리는 여성예술이 밟아온 과정에 제대로 기여할 수 있다. 테레사 차의 유산은 매우 강렬하며, 이는 비단 예술에만 제한되지 않는다. 인터넷에서도 그의 영향이 떠오르고, 점점 커지고 있다. 그의 이름으로 된 태그를 통해 찾을 수 있는 대부분의 데이터는 블로그 포스팅이며, 이 글들은 테레사 차의 활동을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한다. 최근에 ‘테레사 학경 차의 ME FAIL WORDS—T.H.K.C., 생일 축하해’라는 제목의 포스팅이 작가의 생일인 2013년 3월 4일에 poetsorg.tumblr.com에 올라왔다. 이러한 포스팅들은 테레사 차와의 익숙한 연결점들, 즉 컬트적인 헌신과 감정이입을 추구한다는 데에 있어 그 숫자가 적지 않다. 다른 포스팅들, 예를 들어 ‘쿠사마잠옷kusamapyjamas’ ‘레즈비언분리주의자lesbianseparatist’, ‘신성한바다the holysea’, 그리고 ‘절대적 다수overwhelming majority’ 등은 문화연구, 젠더연구, 그리고 페미니즘 연구 성향을 띈다. 여기에 또 한국계 미국인 여성들이 <딕테>에 개인적으로 이입하여 만들어내는 레퍼런스들까지 있다.

‘저는 같이 공부하던 캐롤 마소Carole Maso에 의해 <딕테>를 1998년에 처음 소개받았습니다. 당시 저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미국의 1세대 이민자 부부에게 입양보내어져 노동자 계층이 많이 살았던 뉴욕 근교에서 자랐던 제 성장기에 관한 글, 그리고 최근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글을 쓰며 힘들어하고 있었습니다. 테레사 차의 관심사들 (언어의 한계점, 자신의 역사로부터의 분리, 여성의 삶의 재현, 신화와 종교의 역할)은 제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http://mkimarnold.tumblr.com) 

이러한 웹 레퍼런스들의 단면은 <딕테>와 관련해서, 주관적이고 빠르게 확산되었던 ‘페미니스트’ 수용양상을 나타낸다. 이러한 양상은 테레사 차를 긍정정인 롤모델로서 강조하지만, 동시에 그의 죽음에 관한 언급들과도 매우 결이 비슷하다. 이러한 특정 인물이나 노선과의 감정적 연대를 표명하는 것은 인터넷상에서의 빠른 확산반응에 최적화되어 있다. 이들은 테레사 차의 작업이 맥락과 상관없이 재생산되는 상황 또한 매우 잘 나타내고 있다. 

 

원문: https://issuu.com/openshaw/docs/aportraitinfragments 6-1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