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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시 J. 왕,『존재감을 사유하기: 동시대 아시아계 미국시에서의 형식, 인종, 그리고 주체성 Thinking Its Presence: Form, Race, and Subjectivity in Contemporary Asian American Poetry』 번역1


존재감을 사유하기: 동시대 아시아계 미국시에서의 형식, 인종, 그리고 주체성

Thinking Its Presence: Form, Race, and Subjectivity in Contemporary Asian American Poetry


도로시 J. 왕

Dorothy J. Wang


그리고 뭐든지 이 세상에서

말해지는 것, 혹은 잊혀지는 것,

혹은 말해지지 않는 것이, 형태(form)를 만든다. 

—로버트 크릴리, <손가락>


allies is weniger, als

es ist,

alles ist mehr.


모든 것은 그것보다

모자라다

모든 것은 더하다


—파울 첼란, <첼로 엔트리>, <<숨돌림>> (1967)


글머리

Preface


이 책은 어떻게 비평가들에 의해 시가 비평적으로 논의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재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다섯 명의 동시대 아시아계 미국 시인들에 대한 집중 연구이기도 하다. <<존재감을 사유하기: 동시대 아시아계 미국시에서의 형식, 인종, 그리고 주체성>>은 길고 계속되는 시와 시학에 대한 논의에 보탬이 되고자 하지만, 분명 아시아계 미국문학, 혹은 마이너리티 미국시, 그리고 디아스포라 문학에 대한 연구로 보다 더 읽히게 될 것이다.‘마이너’리티 문학, 즉 소수자일 뿐만 아니라 미국의 마이너리티 문학[각주:1] 중에서도 부차적인 위치에 놓인 문학이 여전히 영문학 전통의 가장 주요한 장르, 즉 시에 대해 매우 핵심적인 시점을 제공한다는 주장은 내게 있어서 모순적이지 않다. 비평가들이 이제는 아무도 시를 읽지 않는다고 징징거리긴 하지만 말이다. 사실, 아시아계 미국 시는 미국의 국가에는 물론 미국 문학 상상계 내에서 필수적으로 그리고 불가변적으로 인종화된 “외부인” 주체, 그리고 불편할 정도로 과시된 영어 시학 전통[각주:2]으로 이루어진 집합체로서 매우 특수한 위치에 있으며, 이는 마이너리티 문학 뿐만 아니라 영문학, 시, 시쓰기, 미국문학, 미국 사회, 그리고 문학적 가치에 관해 널리 퍼진 고정관념들을 시험대에 올린다.

마이너리티 시가 미국 (그리고 영어권) 시 및 시학에 매우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이러한 주장은 영어문학 그리고 시학연구 내의 민족시(ethinic poetry) 수용양상에서, 그리고 “주류” 서정시와 전위시 비평가들에 의해 무시되기 일쑤다. 인종화된 이의 시는 그것의 예술적 스타일이 어떻든 언제나 항상 더 넓은 (그리고 좀 더 “주요한”) 분야에 비해, 그리고 항상 보편적이고 광범위하며 암묵적으로 “인종적 표식이 없는racially unmarked” 영문시와 시쓰기의 형식 분류—서정시든, 운율법이든, 수사어구든, 아니면 “전위(아방가르드)” 개념이든—들에 비해 부차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대학가에서, 즉 민족국가에 기반해 있고 하나만의 언어를 사용하며 시대적으로 구분되어 운영되는 모든 수업과 학과 내[각주:3]에서 시를 연구한다. 이 각 학과들은 몇몇의 “스타”로 장식되어 있는데, 예를 들자면 모더니즘 시 개론수업은 당연히 엘리엇, 스티븐스, 파운드를 가르칠 것이고, 아마 이 커리큘럼에 몇몇의 백인 시인들, 아마 윌리엄스나 크레인, 아니면 메리앤 무어를 넣을 수도 있고 뺄 수도 있을 것이다.[각주:4] 랭스턴 휴스는 아마 다양성을 위시하기 위해—아니면 예외 중의 예외를 위시해서—흑인임에도 여기 포함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 할렘 르네상스 시인들 중 그 다른 누구도 (물론 호세 가르시아 비야Jose Garcia Villa를 포함한 아시아계 미국인들을 포함해서) 여기에 포함되진 못한다. 그 와중에 휴스는 아프리카계 미국문학 혹은 아프리카계 미국시로 분류되어 읽힐 확률보다, “상위” 모더니즘High Modernism은 고사하고 모더니즘에 관련되어 읽힐 확률이 현저히 낮을 것이다. 

이러한 도식에 너무 치우쳐져 있었기에, 열 몇 권이 넘는 시를 써낸 아시아계 미국인 존 야오John Yau와 같은 이들의 시를 연구하는 것이 존 애쉬베리의 저작을 연구하는 것만큼 “시적 목소리”나 “시적 개인”에 대해 생각하는 데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상상하는 일은 아마 어려울 것이다. 여기서 제기되는 질문은 “누가 더 위대한 시인인가?”가 아니라—앞서 제시한 예시인 애쉬베리는 e.e. 커밍스로 대체가능하다—왜 유색인종 시인들과 “인종적표식이 없는racially unmarked” 시인들의 저작을 각각 논할때 이중잣대를 들이대는가? 이다. 비평가들은 애쉬베리의 저작을 읽으며 그가 어떻게 시학과 주체성이라는 “보편적” 문제의식[각주:5]에 기여하는지를 논한다. 이에 반해, 야오의 저작은 좀 더 좁은 범위의 역사적 혹은 정치적 틈새에 자리하는 것으로 여긴다. (아주 극히 드문 예외도 있다)[각주:6] 야오는 포스트 뉴욕학파 시인들 중 한명으로서, 아니면 최근에 들어 나타나듯, “그저” 아시아계 미국인 시인으로서 여겨진다.

이러한 이중잣대는 우리가 시를 읽는 방식에까지 적용된다. 비평가들이 애쉬베리의 시를 논할 때는 형식의 문제, 예를 들면 언어구조와 어조에 대해 더 사유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지만, 반대로 반세기도 훨씬 넘는 시간동안 (적어도 애쉬베리 만큼 오랫동안) 형식적 실험의 한계를 시험했던 아미리 바라카의 저작들을 논할 땐 항상 정치적, 혹은 흑인적 “소재”content에 더 집중한다. 그 어느 비평가가 리영 리Li-Young Lee의 시를 그의 대용어anaphora 사용을 통해 분석하려고 할까? 어느 비평가가 루이즈 글뤽의 시를 그의 개인적 배경을 통해 (예를 들자면, 롱아일랜드에서 유대인으로 자랐던 배경) 분석하려고 할까? 마치 많은 비평가들이 메릴린 친Marilyn Chin이 중국인으로 자란 배경을 통해 그의 시를 논하는 것처럼 말이다. 헝가리 출신 유대인 이민자인 아버지 (이 사람은 이그젝토 칼[역주: 미국의 커터칼 브랜드] 발명을 도왔다)에게서 태어난 글뤽은 유년기에 비영어권 환경에 노출되었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신경성 식욕부진에 시달렸고, 세라 로렌스 대학과 콜롬비아 대학을 다녔으며, 이러한 사실들은 분명 그의 시를 분석하는 데 있어 중요할 것이다. 그가 자란 곳, 인종, 민족, 계급, 다른 언어 사용 유무 등 이러한 요소들은 다른 수많은 요소들과 더불어 그의 글쓰기에 영향을 미친다. 마찬가지로, 영문학 전통에 관한 그의 지식, 존경하는 시인들의 작업과 씨름했던 나날들, 그리고 언어에 대한 지식들 또한 그의 시를 분석하는 데 중요할 것이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세계, 텍스트, 그리고 비평가The World, the Text, and the Critic>에서 주지하듯, “인간의 삶, 정치학, 사회, 그리고 사건과 같은 실존적 실제성들과 텍스트 사이에는 분명 연결점이 있다.”[각주:7] (이 실제성들은 물론 문학적 그리고 예술적 몰입을 포함한다) 나는 여기서 단순한 방식으로 누군가의 저작을 작가의 인생정보를 통해 분석하자는 게 아니라, 오히려 모든 요소들과 맥락들, 즉 문학적인 것과 문학 외적인 것들을 다 고려하여 시적 주체성의 이해를 돕자는 것이다. 이러한 주체성은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시의 언어를 통해 발현된다. 모든 종류의 언어학적이고 정치사회학적인 고려사항들은 (이중에는 물론 인종과 계급이 포함된다) 인격 형성과 영어라는 언어와 그가 맺는 관계에 영향을 미치며, 이는 자연히 시적 전통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요소들은 시인 개인에게 체화되어 있기도 하고, 한 시인 개인의 세계를 넘어 작용하는 제도적, 이념적, 사회적인 구조를 포함한 다른 모든 종류의 구조들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레이먼드 윌리암스가 말하듯이, “구조와 형식 사이에는 매우 깊은 관계가 있다.”[각주:8] 나는 우리가 마이너리티 시인들은 물론 정전의 위치에 있는 시인들까지 포함해, 이들을 분석할 때 형식적 분석’과 함께’ 그들의 작업을 형성한 사회적, 문화적, 역사적, 그리고 문학적 맥락들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이다.

비평가들이 좀 더 “주류” 위치에 서있는 마이너리티 서정시인들—엘리자베스 알렉산더와 리영 리 같은—의 작업을 분석할 때, 그들은 “소재”content에 주로 주목하는 경향이 있으며, 비슷한 방식으로 비평가들이 그 미학적 반대급부에 있는 이들, “아방가르드(전위)”를 다룰 때 전위시인들의 인종이나 민족적 정체성을 완전히 무시함으로써 분석에 우를 범한다. 이는 심지어 이러한 시인들이 자신의 저작에서 인종의 문제, 그리고 인종/민족적 정체성 형성의 중요성에 관해 피력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면 메이-메이 베르센브루게Mei-mei Bergsenbrugge 혹은 윌 알렉산더Will Alexander). 이는 전위시 비평가들이 다른 사회적 사안들에 대해 논할 능력이 없는 게 아니다. 예를 들면, 언어시에 대해 연구하는 연구자들은 암묵적으로 자본주의적 시장 경제를 비판하는 언어시 저작들의 형식적 구조를 읽어내는 것에 매우 능숙하다. 비슷하게 다른 비평가들은 린 헤지니안Lyn Hejinian같은 시인들의 저작에서 어떻게 젠더의 차이가 글쓰기의 형식을 통해 발현되는지에 대한 정곡을 찌르는 서술을 펼친다. 다만, 이들에게 인종만이 다뤄지지 못할 요소인 것으로 보일 뿐이다.

인터넷 문화의 대두와 “다문화주의”의 도래 이후 교육받은 젊은 유색인종 비평가들의 증가로 인해 내가 앞서 묘사한 문학평론의 상황은 조금씩 바뀌고 있을지 몰라도, 나는 주류적으로 여전히 시 비평가들이 학술사회 안팎에서 (몇몇 젊은 마이너리티 비평가들을 포함해) 마이너리티 시를 앞서 설명한 방식으로 지속적인 오독을 범하고 있다는 입장이다.[각주:9] 몇몇 비평가들이 아시아계 미국 시인들의 저작에서 형식적인 실험이 이루어지는 것을 인지할 의향이 있다 한들, 이들 작업의 문학적 요소와 사회적 요소를 모두 깊게 살피는 지속적인 비판적 분석은 결여되어 있다.

…(중략)

모든 글은 미학적 그리고 사회적 공간 둘 다에 자리하고 있다.

비평가들은 “인종적 표지가 없는” 시를 분석할 때와 마찬가지로, 마이너리티 시를 분석할 때 이들의 문학 양식의 범위 전체와 같은 층위의 복잡성을 염두에 두고, 이들의 언어 (문학적, 언어학적, 그리고 수사학적 요소들)에 대한 똑같은 수준의 독해, 복잡한 결로 이루어진 “형식form”과 “내용content” 사이의 상호작용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여야 하며, 환원적이고 이분법적인 분류법, 즉 형식과 내용이나 문화/사회/정치적인 것과 문학적인 것 등을 대치시키는 짓을 지양해야 한다. 시는 형식적으로(언어학적 구조를 통해서든 아니면 문학적이고 수사학적인 형태를 통해서든) 자신이 노출되어 있는 외부요소들과 맥락들을 구현한다.[각주:10] 이러한 관계성은 대놓고 “정치적”인 시는 물론 추상적인 전위시에도 똑같이 통용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리영 리의 시에 적용될 수 있는 만큼 마크 스트랜드의 시에도 적용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스트랜드의 시가 가진 시적 언어는 “민족 시”의 언어만큼이나 사회 정치적 맥락에 깃든 정신과 효과에 의해 노골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각인되어 있다.

다시 말하자면, 백인 시인들에게 적용되는 것은 마이너리티 시인들에게 똑같이 적용되며,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존재감을 사유하기: 동시대 아시아계 미국시에서의 형식, 인종, 그리고 주체성>>에서의 내 주장이 여기서 분석되는 시인들의 저작에서 인종적 호명racial interpellation과 인종적 주체성racialized subjectivity이 갖는 역할을 조명하는 것 같다면, 그 이유는 내가 이들 아시아계 미국인 시인들 혹은 다른 마이너리시 시인들의 저작에서 인종이라는 것이 유일한—혹은 필연적으로 제일 주요한—분석요소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여태까지의 비평담론 중 압도적인 부분에서 이렇게 중요한 문제가 도외시 되어왔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학술작업 그리고 문학비평 작업에서의 정치적 (제도적, 그리고 지적) 그리고 미학적 지분을 등한시해서는 안된다. 그 누구도 자신이 무엇과 투쟁하고 있는지 잊어서는 안된다. 

이 말은 곧, 제일 추상적이고 인종적 표지가 부재해 보이는 시에서도 정치학적 그리고 미학적 관심사는 서로 밀접하게 엮어져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는 간곡한 권고이며, 이러한 권고는 강력한 권력을 지닌 제도적 그리고 인문학 담론에 의해 무시당하기 일쑤다. 이들 담론은 문학적 가치와 문학적 논의의 틀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을 갖는다. 사이드를 인용하겠다.


문화는 …자신의 승격화된 혹은 우월한 위치, 즉 허용하고, 지배하고, 정당화하고, 강등시키고, 금지시키고, 그리고 유효화 할 수 있는 위치로 인해 권력을 갖는다. 요약하자면, 문화의 권력은 자신의 범위 내, 그리고 심지어 그 범위 밖에서 작용하는 강력한 차등화의 매개가 됨으로써 생성된다. (앞서 인용한 글, 9쪽)

문화에 있어 더욱 중요한 것은 범위에 있는 거의 모든 것에 ‘스며드는’ 가치체계이다. (원문강조 인용, 9쪽)

비평은 요약하자면 항상 상황적이다. (23쪽)


문학비평가로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물음들을 던져 볼 수 있다. “왜 시 평론가로서 인종에 대해 거론하는 것이 이렇게도 힘든가?” “왜 미국 시에 대한 논의에서 인종 문제는 매번 도외시되는가, 그리고 만약 아주 드물게 거론된다고 할 때, 왜 그렇게 환원적인 방식으로만 논해지는가?” “‘진정한’ 시의 자리 앞에 앉게 하는 권력은 누가 쥐고 있는가? 이러한 자리는 어떤 모습을 하는가?”

찰스 번스타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회적 관계의 왜곡이 계속되는 한, 시의 화자에 관한 것은 절대 중립적인 사안이 될 수 없다.”[각주:11]


원문: 

Wang_Thinking Its Presence_ Form_Preface_Intro_2014.pdf







  1. 약 30년전에 아프리카계 미국문학은 드디어 “진정한” 마이너리티 문학으로서의 지위를 제도적으로 인정받았다. 이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헨리 루이스 게이츠 주니어의 비호 아래 아프리카계 미국연구학과를 개설하기로 결정하면서 이루어졌다. “마이너리티”minority와 “마이너”minor 등의 개념에 대한 설득력있는 논의는 압둘 R. 잔 모하메드Abdul R. Jan Mohamed와 데이빗 로이드David Lloyd가 자신들의 편저 마이너리티 담론의 성격과 맥락The Nature and Context of Minority Discourse (뉴욕: 옥스포드 대학교 출판사, 1990)에 쓴 서문 참조. [본문으로]
  2. 아시아계 미국인들에게서 타인들이 인지하는 외부인성은 그들로 하여금 “미국적”인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개념과 영어와의 “모국적native” 관계의 형성가능성으로부터 본질적으로 배제되게끔 한다. [본문으로]
  3. 여기엔 몇몇의 예외가 있을 뿐인데, 이들 또한 대부분 논쟁의 대상이 되어 있다. 샌디에이고 소재 캘리포니아 주립대의 문학과, 그리고 영문학과와 다른 문학과들을 같은 학과로 합친 산타크루즈 소재의 캘리포니아 주립대가 그 예이다. [본문으로]
  4. 예를 들어, 2013년 7월부로 예일대학교에서 영문학과 학과장인 랭던 해머Langdon Hammer가 가르쳤던 “모던 시Modern Poetry” 수업 (수업코드 English 310)에서는 엘리엇, 스티븐스, 파운드, 크레인, 오든, 그리고 프로스트와 메리앤 무어, 엘리자베스 비숍을 다뤘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이들은 모두 백인 시인이다. 이 수업의 수업계획표와 강의는 모두 오픈 예일 코스(Open Yale Courses)에서 볼 수 있는데, 이는 모더니즘 문학 정전에 관한 (암묵적) 이데올로기를 예일대 학부생들 뿐만이 아니라 훨씬 더 많은 대중에게 확산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링크: http://oyc.yale.edu/english/engl-310#syllabus. [본문으로]
  5. “보편적”으로 보여지는 것은 “인종적 표지가 없는” 것으로 생각되며, 물론 이는 암묵적으로 백인이라고 가정된다. 백인성은 인종적 분류로 치부되지 않는 것이다. 동시에, 이러한 “표지 없는unmarked” 보편적 시인들은 개인적이고 입체적인 주체들로서 자유롭게 인간적인 (감정적, 미학적, 등등) 경험과 태도들을 취할 수 있다. 이에 반해 민족 시인들은 구분되지 않고, 일차원적이고 균질적인 존재양태를 공유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예를 들자면, “흑인성” 혹은 “아시아성” 같은 것과 말이다. “표지 없는unmarked” (백인) 시인들이 보편적인 위치와 개인주의적인 위치를 동시에 점유하는데 비해, 마이너리티 시인들의 저작은 보편적이지 않은 (그리하여 하찮은 것이고 중요하지 않은 것)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라 받아들여지지만, 또한 하나의 단일한 추상적 기표 분류single abstract signifying category에 속해진다. 물론 여기서의 아이러니는 추상적인 기표로 읽혀지는 것이 마이너리티 주체 혹은 시인이 추상적 사유를 펼칠 수 있다고 받아들여지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이 시인들은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인종적 차이만을 통해 해석되고, 자신들의 저작은 담겨진 사회학적 소재와 인종적 차이를 나타내는 구체적인 기표들(디테일, 모티브)로만을 통해 평가된다. [본문으로]
  6. 영문학과 아시아계 미국연구학 두 학과 모두에서 교육받은 젊은 아시아계 미국인 학자들의 작업이 예외가 될 수 있겠다. 예를 들어 펄로프Perloff의 제자인 티모시 유Timothy Yu, 조셉 종현 전Joseph Jonghyun Jeon, 그리고 워렌 류Warren Liu. 조셉 전과 워렌 류는 둘 다 찰스 알티에리에 대해 논문을 썼다. 티모시 유, 인종과 아방가르드: 1965년 이후의 실험적 아시아계 미국시Race and the Avant-Garde: Experimental Asian American Poetry Since 1965 (스탠포드, 캘리포니아: 스탠포드 대학교 출판사, 2009); 조셉 전, 인종적 사물, 인종적 형식: 아방가르드 아시아계 미국시에서의 객체성Racial Things, Racial Forms: Objecthood in Avant-Garde Asian American Poetry (아이오와 시티: 아이오와 주립대 출판사, 2012); 그리고 워렌 류, 실험의 객체: 아시아계 미국 실험문학에서의 주체성 형상화The Object of Experimen: Figurations of Subjectivity in Asian American Experimental Literature 박사논문, 버클리 소재 캘리포니아 주립대, 2004. [본문으로]
  7. 에드워드 사이드, 세계, 텍스트, 그리고 비평가 The World, the Text, and the Critic (캠브릿지, 마사츄셋: 하버드 대학교 출판사, 1983), 5쪽. [본문으로]
  8. 레이먼드 윌리암스, 모더니즘의 정치학 The Politics of Modernism (런던: 버소 출판사, 1989), 80쪽. [본문으로]
  9. 아시아계 미국인 시에 집중하는 학자들의 수는 한 손으로도 셀 수 있다. 최근의 아시아계 미국 학계에서 “형식form”이라는 단어의 증가하는 빈도수가 증명하듯, 유, 전, 류, 그리고 나와 같은 학자들은 점점 더 많이 형식적 실험과 20세기-21세기 미국시와 비교해서 아시아계 미국시의 맥락화의 문제 등을 다룬다. 조세핀 녹희 파크Josephine Nock-hee Park의 <<아시아의 유령들: 모더니스트 형식과 아시아계 미국 시학apparitions of asia: modernist form and the asian american poetics>> (뉴욕: 옥스포드 대학교 출판사, 2008)도 참조. 내가 이러한 류의 아시아계 미국문학의 비판적 분석을 처음 시작하는 데 기여했지만 (나의 박사 논문, 필연적인 형상들: 리영 리, 메릴린 친, 그리고 존 야오의 시에서의 은유, 역설, 그리고 패러디 박사논문, 버클리 소재 캘리포니아 주립대, 1998. 참조), 사회 일반에서 혹은 학계 내에서 역사와 정치적 맥락에 대한 의식 없이 “형식form”을 이야기하는 것은 인종적인 “소재content”만을 통한 분석만큼이나 환원적이고 반동적인 분석을 야기할 수 있는 리스크가 커진다는 점을 강력하게 주지시키고 싶다. 최근의 문학비평에서의 “형식주의” 유행의 정치적 형태들은 다양하며, 백인 비평가 뿐만 아니라 마이너리티 비평가 역시 텍스트를 세상으로부터 유리시키는 우를 범할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다. [본문으로]
  10. “어찌되었건, 의미는 발생한다 / 오로지 의식적이고 의식적이지 않은 맥락에서, / 만회가능하고 복구불가능한, 역학,” 이라고 시인이자 비평가인 찰스 번스타인이 흡수 장치Artifice of Absorption에서 쓰고 있다. 시학 A Poetrics (캠브릿지, 마사츄셋: 하버드 대학교 출판사, 1992) 13쪽. [본문으로]
  11. 위의 책, 5쪽.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