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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iieeeee!: 아시아계 미국인 작가들의 선집 Aiiieeeee!: An Anthology of Asian American Writers (1974) 서문번역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단일한 집단이라기 보단 다양하게 이루어져 있다. 중국계 미국인, 일본계 미국인, 그리고 필리핀계 미국인. 중국계와 일본계 미국인들은 중국과 일본으로부터 지리, 문화, 그리고 역사에 의해 각각 7세대, 그리고 4세대동안이나 분리되어 있었다. 그들은 중국인이나 일본인과도, 그리고 미국 백인과도 다른 독특한 문화와 감각들을 발달시켜 왔다. 심지어 오늘날 미국에 존재하는 그들 아시아계 언어들조차 새 경험을 통해 얻어진 감수성을 표현하기 위해 변형되고 개발되었다. 미국에서, 중국계 그리고 일본계 미국인들의 문화와 역사는 혼란스러움, 서로간의 원한 쌓인 감정과 그것의 대중화,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요소들과 불가결한 방식으로 엮여 있다. 

필리핀계 미국인들은 역사적으로 봤을 때 중국계 그리고 일본계 미국인들과는 매우 다르며, 필라핀과 미국 사이의 문화적 연속성, 그리고 미국과 서유럽이 필리핀에 끼쳐왔던 영향에 있어서도 매우 다르다. 이 차이는 오로지 내적으로만 규정될수 있으므로, 따로 논의되어야 한다.



이 선집은 오로지 아시아계 미국인의 것만을 포함하고 있다. 필리핀계, 중국계, 그리고 일본계 미국인들. 이들은 미국에서 나고 자랐고, 라디오, 영화, 텔레비전, 만화책을 통해, 즉 미국의 백인 중심적 문화를 주도하는 이들이 만든 재현을 통해서만 중국과 일본을 접했다. 이러한 재현에서 황인들은 상처입고, 슬프고, 화나고, 욕할 때, 아니면 정처없이 떠돌거나 불평하거나 고함지르거나 절규할 때 “아이이이이!aiiieeeee!” 라고 외치는 이들로 나타난다. 미국 문화에 창의적으로 참여하는 데 있어서, 아시아계 미국인은 오랫동안 무시되고 강압적으로 배제되었으며, 이로 인해 이들은 상처받고, 슬퍼하고, 화가 나며, 욕을 하고, 정처없이 떠돈다. 이 때 내뱉는 것이 그의(his) “AIIIEEEEE!!!” 이다. 이는 불평, 고함, 그리고 절규보다 더한 무언가이며, 50년간 우리가 내었던 온전한 목소리이다. 

오늘날의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일곱 세대에 걸친 억압, 그리고 사법적 인종차별과 백인들의 완곡화된 인종차별적 연민으로 인해 자기혐오, 자기부정, 그리고 파편화의 상태에 이르렀다. 우리들은 중국계 혹은 일본계 미국인으로서의 문화적 통합성 따위는 없다고, 그러므로 우리는 (백인) 미국인 아니면 아시아 (중국 혹은 일본)인 중 하나 (혹은 둘을 적당히 섞은 것)라고 믿도록 부추김 당했다. 이러한 이항대립의 고정관념과 이와 별 다를게 없는 이중인격이라는 개념이 우리들의 뇌를 지배하고 있던 와중에, 아시아와 미국 백인들으로부터 거부당한 우리는, 결국 이도 저도 아니었음이 증명됐다. 반반도 아니었고, 1/4과3/4 비율로 섞인 것도 아니었다. 아시아 문화도, 미국 문화도 매우 피상적인 방식 말고는 우리들을 정의할 능력이 없었다. 하지만, 미국 내 소수자로서의 우리의 특별함을 정당화 시키는 것을 거부하는 능력이 미국 문화에게는 있었으며, 그렇게 하였고, 이 과정에서 우리의 감각 발달과 표현에 있어 매우 큰 자기혐오적 효과를 가져왔고, 이로 인해 중국계 그리고 일본계 미국인들로 하여금 집단적으로 자기 자신을 거부하게 되는 현상을 초래하는 데 큰 일조를 하였다. 일본계 미국 시민 연맹(JACL; Japanese American Citizens League)의 주간지인 <태평양의 시민Pacific Citizen>은 1972년 2월 일본계 미국인 여성의 타인종간 혼인률이 50% 이상이며, 이는 매년 증가 추세에 있다는 보도를 내놓았다. 공개된 통계자료 또한 비슷한 경향이 중국계 미국인 여성들에게도 나타난다는 것을 시사하지만, 50%까지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어느 정도는 현실에 근거한, 그리고 어느 정도는 고정관념에 의한 미국 문화 내에서의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침묵과 마찬가지로, 앞서 언급한 통계는 우리들의 감각, 그리고 우리들이 갖는 중국계 미국인 혹은 일본인 미국인의 개념, 우리들의 자존감에 대해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이 선집에 선별된 글들의 연도, 다양성, 깊이, 그리고 질은 아시아와 미국 백인 문화의 것과 연결되어 있지만 본질적으로 다른 아시아계 미국인 감각과 문화의 존재를 증명한다. 백인성의 성역을 수호하려는 미국 문화는 우리들을 외국인으로서 하대하고 아시아계 미국 문학을 “미국” 문학으로 인정하기를 거부한다. 미국은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벌써 일곱 세대에 걸쳐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시아계 미국이라는 존재를 부인한다. 일곱 세대에 걸쳐 우리는 이러한 부인을 의식하고 있었고 이를 내면화 했으며, 이는 재앙적인 결과을 초래했다.

아시아계 미국인 감각은 지금 이 시점에서는 매우 첨예한 것으로, 중국계 혹은 일본계로 태어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아이는 아시아에 살아본 기억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태생”의 아이들과 구분된다. 하지만, 여기 작가들의 실제 태생과 감각 중에, 우리는 그들의 감각을 아시아계 미국인으로서의 존재 척도로서 활용하였다. 빅터 니(Victor Nee)는 중국에서 태어나 5세의 나이에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소설가 루이스 추(Louis Chu)는 아홉 살때 이주하였다. 둘 다, 중국과 중국 문화는 경험의 문제라기 보단 연구 대상이나 말로만 들었던 것과 더 가깝다. 빅터와 그의 아내 브렛은 첫 중국계 미국인 역사서인 <Longtime Californ’: A Documentary Study of an American Chinatown (1973)>을 저술한 적이 있다. 루이스 추의 <차 한 대접 먹어라Eat a Bowl of Tea (1961)>는 미국을 배경으로 한 첫 중국계 미국인 소설이다. 여기서 복잡해 지는 것이 유라시안인 다이애나 챙Diana Chang의 <사랑 전선The Frontiers of Love (1956)>이야말로 미국 태생의 중국계 미국인이 쓴 첫 소설이라는 점이다. 챙은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만 한살이 채 되기 전에 중극올 이주하였고, 상하이의 “유럽 조계지”에서 중국 내의 미국인으로서 자랐다. 그가 서술하는 것은 바로 그 경험이며, 이는 루이스 추가 뉴욕의 차이나차운에 대해 쓰는 것과 대조된다. 그들 둘 사이에서 제기될 수 있는 질문들은 많다. 무엇이 중국계 미국인이고 무엇이 아닌가? 그리하여 혼란(아시아계 미국 문학과 정체성에 대한 우리의 기준은 교조적인 것도, 정당 방침 같은 것도 아니다) 을 방지하기 위해,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이를 오히려 부추기기 위해, 이 선집에서는 두 작품 다 포함되었다. 루이스 추의 저작은 정직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중국계 미국인의 경험을 중국계 미국인의 시선에서 극화하며, 이는 오로지 “중국인의 혹은 백인 관점에서 본 중국인의 관점”에서가 아니다. 다이애나 챙의 혼혈 주인공들과 그들의 순혈 부모님들을 통해 독자에게 문화 충돌의 논리적인 극적 은유를 선사한다. 여기서 주인공인 실비아Sylvia는 자신의 어머니와 아버지 둘 중 하나를 택할수도, 자신의 핏줄을 이 쪽 아니면 저쪽 하나로 규정할 수도 없다. 선택의 문제란 여기서 외부 요인들에 의해 그에게 지워진 거짓으로 보여진다. 

이 선집에 선별된 아시아계 미국 작가들은 감각, 그리고 선택할 수 있었던 여지라는 요소들에 있어 미국화Americanized된 중국계 작가들, 즉 린 유탕Lin Yutang이나 C.Y. 리Lee와 구분된다. 이들은 경험적인 측면에서 미국 태생의 이들은 절대 가질 수 없는, 중국의 문화적 정체성에서, 안정감과 친밀함을 갖는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와는 다르게, 그들은 미국인이 되기를 스스로 선택했다. 그들은 의식적으로 (백인) 미국인이 되기 위해 나아가며, 정형화된 의미에서의 “중국계 미국인”, 즉 올바르고, 충직하며, 순종적이고, 수동적이고, 모범적이며, 교양있는 중국계 미국인이 되는 데에 성공했다. 그러므로 당연히 그들의 저서는 백인성으로부터 비롯하며, 중국계 미국인의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백인 우월주의자가 되는 것이 그들의 의식적이고 자발적이었던 “미국인 되기”의 일부였다. 린 유탕의 <차이나타운 패밀리A Chinatown Family (1948)>과 C.Y. 리의 <플라워 드럼 송Flower Drum Song>는 우리의 감각에 영향을 끼쳤지만 그것을 표현하지는 않았다. 이들 저서는 백인 전통의 중국 장편 문학 장르에 기원을 두는데, 이 전통은 미국인들의 재미를 위해 쓰여진, 앞으로 도래할 미국에 관한 중국인의 글(would-be Chinese writing about America), 즉 <중국인이 우리를 보듯이 As a Chinaman Sees Us>, <중국인의 가능성Chinaman’s Chance>, 그리고 <중국인이 미국을 보다A Chinaman Looks at America>와 같은 저서이다. 이런 여행 서적들은 드 토크빌의 것과 같은 전통이라기 보단, <걸리버 여행기>에 더 가깝다. 이 책들의 매력은 희화적인 측면에서 기인했다. 이들의 유머감각은 중국어로 뒤범벅 된 영어, 그리고 미국 관습과 심리를 희화적으로 설명해 낸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책들은 20세기 초반, 즉 기독교 선교사들과 “세계 여행자”들이 쓴 중국 여행기 저서들이 지배하던 50년 정도의 기간이 지난 뒤에 등장했다. 이 “세계 여행자”들은 기독교 선교사들의 발언을 중국에 관한 권위있는 (신빙성있는) 발언으로 받아들여 인용했다. 이러한 형식의 역행, 즉 중국인 여행객들의 미국 여행기는 희극적인 불가피함이었을 것이다. 이 시기에, 아시아계의 영어 방언이 갖는 희화적 가능성이 미국 대중문화의 일부로 영원히 오용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얼 더 비거스Earl Derr Biggers의 찰리 챈Charlie Chan 소설 시리즈가 유행하게 되며, 월러스 어윈Wallace Irwin의 하시무라 토고Hashimura Togo 이야기가 유행한다. 하시무라 토고 시리즈는 이해하기 어려운 캐릭터지만 미국 가정에서 없어서는 안될 한 일본인 가정부의 모험 이야기를 다루며, <Good Housekeeping>지에 연재되었다. “토고 다이아몬드 대강도를 돕다” (Good Housekeeping지 1917년 3월호) 편에서 하시무라 토고의 위트와 지혜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한 예시를 살펴보자.


때때로 자주 그녀가 내게 다가와 잠긴 목소리로 보고했다. “토고 내 다이아몬드 브로치랑 허버드 아주머니 샤모아 반지 훔쳤을 때 어디다 뒀어?” 


이런 책들과 이야기들의 내용과 심상들은 책의 어조로 인해 더 강화된다. 이러한 어조는 불만섞이고 양해를 구하는 듯한 것인데, 책에서 중국 공무원이 중국 문화와 중국인들의 존재, 그리고 미국으로의 그들의 이주가 전혀 위협적이지 않고 오히려 좋은 일이며, 겸손한 목적을 가진 것임을 설명할 때 쓰이는 어조이다. 뉴욕 소재의 중국 영사 비서관인 J.S. 토우Tow의 <미국의 진짜 중국인The Real Chinese in America (1923)> 같은 책들이 이 때 쓰여졌다. 중국인의 순종적 성격, 그리고 중국의 열등함은 기독교와 백인우월주의로 개종한 중국인들의 저서에서 매우 주요한 주제들이었다. 융 윙Yung Wing의 <중국과 미국에서의 나의 삶My Life in China and America (1909)>는 이러한 초기 황백 우월주의yellow white supremacy의 대표적 저서이다. 

1925년, 비 중국인이며 비 중국계 미국인이자 미묘하게 인종차별적인 작가  얼 더 비거스가 한 시대를 풍미한 모던 중국계 미국인 캐릭터(the modern Chinese American)를 창조했다. 그의 이름은 찰리 챈Charlie Chan, 중국인 탐정으로, “열쇠없는 집” 편에서 “여성과도 같은 가볍고 얌전한 발걸음”으로 걸으며 처음 등장한다. 한 국가에서 다른 국가로 이르는 여행기 형식은 큰 인기를 몰았던 찰리 챈 소설에서 한 문화로부터 다른 문화로 이르는 내면의 여정이 된다. 그리하여, 차이나타운 서적으로 변화한 이러한 형식은 오늘날의 아시아계 미국인이 된다는 것에 대한 대중적 개념을 강화하고 더 선명하게 표현하였다. 바로 이 때, 한 문화에서 다른 문화로 이르는 이중 인격의 개념이 도래한 것이다.

통통하고 화려하며 종잡을 수 없는 모습에 어눌한 말투를 가진 이 여성화된 탐정이 등장한 지 11년 뒤, 중국계 미국인이 중국계 미국에 대해 쓴 첫 저서가 출판되었다. 렁고윤의 <차이나타운의 구석구석 Chinatown Inside Out (1938)>은 찰리 챈 소설의 직계 후손이자 “차이나타운 서적”으로 불리우게 될 것들의 전형이 되었다. 이 공식의 핵심은 이러하다. “나는 스파게티를 먹으므로 미국인이고, 초우면(볶음국수)을 먹으므로 중국인이다.” 중국계 미국인들의 “찰리 챈 모델”은 파르디 로우PArdee Lowe의 <아버지와 영광의 후손들Father and Glorious Descendant>, 린 유탕의 <차이나타운 패밀리>, 제이드 스노우 웡Jade Snow Wong의 <다섯째 중국인 딸Fifth Chinese Daugther>, 가딩 루이Garding Lui의 <차이나타운 안Inside Chinatown>, 그리고 캘빈 리Calvin Lee와 백인인 엘리자베스 콜먼Elizabeth Coleman이 각각 쓴 동명의 다른 책인 <차이나타운 USA/Chinatown, U.S.A.> 등의 저서에서 개발되었다. 

<차이나타운의 구석구석Chinatown Inside Out>은 당연히 가짜다. 작가의 이름인 렁고윤Leong Gor Yun은 광동어로 “두 남자”라는 뜻이다. 이 책은 샌프란시스코와 뉴욕의 차이나타운에서 배부되는 중국어 신문의 몇몇 부분을 멋대로 따와 번역한 내용, 그리고 찰리 챈/푸 만추Fu Manchu스러운 상상력과 공황적이고 정신분열적인 논리를 짜집기해서 쓰였다. 폭로 저널리즘과 요리책의 형식이 섞인 이 책은 우리들의 심리에서 인종차별주의가 가지는 영향을 굽어보려는 측면에서 우월주의적이며, 찰리 챈과 같은 관찰력을 이용해 백인 남자의 비위를 맞추려는 모든 기회를 활용한다. 예를 들어보자.

찹 수이[각주:1]와 마찬가지로, 이 비공식적인 차이나타운 정부는 미국의 생산물이다. 이 정부는 불량배와 같은 수법과 속임수를 쓰지만, 자신의 지속적이고 순조로운 존재를 이어나가기 위해 중국인의 심리에 의존하는데, 이러한 연결점에서 봤을 때 이 양상은 좀 더 정확하게 수동성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에 대해 역겨움을 표하기는 커녕, 미국식 유머감각의 고전이라고 칭송받은 <차이나타운의 구석구석>은 중국계 미국인에 의해 쓰여진 중국계 미국에 관한 최초의 책으로서 받아들여졌다. 아무도, 심지어 중국계 미국인 학자들조차, 어조와 스타일의 어색한 변화라던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과 생판 거짓말 사이의 차이점을 감지하지 못했다. 저자의 필명이 “두 남자”라는 뜻이라는 것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차이나타운의 구석구석>은 린 유탕의 1948년 소설 <차이나타운 패밀리>의 참고자료로 쓰였다. 1962년 중국에서 온 S.W. 쿵Kung이 <미국의 삶 속의 중국인Chinese in American Life>을 출판하였는데, 이 또한 중국계 미국인들에게는 이방인이나 마찬가지인 린 유탕의 <차이나타운 패밀리>를 인용하였다. 콜럼비아 대학의 부학장을 역임했으며 중국요리책을 몇권 출판한 던 캘빈 리Calvin Lee는 광명을 보아 성공적으로 백인 우월주의로 개종했음을 자신의 저서 <차이나타운 U.S.A.>에서 고백했는데, 여기서 그 또한 렁고윤과 S.W. 쿵을 인용하고 있다. 베티 리 성Betty Lee Sung이 출간한 1967년 저서 <황금의 산Mountain of Gold>에서, 그는 “미국에 있는 중국인들”이 자신들을 향한 “편견에 대해 한을 품는 일”이 절대 없었다고 칭찬했다. 더 나아가, “이에 대해 지나치게 기분 나쁘게 행동한다면, 그것은 자신이 받아들여지는데 있어 장애물이 될 것”이라고 썼다. <황금의 산>은 S.W 쿵, 린 유탕, 그리고 캘빈 리가 전파하던 복음을 그대로 인용한다. 렁고윤의 복음은 1971년 프랜시스 L.K. 수Francis L.K. Hsu의 <아메리칸 드림이 던지는 과제The Challenge of the American Dream>에서 실소를 유발하는 셀프 패러디물이 된다. 


미국의 중국인들은, 다른 소수자 집단들과 마찬가지로 이중 정체성이라는 지속적인 문제를 안고 갈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것을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방법은 이 문제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직면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첫 단계는 소수자 집단의 이중 정체성 문제를 직업 여성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깨닫는 것이다. 직업 여성은 여성이면서 취직자이다. 몇몇 미국 직업여성은 자신들의 성 정체성을 잊는 경향을 보이지만, 대부분은 자신들의 성 정체성과 직업생활 사이의 어떠한 균형을 맞추며 살아간다. 후자의 경우, 그들의 성 정체성은 장애로서가 아니라 장점으로서 활용된다. 


수의 저서는 상위 중산층 계급의 이민 1세대 중국계 학자의 속내를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수도, 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미국 태생의 중국계 미국인의 감각으로 봤을 때는, 그의 중국계 미국에 대한 비전이 그저 찰리 챈과 렁고윤의 유서 깊은 전통에 기인해 백인 인종차별주의자가 활용하는 스테레오타입을 강화시키고, 이는 말콤 X 를 비롯한 다른 흑인들이 자신들의 “소수성”에 대해 가졌던 비전에 비해 너무나도 뒤쳐진다. 

찰리 챈, 푸 만추, 그리고 렁고윤을 낳은 1920년대 후반에서 30년대까지의 시기는 중국 여성들 없이 미국에 표류한 “중국 남아들”(China boys)에 대한 대중음악, 찰스튼 음악[각주:2], 그리고 폭스 트로트(fox trots) 같은 것들이 생산된 시기이기도 했다. 이러한 예시중 하나로 “So Long Oolong (How Long You Gonne Be Gone) [잘가 우롱(얼마나 오래 가있을 거야)]”라는 노래가 있는데, 여기서 가사는 “밍 토이Ming Toy”라는 여자가 미국에 표류한 그의 연인인 “우롱”에 대해 느끼는 가슴아픈 감정에 대한 것이다. “Little Chinky Butterfly [작은 짱깨 나비],” “Hong Kong Dream Girl[홍콩의 꿈의 여인],” 그리고 다른 여럿 노래들은 틴 팬 앨리Tin Pan Alley[각주:3]가 마치 중국인 여성들의 미국 입국이 막힘으로써 1923년에 중국인 배척법의 법적 구멍들을 성공적으로 막아내어진 것을 축하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때, 유독 백인 여성들을 우상화하고 그들에게 접근하는 것을 무서워하던 수동적인 중국인을 소재로 한 대중소설과 영화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으며, 이는 <신의 아들Son of the Gods>, <동양은 서양이다East is West>, 그리고 푸만추와 찰리 챈 시리즈물로 대표된다. 

이 와중에 일본계 미국인들은 언더그라운드 출판과 영어로 된 문학운동을 시작했으며, 자신들만의 시, 문학 정기 출간물을 내기 시작했고, 지금에도 그렇듯 신문 명절 특별호에 실릴 문예창작물을 생산해 내기 시작했다.

“차이나타운 인사이드”물은 거의 미국 태생의 중국계들이 생산해 냈지만, 중국 출신의 중국계들은 이런 장르물의 공식을 점유하여 돈과 인기를 몰기 위해 활용하였다. 중국인의 정체성과 중국의 문화가치관에 안착해 있던 그들은 (미국에서 이러한 정체성과 가치관의 “만다린 버전Mandarin version”은 존중의 대상이다)[각주:4] 이런 저서들에 의해 크게 혹은 사적으로 영향을 받거나 하지 않는다. 이에 비해 미국 태생의 중국계들에게 있어 이러한 저서들은 중국계 미국인의 정체성과 동화주의에 대한 선언문처럼 받아들여지기 마련이다. 린 유탕과 C.Y. 리 같은 중국계 작가들(중국계 미국인들이 아닌)은 “스파게티-초우면” 공식을 정교화해 갔다. 아서 T.S. 추Arthur T.S. Chu의 <이 도시에서 제일 허접한 찹 수이를 만들 거야We Are Going to Make the Lousiest Chop Suey in Town (1966)>에서 이러한 공식은 가장 터무니없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세계2차대전 당시에는, 이러한 책들이 훨씬 더 사적으로 변해갔고, 훨씬 더 선동적으로 변해갔다. 애국 보수 중국계 미국인들은 반일본 프로파간다를 자서전처럼 위장하여 출판했다. 파르디 로우의 <아버지와 영광의 후손들>은 이러한 작업물 중 하나이다. <다섯번째 중국인 딸>은 1950년에 출판됐지만, 이러한 “자서전으로 위장한 프로파간다”의 틀에 딱 들어맞는다. 작가가 이 책에 대한 저술을 전쟁 당시 착수하기 시작했다고 믿을만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이 책의 챕터들이 1947년도에 잡지를 통해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이때 횡횡했던 반일본 전쟁영화로 읽어낼 수 있는 당대 미국에서의 “반 쪽바리anti-Jap”라는 이름으로 전개된 편견은 50년대 중반까지도 널리 퍼져있었다. 이때 처음으로 백인들의 태도에서 작은 변화가 감지 되는데, 이러한 신호들 중 하나가 바로 미국에 충성했던 일본계 미국인들에 대한 편견은 옮지 않다는 내용의 안내문이 TV로 방영되던 “반 쪽바리” 2차대전 전쟁영화 상영 전에 나오도록 한 것이었다. 

여행서적이나 대중음악에서, 일본계 미국인들은 중국계 미국인들과 제대로 구분지어지지 않은 채 뒤섞여있다. 미국의 대중 정서로는, 일본과 중국, 그리고 일본계 미국인과 중국계 미국인들은 그들의 이국적인 특징에 있어 똑같다고 취급된다. 중국과 일본, 그리고 일본계 미국인은 증오를 통해 서로로부터 구분된다. 이러한 증오는 문화나 정치적인 측면에서가 아니라, “햇필즈가와 맥코이가the Hatfields and McCoys”라는 공식을 통해 설명된다. 이들은 즉, 바보같지만 그래도 문명화된 촌놈들이 문명의 땅에서 서로 구역 싸움을 하고 있다는 모양새로 설명된다는 것이다. 중국계 미국인들은 미국의 애완견 취급을 받아, 개집 안에 잘 가둬져 그루밍을 받고, 일본계 미국인들은 유치장에 묶여진 광견 취급을 받는다. 이들 통해 일본계 미국인 공동체의 출판물 작업을 하던 작가들과 편집인들은 일본계 미국인 예술가, 시인, 이야기꾼들과 점점 더 가까워져 갔다. 활동으로 시작한 일본계 미국인들의 영어 저술활동은 지금은 운동으로 굳혀졌다.

일본계 미국인의 시구 전통은 영어로 쓰여졌을 때의 섬세함과 이국적임으로 규정되며, 이는 요네 노구치Yone Noguchi 그리고 사다키치 하트먼 Sadakichi Hartman 등으로 대표된다. 이러한 전통은 특유의 “동양의 섬세함”quaintness of the Orient으로 미국문학에 잠시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했지만, 결국 아시아계 미국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들 작가들 또한 아시아계 미국인이 아닌, 린 유탕이나 C.Y. 리와 같이 미국화된 아시아인들이었기 때문이다.

최초로 대중을 강타한 아시아계 미국인의 독창적인 문학은 글과 그림을 활용한 자전적 서사인 미네 오쿠보Mine Okubo의 <시티즌 13660 Citizen 13660>으로, 작가의 입장에서 이주와 수용캠프경험을 묘사한 것이다. 반일 감정이 여전히 높았던 1946년의 출간 당시 상황을 고려해보면, 엄청난 책이었다고 할 수 있다. 토시오 모리Toshio Mori의 서사집 <요코하마, 캘리포니아>는 1949년에 등장했으며, 이 경우 2차대전 당시의 “반 쪽바리” 편견이 일본계 미국인에 대한 출판물에도 작용했다. 하지만, 주목할 만한 점은 중국계 미국인들의 것이 그랬듯 변형되고 오용되고 조작되어지는 것은 피할 수 있었다.

전쟁 후, 일본계 미국인들을 재활시킬 수 있던 최적의 방법은  백인들의 관점에서 봤을 때 중국계 미국인들과 연결지어 보면서 둘을 섞어놓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섯뻔째 중국인 딸>에서 태어난 모니카 소네Monica Sone의 <2세 딸Nisei Daughter>는, 일본계 미국인의 온전성을 보존하는 점에서 매우 주목할만한 저서임에도 불구하고, 출판인으로서의 관점에서 봤을 때 이는 웡의 사탕발림과 대놓고 비슷하다고 보여진다.

이 선집에 선별된 중국계, 일본계, 그리고 필리핀계 미국인의 작업들은 톰 울프Tom Wolfe나 ABC 채널 (<내일이 오면If Tomorrow Comes>, <쿵푸Kung Fu>, <마담 씬Madame Sin> 등)과 같은 백인 리버럴 대중문화 지주들이나 군터 바르트Gunther Barth 혹은 스튜어트 밀러Stuart Miller와 같이 학자 행세를 하는 인종차별주의자 행동대장들이 표상하는 아시아계 미국인들, 즉 기적의 인공 백인이 되어야 한다고 사탕발림하는 저술들과는 궤를 달리한다. 

이 선집의 아시아계 미국인 작가들은 유려하고, 반발적이고, 분노와 회한을 품고 있으며, 무엇보다 전투적으로 반-백인주의적이다. 이는 복수심에 불타거나 변태적인 것이 아니고, 솔직함에서 나오는 것이다. 인종차별주의적인 백인 우월주의가 사랑과 수용이라는 이름으로 패싱되는 미국의 거짓됨은 7세대에 걸친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목소리를 침묵시켰으니, 우리가 삶에서 분노와 쓰라림, 동시에 우아함 같이 보여줄 게 많다는 것은 자명하다. 더군다나 우리는 이것들을 어떻게 보여줘야 하는 지도 잘 알고있다. 우리는 뽐낼 것이다. 독자들이 충격을 받는다면, 그것은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독자 자신의 무지때문이다. 우리는 여기 처음 온게 아니다. Aiiieeeee!!

…(감사의 말 생략)


1973년 샌프란시스코에서


프랭크 친Frank Chin

제프리 폴 챈Jeffrey Paul Chan

로슨 후사오 이나다Lawson Fusao Inada

숀 수 웡Shawn Hsu Wong


서문 원본파일:

aiiieeeee_Anthology_of_asian_american_literature.pdf





  1. 역주: 기원이 불분명한 중국식 볶음요리. 미국에서 많이 팔림 [본문으로]
  2. 역주: 20년대 미국에서 유행한 빠른 리듬의 댄스음악 [본문으로]
  3. 역주: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 미국의 대중음악을 휩쓸었던 뉴욕의 음반인들과 송라이터들을 일컫는 통칭 [본문으로]
  4. 역주: 중국의 수많은 다양한 정체성과 가치관 중에서도 “만다린”, 즉 중국 중앙정부의 것이자 중국의 표준 관치어를 쓰는 주류 중국의 것만을 존중한다는 의미가 있는 듯함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