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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카 하헤도른 외, 『찰리 챈은 죽었다』 Charlie Chan is Dead (1993) 글머리/서문번역

 

 

 

미국에서 인종차별주의의 “움직이는 눈”은 인종을 기반으로 구성된 공동체들을 생성하고  통제했으며, 이들이 각 특정 시점에서 미국의 주류 사회에 끼칠 수 있는 위협의 정도에 따른 의미를 이들 공동체에게 부여하였다. 아시아 출신의 이들이 모인 공동체들은 “오리엔탈”이라고 불리었으며, 이는 이름 없는 “중심”의 동쪽 그리고 주변부를 의미했다. 역사적으로, 아시아계 미국인(이라고 우리가 다시 이름지었다)들은 미국의 인종과 문화 담론에서 “모범 소수자”로서, 혹은 동화되지 못하는 외부인으로서 말고는 아무 위치도 주어지지 못했다. 우리는 주류 문화의 궁극적인 이로음을 설파하는 발언, 그리고 이러한 도식을 따라하기를 거부하는 궁극적인 불량함을 설파하는 발언으로 양분되었다. 동양과 서양, 아시아와 아메리카, 그리고 의심스러운 외부인과 애국자 등의 상호배타적인 이항대립을 직면한 우리들은, 제3의 공간, 즉 이항대립(either/or) 대신 “둘 다/그리고both/and”의 방향을 추구할 때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비-미국적이며 심지어 반-미국적이라고 매도되었다. 이러한 침묵을 강요하는 지배 체계의 맥락 속에서,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문화적 뿌리를 거부하고 체류중인 “이국적 외부인”의 위치를 수용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아시아로 “돌아가”야만 했다.

 

 

예전에, 나는 아시아계 미국 문학을 중국계, 필리핀계, 일본계, 그리고 한국계 작가들의 미국에서의 미국인으로서의 경험을 다룬 작품들로서 규정하려는 시도를 했었다. 이 때, 나는 이 규정이 불분명하고 많은 아시아 언어를 읽지 못했던 나의 능력 부족과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 공동체와의 접점 부재에 기인했다는 것을 인정한 바 있다. 이러한 부족함으로 인해 나는 나의 개론 연구에 아시아 언어들로 쓰여진 작업들과 베트남계 미국인, 인도계 미국인, 그리고 다른 공동체의 작가들에 의해 쓰여진 작업들 또한 포함하고 싶었다고 서술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시아계 미국인 정체성과 문학이라고 생각했던 것의 경계를 한번 구분해 보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다. 확실히,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경험과 창의적 비전은 기존의 정전에서 제외되거나 왜곡되어 왔다. 나 자신이 1960년대 아이비 리그 대학과 버클리에서 영문학와 미국문학을 전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때 난 유색인종의 저서는 한번도 과제로 받아본 적이 없으며, 랄프 엘리슨이나 리처드 라이트같은 작가들의 저서조차도 다른 “제3세계” 여성들과 미국의 유색인종 작가들의 저서와 마찬가지로 내가 알아서 찾아 읽었을 뿐이었다. 미국의 공식적 그리고 대중적 문학문화에 새겨져 있는 약 한세기 반 동안의 질기고 깊은 인종차별의 흔적들은 외부적 타자로서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그로테스크한 재현을 영속시켰으며, 이는 악당, 드래곤 레이디dragon ladies[각주:1], 야만인, 구제의 여지가 없는 이교도, 희화화된 가정부, 충직한 조수loyal sidekick, 수지 웡[각주:2], 혹은 영특한 무성애자 탐정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수없이 많은 다른 아시아계 미국인들처럼, 나는 이들이 “우리의 현실”과 다르다고 주장해야 할 급박한 필요성을 느꼈다. 우리의 전략은 이러한 비인간적인 캐릭터화에 맞서 자주적인 아시아계 미국인 정체성을 주장하는 것이었다. 이러함으로 인해 애초에 이러한 환경을 제공한 배타적인 이항대립의 체계의 한계 안에 갖히는 한이 있더라고 말이다.

 

여러 부분에서, 나는 아시아계 미국문학을 저항과 망명의 문학, 이산과 장소성의 문학, 그리고 정신적 물리적인 “고향”home에 관한 (“고향”을 찾고 점유하거나, “귀향”을 고대하는) 문학으로 받아들인다. 나는 이들을 한데 묶을 통일적인 주제, 그리고 망명자들에게 치유가 되고 이산의 고통을 줄일 수 있는 정돈된 결의를 찾아 나섰다. 이러한 균질적homogenizing인 접근법이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경험을 개발주의적 서사로 환원하려는 지배 문화와 얼마나 닮아 있었든 간에 말이다. 이러한 서사는 “원시” “동양” 그리고 외국 이민자들이 “문명화된,” ‘서구적”, 그리고 “미국화된” 충직한 시민으로 거듭나는 궤적을 따른다. 

 

우리가 구성해왔던 문화민족주의적 방어논리는 반 동화주의적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공식 국가주의를 반대하는 동시에 제시했던 아시아계 미국인 정체성은 고정되고, 닫혀있고, 매우 좁은 형태로 규정되어 있었으며, “아시아계 미국인”을 “아시아인”과 가능한 한 매우 날카롭게 구분했다. 이들은 인종을 젠더와 계급보다 우선시했으며, 강제적인 이성애주의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수용했고, 정통성authenticity의 위계를 구성해 “진짜”와 “가짜”를 구분했다. 이러한 규정에 의하면, 아시아계 미국인의 존재 양상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이상적인 아시아계 미국인은 남성이고, 이성애자고, 중국계나 일본계이며, 영어 사용자였던 것이다. 중국계 미국인들의 중심지는 샌프란시스코 혹은 뉴욕의 차이나타운이었고, 일본계 미국인들의 심장부는 하와이나 일본계 1세issei와 2세nisei가 2차세계대전 당시 잃어버렸던 농업지를 가로지르는 99번 고속도로였다. 아시아계 미국역사는 철로, “총각 사회”, 그리고 강제수용의 역사였다. 신성시된 아시아계 미국 텍스트는 (예를 들어 카를로스 불로산의 <미국은 내 마음 속에America in the Heart>, 존 오카다의 <노-노 보이No-No Boy>, 그리고 루이스 추의 <차 한 사발 먹어라Eat a Bowl of Tea> 등) “죽은 백인 남자들”의 작업을 “죽은 황인 남자”로 대체하는 것이었다. 아시아계 미국문학 연구는 보통 이러한 정전화의 개념을 문제시하지 않는 대신, 그저 대안적 정전을 고안해 낼 뿐이었다. 모든 영화, 기사, 그리고 소설들은 자구적이고 근엄하게 내려져 오는 역사적 교훈으로 가득 찬 단차원적인 다큐멘터리가 되어야 하는 것처럼만 보였다. 일반적으로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무지의 정도를 감안했을 때, 이렇게 직설적인 방법 외의 것을 시도하는 건 매우 어려웠다. 너무 많은 노력과 에너지가 애초에 아시아계 미국인들을 담론적인 주체로서 정당화하는데 소모되는 상황에서, 미묘한 지점들, 혼성성, 역설, 그리고 다양한 결들을 다루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문화민족주의적 기획은 지배, 착취,배제의 논리를 방해하고 맞설 수 있었던 잠재력을 지니고 있었다. 당연히 한국계 미국인 여성으로서 나는 아시아계 미국의 문화민족주의가 부여한 고정적, 남성주의적인 아시아계 미국인 정체성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러한 정체성이 여성에 대한 억압, 분노, 그리고 사랑의 방식을 잠재우거나 비가시화하고, 한국계 미국인들을 중국계 미국인들의 불완전한 모방으로서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었음에도 말이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내가 일상에서 유색인종 여성에게 가해지는 물리적 그리고 정신적 폭력이 전부 남성에 의해서만 행해지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고, 내 친구들이 말하듯, “중국인들(혹은 중국계 미국인들)은 아무도 나를 ‘gook’[각주:3]이라고 부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 무엇에도 불구하고, 문화 민족주의적 접근 중 몇몇은 데이빗 로이드가 말했던 “가능성의 역사”를 가시화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었다.

 

내가 “초기” 아시아계 미국인 서사를 발굴하면서, 아시아계 미국인 정체성과 1970년대의 문화를 규정하는 일에 정신을 쏟고 있을 동안, 1965년 미국의 이민자 할당량에 가해졌던 변화가 이미 아시아계 미국인 공동체 내에서 굉장히 크고 가시적인 변화로 이어지고 있었다. 사실, 최근까지도 아시아계 미국인 공동체와 문화는 법적 배제와 감금으로 인해 형성되었던 것이 비해, 동시대의 경험 양상은 세계 정치경제와 문화의 세계화internationalization에 의해 형성되는 경향이 있다. 어제의 젊은 아시아 이주민이 부모님과 함께 미국 주류 사회에서 고립된 채로 하와이의 파인애플 농장이나 태평양 해변의 과수원에서 일했다면, 오늘날의 10대 아시아 이주민은 아시아인 친구들로만 이루어진 공동체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상적으로 그는 다양한 영향에서 기인하는, 굳이 고통스럽지만은 않은 혼란에 직면하게 될 것이고, 자신을 규정하기 위한 자아탐구에 필요한 요소들의 충돌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것은 다른 미국인들과 크게 차이가 없다. 트린 T 민하가 짚고 넘어가듯, “제모든 제1세계에는 제3세계가 있으며,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가 겪는 충돌은 자신의 특정 시점의 문화적 배경, 그리고 이 배경의 구체적인 특이성들과 연결되어 있을 확률이 높다. 그러므로, 그는 어렸을 때 서울에서 “맥가이버”나 “엔터테인먼트 투나잇”을 보고 자란 뒤, 오늘날의 남부 캘리포니아의 쇼핑센터에서 한국어로 된 멜로드라마 비디오를 빌려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지난 20년간, 몇몇 아시아계 미국인 그리고 태평양 등지의 미국인 인구는 500%에서 1000%의 증가율을 보였다. 새로운 아시아계 미국인 공동체들이 전국 각지에서 뿌리를 내렸다. 베트남 난민들은 캘리포니아 주의 웨스트민스터에 정착했고 한국인 이주민들은 뉴욕의 플러싱에 모이게 되었다. 새로이 이주해 오는 이들은 출신, 민족, 언어, 계급, 정치적 배경, 교육수준, 정착양상 등에 있어 매우 다양하다. 그들은 예전에 매우 소수의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살던 도시로 이주해 왔으며, 자신들의 고향에 있을 때는 상상도 못했던 삶을 살기 위해 많은 일들을 한다. 캄보디아 사람들은 도넛을 굽고, 한국인들은 부리또를 싸며, 남아시아인들은 모텔을 운영하고 필리핀 사람들은 공항 셔틀버스를 운전한다. 아시아인들과 아시아계 미국인들 사이의 구분은 과거 정체성 형성에 있어 매우 핵심적이었다면, 지금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아시아와 미국 사이의 소통수단과 교통은 예전처럼 끔찍하지 않으며, 새로운 교차점과 횡단지점들, 그리고 새로운 종류의 유물론적 그리고 문화적 거리를 오늘날 야기하고 있다.

 

아시아계 미국인 정체성은 매우 유동적이고 변형적이다. 만약 당신이 몽 족이 문맹 사회에서 온 영어가 서투른 난민이라고 생각하는 미네소타의 사회운동가라면, 랩 가사를 쓰고 하키를 하며 치카노 여자아이 혹은 남자아이와 연애하는 몽족 10대를 대면했을 때 매우 놀라게 될 것이다. 아시아계 문화든, (“아시아” 혹은 “아시아계 문화와 마찬가지로 더이상 획일적이지 않은) “주류문화”든, 문화는 고정되었던 적도 없고, 연속적이었던 적도, 은밀했던 적도 없다. 미국인들의 단일하고 절대적인 미국 역사라는 개념, 즉 미국의 최초 정체성이나 온전함 따위는 원초적인 백인 미국인의 보편성이라는 인종차별주의적 픽션에 기인하며, 오늘날 망할 갈색인종과 황인종 이주민들을 비롯한 기타 유색인종들이 “그냥 미국인”이라는 최종적인 정체성에 부합하기를 거부함으로써 “미국 문화”가 무너지고 있다는 두려움 또한 이와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이 요즘 들어 모든 것이 나빠지고 있다고 불평하는 것을 자주 듣는다. 미국인들은 점점 더 분열되고 있고, 수용력이 떨어지고 인종 폭력이 예전보다 훨씬 더 극렬해진다고 한다. 하지만 민권 운동 이전의 좋았던 시절을 직접 겪은 경험에 의하면, 오히려 그 시절에 인종 폭력이 훨씬 잦았고 포용력은 훨씬 낮았다. 몇몇 사람들이 오지와 해리엣Ozzie and Harriet의 1950년대, 즉 “좋았던 그 시절”을 평화롭고 조화로웠다고 기억하는 모양이지만 나는 전혀 그렇게 기억하지 않는다. 과거 인종분리가 법이었고 인종간 위계가 자연스럽고 영원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던 시절에, 인종간의 분열은 훨씬 심했다. 내가 자랐던 메릴랜드에는 타인종간 결혼은 불법이었고, 구직 광고는 “남성 전용”과 함께 “백인 전용”이라는 문구를 정기적으로 내걸었다. 최근 뉴스에서 아시아계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혐오범죄가 좀 더 자주 등장하는 건 사실이지만, 1990년의 인종간 폭력이 새로운 현상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아마 “좋았던 시절”의 인종 폭력이 그것을 직접 겪어낸 유색인종의 경험 밖에서 기록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완전히 무지한 듯하다. 내 관점에서 보면, “좋았던 시절”은 유색인종과 여성에게 그렇게 좋지 않았다. 

 

계속 변화중인 미국은 예전부터 이주민들로 구성된 다언어로 이루어진 국가였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이 국가는 아메리카 원주민, 아프리카 노예제와 이에 대한 저항, 멕시코와의 전쟁, 그리고 아직 충분히 인정되지 않은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의 장이었기도 하다. 메이플라워 호와 플라이무스 바위 등의 통일된 서사 따위는 없었다는 것을 인지함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희망적인 미래로 “돌아갈” 수 있다고 느낀다.

 

우리가 희망하는 것이 무엇이든, 모든 것이 알아서 필연적으로 조화로운 해결점으로 도달하지는 않는다. 아마 “고향”같은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부인과 인정이 동시에 일어나는 대립의 장소 이외의 “고향” 같은 건말이다. 그리고 정체성은 “고향”과 마찬가지로, 항상 과정 안에 있으며, 난민의 그것보다는 서로 경합하는 다의의 장site of contending and multiple meanings과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불가피하게도, 문화민족주의가 제시했던 아시아계 미국인의 정체성은 문화민족주의 그 자신의 해체를 경고하는 갈등을 낳을 수 밖에 없었다. 배제되고 비가시화 되었던 이들, 즉 드센 이들, 반항적인 이들, 그리고 부조화를 초래하는 이들이 틈새에서 그물망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아시아계 미국인의 경우, 이러한 드센 성격은 아시아인이면서 동시에 여성으로밖에 존재할 수 밖에 없었던 여성들 뿐만이 아니라, 아시아계 미국 문화민족주의의 본질주의적 측면으로부터 소외되었던 이들에게 기인한다.   

 

 

 

 

이 선집은 이미 축적된 것 뿐만이 아니라 지금 새롭게 가능한 것에 대해 보여준다. 이미 축적된 것으로부터 새롭게 가능한 것이 기인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찰리 챈은 역시 죽었고, 절대 부활하지 못할 것이다. 그의 황인화장과 무성애적 몸뚱이, 포츈쿠키에서나 쓸법한 영어 어투, 전형화된 오리엔탈리즘적 “[유교적] 중국 가족주의”는 영원히 떠났다. 힙하면서도 유창하고, 음울하면서도 섹시한, 건방지면서도 순수한, 다양한 종류의 등장인물들이 그를 떠나보냈다. 하지만 이들은 프랑스어로 글을 쓰는 한국계 미국인, 너무나 뒤늦게 자신의 아버지를 알아가고 싶어하는 중국계-파나마계-독일인, 못된 성격의 일본계 미국인 할머니, 중국계 미국인 불쑈 곡예사, 혹은 10대 필리핀계 미국인 남성 성노동자만큼 예상 밖이지는 않았다. “모범 소수자” 대신, 우리는 풍부하고 복잡한 과거를 가진, 용감하며, 종종 화려한 미래에 대한 꿈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찾는다. 이 책에는 찰리 챈에서나 나올법한 “중국인 가족관”에 부합하는 그 어떤 흔적도 보이지 않는 결손 가정들, 자살, 근친, 아동학대에 관한 비극들, 그리고 늙어감, 사랑, 죽음에 관한 달콤쌉싸름한 노래들도 있다. 무대는 세계 전체, 그리고 작가들은 젊고, 나이가 있으며, 중진, 그리고 신진도 포함한다. 이는 놀랍도록 다양한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출신지와 주체 위치를 반영한다. 이들을 읽는다는 것은, 문화민족주의적 접근법을 넘어서 다양한 전략과 비평적 실천을 활용해야 할 것을 필요로 한다. 

 

내게 있어, 이 선집은 오늘날의 아시아계 미국인으로 살아가는 수많은 방식들을 기리는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제기되는 문제는 더이상 이항대립의 그것이 아니다. 이 선집은 아시아계 미국문학, ‘그리고’ 세계 문학”을 ‘둘 다’ 제공한다. 아시아계 미국 문학작업이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경험에 관한 것일지라도,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이 선집의 작가들은 “사실”을 의미로 변신시키는 마법사들이며, 고통과 침묵을 가로지르며 영향력을 형성하고 역사로부터 추방된 이들을 위한 새로운 공간을 염과 동시에 새로운 문화를 창조한다. “어느날 / 나 너에 대해/ 글을 쓸거야.” 로이스-앤 야마나카Lois-Ann Yamanaka가 “빈 심장Empty Heart”에서 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약속을 지켰다.

 

 

 

일레인 킴.

 

1993년

 

캘리포니아 주 오클랜드에서.


 

 

 

…(중략)…

책보다도 영화는 훨씬 더 직접적이었으며 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문맹이든 그렇지 않든 말이다. 이 때 나는 어렸다. 영화는 신과도 같았다. 그러므로, 영화는 진실과도 같았다.

 

찢어진 눈과 뻐드렁니를 한 쪽발이가 총검을 내지른다. 그는 피에 목말라 있다. 표정을 읽을 수 없는, 눈썹을 테이프로 붙인 꾀많은 중국인 탐정과 그의 꼬부라진 콧수염. 유치하고 건방진 필리핀 소년 가사도우미. 항상 낄낄거리며 고개 숙여 인사하고 뭔가를 긁고 있고. 기분을 맞춰주지만, 믿을 수 없는. 무성애적이고 털 없는 아시아 남자들. 순종적이고 과성애화된 아시아 여자들. 게이샤. 관능적으로 사롱을 두른 남아시아 하녀. 뱀같이 교활한 드래곤 레이디dragon ladies[각주:4]. 신비롭고, 쾌락을 선사하는. 여성화된. 믿을 수 없는. 황인화yellow peril. 포춘 쿠키 점쟁이. 야만인. 개고기. 비가시적인. 벙어리. 애 많이 낳는 얼굴없는 천민들. gooks.[각주:5] 2차대전 당시 수동적으로 수용캠프로 끌려가던 일본계 미국인들.

 

오늘날의 이미지들은 좀 더 미세한 스테레오타입과 연관되어 있다. 요즘엔 세상 모든 반 고흐 그림과 뉴욕시 전체를 사들이려는 욕심많고 똑똑한 일본인 사업가가 있다. <궁극의 범생이Ultimate Nerd>에서는 모범 소수자인 아시아계 미국인 학생이 수학과 컴퓨터공학에 출중하며, 공부(일)에 과도하게 집착한다. <미스 사이공Miss Saigon>은 현대판 나비부인, 즉 전쟁으로 폐허가 된 베트남 출신의 비극적인 피해자/성매매자가 자신과 자신의 아들을 버리고 떠난 백인 청년 군인을 영원히 기다리는 내용이다. 이는 마르게리트 뒤라의 대중소설이자, 최근 영화화된 <The Lover(L’Amant)>에서는 한심한 중국인 갑부가 자신의 빈곤계급 출신의 10대 금발의 마른 S성향의 여성에게 완전하게 지배당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우리는 자주 아이를 돌보는 가정부로 등장하는데, 이때 우리는 유머감각도 없고, 자기주장도 없이 거세되어 있지만, 하지만 동시에 서구 영화와 문학에서 이국적 성노리개로서 성애화된다. 우리의 미국적인 특성으로서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 정도가 있다. 우리는 불평도 안하고 모욕을 참으며, 거의 초인간적인 참을성을 갖고 있다. 우린 절대 분노하지 않는다.

나는 필리핀에서 서구 문학을 읽으며 자랐다. 몇몇만 열거하자면, 호손, 포, 세르반테스 등. 당연히 구약 신약 성경도 읽었고, 이를 열심히 공부하며 가장 세세한 디테일까지 해부할 수 있도록 해야 했다. 우리 나라는 카톨릭이 주류인 나라였고, 우리의 열성과 신앙은 전설처럼 알려져있다. 내가 영어로 읽었던 책들은 전부 미국에서 온 것이다. <뻔뻔한 딕&제인Fun with Dick and Jane>같은 책을 통해, 나는 미국인들이 모두 금발에 주근깨를 하고 사과를 먹으며 부드러운 머릿결의 아이들은 다 스팟과 같은 개들을 데리고 사는 줄 알았다. 영화에서 모두들 모던한 집에서 마당 잔디를 깎고 울타리를 세우며 살았다. 마치 도착적인 저의가 없는 데이빗 린치의 영화의 클리셰 같았다. 필리핀에서 우리는 우리의 워너주민 언어인 따갈로그 (지금은 삘리삐노라고 알려진) 또한 배웠고 원주민 문학(프란치스코 발락타스의 서정 서사시에서 호세 리잘이 특히 기억난다)도 몇몇 배웠다. 하지만 정말 분명했던 것은, 50-60년대에 자랐던 우리가 신화화했던 할리우드 세계관을 똑같이 따라하는게 진짜 중요하고 불가피하게 선호되었다는 점이다. 식민지화된 우리의 상상력은 거침이 없었고 떨쳐내기 어려웠다. 우리가 고개를 돌려 바라본 모든 곳에서, 우리와 맞지 않는 이미지들이 떠올랐다. 인정박기 위해서는, 최대한 미국적으로 보일 수 있게 노력해야 했다.

그리고 나서 난 미국으로 왔다. 우리 가족은 캘리포니아 주의 샌프란시스코에 정착했다. 이 도시는 우리에게 가장 편안한 곳이었다. 물과 가깝고 (언제든 여길 떠나 “고향”에 갈수 있도록), 커지고 있는 이미 가시화된 아시아계 공동체 (우리의 문화적인 것에 언제든 쉽게,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접근할 수 있도록)가 있었다. 이때는 참 아이러니했다. 또한 우리는 새롭고 익숙하지 않은 것들, 즉 치카노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때만해도 깜둥이negroes라고 불리었다),그리고 다양한 출신의 다양한 백인들을 맞닥뜨렸다.

나는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고된 역사와 이 국가에 그들이 기여한 것에 대해 무지했다. 나는 왓슨빌, 살리나스, 그리고 스톡튼 같은 캘리포니아 도시에서 필리핀 사람들이 싼 농장노동력으로 착취당했다는 것에 대해 전혀 알고 있지 않았다. 이들은 또, 서쪽 지역에서 자신들의 일자리를 위협받아 성난 군중들에 의해 불세례를 맞고 마을 밖으로 쫒겨나기도 했다. 그들은 백인 여성과 결혼하는 것으로부터 금지되었으며, 공개적으로 희롱당했고, 백인 여성들과 교류가 있었다는 이유로 린치당하기도 했다. 프레드 코르도바Fred Cordova의 뛰어난 저서 <필리핀계: 잊혀진 아시아계 미국인들Filipinos: Forgotten Asian Americans>에 따르면, 1920년대와 30년대에는 필리핀계 여성과 남성의 비율은 1:100 정도였다. 캘리포니아 공공기관에서 1930년대에 매우 흔하게 내걸었던 “필리핀계 출입금지” 문구에 대해 난 전혀 알지 못했다. 이러한 사실들은 마닐라에서 전혀 가르치고 있지 않은 것들이었고, 당연히 60년대의 샌프란시스코 지역 고등학교 사회시간에서도 언급되지 않았다. 미국인들은 항상 정의의 편이었고, 특히 필리핀 사람들에게 있어 미국은 구원자, 은인, 보호자로서 받아들여졌다. 카를로스 불로산이 정말 감동적이고 진실되게 썼었듯, 그리고 내가 씁쓸하게 끝까지 믿었듯, “미국은 마음속에 있다.”

미국의 고등학교 수업에서, 난 다시끔 호손, 포, 멜빌, 도스토예프스키, 딕킨스, 그리고 가끔 에밀리 디킨슨이나 브론테 자매들이 쓴 책을 읽었다. 수이 신 파Sui Sin Far, 리처드 라이트Richard Wright, 존 오카다John Okada, 로슨 이나다Lawson Inada, 그웬돌린 브룩스Gwendolyn Brooks, 제임스 볼드윈James Baldwin, 토시오 모리Toshi Mori, 그리고 카를로스 불로산 등은 우리의 커리큘럼에 존재하지 않았다. 1967년에 졸업한 난 내가 느끼는 불안감이 어디로부터 비롯됐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미국에 정확히 4년간 정착해 있었다. 시내 반 네스 거리에서 버스탑승 시위 (분리주의 정책에 대한 저항으로 흑인들이 백인 버스에 탑승해 자리를 비키지 않는 것)가 벌어지고 있었다. 내 학교에서 얼마 안가면 있는 샌프란시스코 주립대 (테레사 학경 차가 버클리 진학 전 잠시 다녔던 학교이기도 하다)에서는 파업이 벌어졌다. 존 케네디와 말콤 X가 암살되고, 블랙 팬서 단체가 탄생했다. 내가 여기서 어떻게 참여할 것인가? 치카노, 아프리카계 미국인들, 그리고 심지어 몇몇 전투적인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동맹을 형성하고 있었다.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실제로 “전투적”일 수 있었던가? 우리는 진정으로 제3세계의 시민들이었나? 제3세계라니. 내 가족이 자랑스러워할 만한 수식은 아니야. 내가 자란 필리핀에서는, 제3세계라는 말은 듣기 좋은 말이 아니었다. 고장난 전화기, 수리해야할 도로, 부패한 정치인들, 그리고 얇은 뼈와 굶주림으로 불쑥 튀어나온 배를 가진 알몸의 아이들로 상징되는 것이었다. 난 누구지? 

 

문법을 흔들고, 고정관념을 깨부숴라. 그리고 만약 패배한다면, 그대로 미끄러져 나와 새로운 언어의 길을 찾아내라. 놀라운가?

충격적인가? 선택할 수 있는가?

 

—트린 T. 민하

<여성, 원주민, 타자>에서

 

 

 

 

…(중략)…나는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고, 정말 우연히 반항적인 새로운 물결의 미국 작가들의 작업을 마주하게 되었다. 이들은 내가 숭배하도록 배웠던 탈색whitewashing된 미국에 대해 쓰던 이들이 전혀 아니었다. 이 시들과 시인들은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들의 말은 미국인들을 열받게 하는 것이었다. 리로이 존스(LeRoi Jones: 아미리 바라카)의 분노의 주문. 빅토르 헤르난데즈 크루즈Victor Hernandez Cruz의 조숙하며 교활하고 리듬적인 단가短歌. 알렌 긴스버그Allen Ginsberg의 “울부짖음Howl”에서 펼쳐지는 스릴 넘치는 삶. 존 레키John Rechy의 어두운 “밤의 도시City of Night”에서 등장하는 강렬한 드랙 퀸과 10대 성노동자들. 니키 지오바니의 “자아도취EgoTripping”에서 느낄수 있는 활력과 힘. 나야, 나. 나.

…(중략)…언어는 내가 가장 선호하는 환상과 소통의 도구였다. 70년대 초의 다른 아시아계 미국인 그리고 아시아인 작가들의 저서를 더디게 발굴해 가면서 나는 나의 급작스런 깨우침에 너무 행복했다. 나는 호세 가르시야 비야의 유려한 시와 이야기, 이슈마엘 리드Ishmael Reed의 기념비적인 다문화 선집 <현재에서 온 19명의 네크로맨서들19 Necromancers from Now> 에 수록된 프랭크 친의 강렬한 “궁 하이 팟 초이Goong Hai Fot Choy”, 비엔베니도 산토스가 자신의 단편집 <사과의 향기Scent of Apples>에서 그리는 달콤쌉싸름한 필리핀계 “마농”들의 초상, NVM 곤잘레스의 동경 가득한 소설 <대나무 무용수The Bamboo Dancers>, 존 오카다의…<노노 보이No-No Boy> 토시오 모리의…<히로시마의 여성Woman from Hiroshima>등을 읽었다. 슬프게도 그때 이러한 책들을 찾는 건 정말 힘들었고, 지금도 절판이 된 이 책들은 찾기가 참 힘들다.

그리고 당시의 다른 아시아계 미국인 작가들은 나의 공모자이자 거리의 선생님들, 그리고 당시 문화를 꽃피우던 1970년대 베이 지역의 예술가들이 되어 주었다. 고 세라핀 시퀴아, 고 바야니 마리아노, 알 로블스, 재니스 미리키타니, 키티 츠이, 제럴딘 쿠다카, 오스카 페냐란다, 루 시퀴아, 넬리 웡, 러셀 렁, 제니 림, 프레스코 타비오스, 노르만 자요, 조지 렁…이 모든 이들이 나와 함께 전설적인 I-호텔에서I-Hotel ‘마농’(필리핀어로 어르신이라는 뜻)들과 다른 노인분들과 작업하기로 자원했으며 키어니 가 작가 워크샵Kearny Street Writers Workshop을 오가며, 음식과 술, 가십거리, 시, 이야기, 그리고 책 초고를 나눴다. 우리는 이슈마엘 리드, 로베르토 바르가스Roberto Vargas , 툴라니 데이비스Thulani Davis, 아보차 질토네로Avotcja Jiltonero, 고 뷰리엘 클레이Buriel Clay, 알레한드로 무르기아Alejandro Murguia, 짐 동Jim Dong, 재넷 캠벌 헤이트Janet Campbell Hate, 토자케 샹게Ntozake Shange, 그리고 루퍼트 가르시아Rupert Garcia 등의 베이 지역의 다른 유색인종 작가들과 예술인들과 다양한 문학 프로젝트를 벌이며 협업했다. 우리들 중 일부는 예술인/미디어 콜렉티브 제3세계 커뮤니케이션즈Third World Communications를 결성했다. 우리는 출판계가 우릴 알아봐 줄때까지 앉아서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 우리는 자금을 조달하고, 우리들의 책을 직접 편집하고, 디자인하고, 출판했다. 우리들의 책을 읽어줄 독자층은 항상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말이다.

1974년 양장본으로, 1975년 페이퍼백으로 출판된 선집 <Aiiieeeee!>는 아시아계 미국인들에게 있어 절대적인 분기점이었다. 이 기념비적인 선집에서 자신만만하고 신선하게 대담한 목소리를 낸 편집인들이 바로 프랭크 친, 제프리 폴 챈, 로슨 후사오 이나다, 그리고 션 웡이다. 자신의 선집에 자신의 작업을 수록하기를 거부했던 프랭크 친은 내게 이 선집을 선물로 한 권 보내주었고, 이는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그 간단하고 결정적인 사실을 즐거운 방식으로 깨우치게 해 주었다. 나와 같은 다른 작가들, 시인들, 에세이스트들, 소설가들, 극작가들은 다른 의미에서 나와 매우 달랐다. 아도보와 삐낙벳같은 음식을 먹고 싶어하는 욕구를 갖는다는 점에서 비슷했을 지라도, 이들 중 몇몇은 알라스카에서 일하거나 캘리포니아에서 이주민 노동자로 일하면서 그 끔찍했던 경험에 대해 서술한다. 다른 이들은 좀 더 유려한 문체로 블랙 유머 가득한 실존주의적 소설을 쓴다. 다른 이들은 아시아계 미국 인 가정 내의 불화와 긴장에 대해서 서술하고, 다른 많은 이주민들이 느끼는 초현실적인 이산 경함에 대해 쓴다. …(중략)…이들 중 미국에 2-3세대동안 머무른 이들도 있다. 만자나Manzanar, 툴 호수Tule Lake, 애리조나의 포스톤Poston과 같은 “강제수용소”에서의 모욕적이고 거친 수용 경험을 직접 겪은 이들도 있다. 우리의 역사는 고통스럽게 엮여 있을 때가 많고, 그리고 우리는 서로 싸우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 우리는 “여기 처음 온 게 아니다.”

 

 

…(중략)…70년대 <Aiiieeeee!>로 인해 점화된 관심과 에너지는 아시아계 미국인 작가들에게 매우 필수적이었는데, 이는 이 선집이 우리에게 자신의 구체적인 문학의 창작자로서의 가시성과 신뢰성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우린 더이상 무시될 수 없었고, 갑자스레 우리는 더이상 침묵하지 않았다. 우리는 백인 이성애자 남성들이 지배하던 제노포비아적인 문학 정전에 문제 제기를 지속하던 다른 유색인종 작가들과 함께 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계속 확장되던 이 검투장에서는 한가지 목소리나 한가지 비전이 아닌 다른 더 많은 것들 또한 수용할 여유가 있었다. 

첫 <Aiiieeeee!> 선집에는 14명의 작가들이 포함되어 있었고, 이 이후로 크고 작은 출판사들에 의해 출판된 소설, 자서전, 에세이, 시집, 극본, 비평이론, 사회역사, 그리고 픽션 등이 비교적 짧은 17년이라는 기간동안 (1976-1993)비평적 그리고 대중적 성공을 거두기 시작했다.

그리고 물론, 이번에 똑같은 편집인들—친, 챈, 이나다, 웡—에 의해  “중국계 미국인과 일본계 미국인 문학 선집”이라는 부제를 단 <The Big Aiiieeeee!>가 1991년에 출판되었다. 이 버전은 619쪽에 걸쳐 28명의 픽션, 시, 그리고 에세이 작가들을 포함한다. 필리핀의 가장 저명한 작가 중 한명인 F. 시오닐 호세F. Sionil Jose의 세 편의 중편소설을 엮은 <세명의 필리핀 여성들Three Filipino Women>이 미국에서 1992년에 출판되었고, 같은 해, 트레버 카롤란Trevor Carolan의 환태평양 지역 작가들—중국, 일본, 대만, 필리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한국, 오스트레일리아, 인도네시아, 그리고 뉴질랜드—의 선집 <천국의 빛깔The Colors of Heaven>가 출판되었다. 1993년은 게럿 홍고Garrett Hongo의 아시아계 미국인 시선집 <The Open Boat>, 로슨 후사오 이나다의 <Legends from Camp>, 루이스 프란치아의 필리핀계 영문학 선집 <Brown River, White Ocean>, 그리고 오랜시간 사람들이 기다렸던 페이 마옌 응의 소설 <Bone>이 우리에게 선사된 한 해였다. 

흠… 정말 먼 길을 왔구나, 찰리 베이비.

30년을 미국에서 보내면서, 이 문학 지형이 너무나도 많은 해방적이고 도전적인 방향들로 쪼개지며 바뀌는 걸 내 눈으로 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어다. 미국 최초로 상업 출판사를 통해 나오는 아시아계 미국 픽션 선집인 <찰리 챈은 죽었다Charlie Chan is Dead>는  자랑스러운 48명의 작가들을 선보인다. 여기서 절반 가량의 작가들은 주요 선집으로서는 처음으로 출판되어 선보여지는 이들이다.

이 선집에 포함된 작가들은 서로로부터 매우 짜릿한 차이점들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의 문화적 배경, 연령, 그리고 문학적 스타일의 범위는 매우 넓다. 이들로부터 작업을 받을 때, 이들이 선택해야 할 “주제” 같은 건 주어지지 않았다. 나는 좀 더 리스크 있는 작업에 더 관심이 있다는 걸 이들에게 알렸고, “픽션”이라고 생각되는 것의 의미를 정말 전복시켜 보고 싶었다. 내가 특별히 염두에 두었던 몇몇 작업들을 제외하면, 그들이 내게 뭘 보내든 그건 전적으로 작가들 자신에게 달려 있었다. 심지어 “아시아계 미국인”이라는 개념이 무엇인가 하는 것조차 확장하여, 조이 코가와(캐나다 거주자) 같은 이들도 포함시키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이 선집이 다루는 범위는 어마어마하며, 독자는 여기 실린 글들을 읽으며 마치 영화를 보듯 시간을 남나들게 될 것이다. 호세 가르시야의 미니멀리즘적인 <제목없는 이야기Untitled Story> (첫 출판 1933년)는 카클로스 불로산의 참혹한 <난 기억할 것이다I Would Remember>와 머리를 부딪히며, 미나 알렉산더Meena Alexander의 <맨하탄 뮤직Manhattan Music>은 다문화적인 트렌드가 왕성한 문제 많은 90년대 뉴욕 다운타운 예술씬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보인다. 와카코 야마구치는 황량한 사막 지역을 배경으로 한 <그게 다였어That Was All>에서 여자아이의 성적 자각을 다룬다. 한 옹Han Ong은 <세계에 표류한 자The Stranded in the World>에서 현대 LA의 지저분한 환경에서 서성이는 터프한 남성 성노동자를 다룬다. R 자모라 린마크R. Zamora Linmark는 <They Like You Because You Eat Dog, So What Are You Gonna Do About It?>에서 하와이의 게이 필리핀계로 성장하는 내용의 유희적인 희/비극을 만들어낸다.

…(중략)… 여기 작가들 중 몇몇은 원래 시인이었고, 그들 중 몇몇은 아직도 시인이다. 다른 이들은 오로지 픽션만을 쓴다. 몇몇은 필리핀에서 태어나고, 몇몇은 시애틀에서, 소수의 몇몇은 하와이에서 태어났다. 토론토나 런던에서 태어난 이들도 있다. 샌프란시스코, 오클랜드, 스톡튼, LA, 뉴욕, 산타페에서 사는 이들도 있다. 파나마, 싱가포르, 도쿄, 마닐라, 부산, 시카고, 헤이워드, 보스턴, 브루클린, 베이징, 민도로, 워싱턴DC, 서울, 그릴리, 콜로라도, 인디아, 피낭, 모스크바, 아이다호. 

아시아계 미국문학이라니. 너무 제한적인 수식이다. 세계문학은? 물론이다.

이 선집은 굉장히 이기적인 이유에서 만들어졌다. 이 책은 내가 읽고 싶었었지만 접근할 수 없었던 책 같은 것이다. 여기 선별된 많은 이야기들은 문화 충돌을 다룬다. 우리는 서로 대립되고 복잡한 등장인물과 대면하게 된다. 그들은 서로 섹스하고, 미래를 걱정하고, 서로를 상처주고, 고통을 이겨낸다. 머리를 스프레이하고, 오일 칠하고, 쥐어박는다. 제임스 브라운마냥 멋드러지게 춤추고, 플로어 위에서 고관절을 흔들며, 시끄럽게 굴고 좋은 시간을 보낸다. 마약도 하고, 몸도 팔고, 뉴스 캐스터 오디션에도 참가한다. 향수에 젖기도 하고, 향수병을 앓기도 하며, 망명하고, 이산되고, 동화되고, 반항한다. 거짓말도 하고 바람도 피운다. 자신들과 남을 배반한다. 터프하면서도 고귀하다. 그들은 생존한다. 문명화된 우리의 고뇌 속에서도 우리는 아름답고 경이롭다는 사실을 그들은 상기시켜준다. 

이 선집에서, 몇몇은 가족적인 혹은 문화적인 신화를 구술하기도 하지만, 좀 더 사적이고 좀 더 끔찍한 진실에 대해 쓰기도 한다. 많은 이들에게 사적인 것은 정치적이기도 하며,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아시아인으로서, 아시아계 미국인으로서, 그리고 살만 루슈디가 말했던 “작아지는 세계”의 예술인과 시민으로서 우리가 누구인지, 끊임없이 탐구하고 주장한다. 선택이란 것은 하이픈(-)을 붙일 것인지 말 것인지를 고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내포한다. 선택이란 것은 젠더, 인종, 계급보다 더 많은 어던 것이다. 1세, 2세, 3세, 4세… 누가 진짜이고 누가 가짜인가. 죽었나 죽지 못했나. 주류인가 비주류인가. 톰아저씨인가 찰리 챈인가. 우리는 굳이 우리가 현실에서 사용하는 언어로만 꿈꾸지는 않는다.

 

제시카 하헤도른

1993년

 

뉴욕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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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lie_Chan_is_Dead_preface_intro.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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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미국 대중문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무자비하고 사악하지만 글래머러스한 외모의 아시아계 여성 스테레오타입 중 하나. [본문으로]
  2. 역주: 평소에 부잣집 자제 행세를 하지만 실제로 홍콩의 사창가에서 일하는 아름다운 중국인 여성 영화캐릭터로, 극중에서 신사 백인 남자와 사랑에 빠짐. 물론 이 백인 남자 주변의 다른 백인들은 이 관계를 매우 거부. 1960년 개봉한 리처드 콰인의 영화 수지 웡의 세계The World of Suzy Wong의 주인공 [본문으로]
  3. 동양인, 특히 동북아계 사람을 비하적으로 부르는 욕설. [본문으로]
  4. 1번 각주 참조 [본문으로]
  5. 2번 각주 참조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