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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모시 유Timothy Yu, 인종과 아방가르드Race and Avant Garde (2009) 4장 Audience Distant Relative 일부번역

1970년대 말에 이르러, 언어시와 아시아계 미국인 시는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뒀다. 각각의 시파는 공통의 정치적 그리고 미학적 프로젝트에 참여적인 감각을 가진 작가들로 번창하는 공동체를 갖게 되었다. 각각의 시파는 자신들만의 생산, 그리고 수용 기관들을 갖추게 되었고, 이는 문학지에서 독서교실, 선집 등을 포함했는데, 이를 통해 작가들의 글들이 유통되었고 논의들이 시작될 수 있었다. 또한, 각 시파는 뛰어나고 혁신적인 작업들을 생산하여, 이를 통해 도래할 시대의 새로운 사회적 정체성에 적절한 시적 형식을 모색하려 노력함으로써, 과거 미국 시학에서 할 수 있었던 것, 허용 되었던 것들을 넘어설 수 있었다. 간단하게 말해, 아시아계 미국 시와 언어시는 이제 제도권의 아방가르드가 된 것이다. 사회적 집단으로서의 그들의 존재는 미적 지향성과 엮이게 되었다.

허나 이것은, 아시아계 미국 작가나 언어시 작가들이 더 많은 독자층을 거느리게 되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1970년대 이 두 집단군에 속한 각 작가들의 성공은 그 시대의 아방가르드적인 정신과 맞닿아 있었다. 대중적인 기준에서 찬양받을 저서를 낸 위대한 개인 작가를 배출하기보단, 이들은 자신들만의 유통망을 만들어 이런 기존의 문학적 기준이 통용되지 못하게 하고, 이러한 기준들을 깨부수는 작업들이 적극 유통되도록 했다. 이러한 대안 유통망들은 유통되던 개개별의 시 작품만큼이나 지배적인 제도권 예술에 비판적으로 형성되었으며, 이러한 점에 있어서 피터 뷔르거Peter Bürger의 아방가르드 개념에 매우 부합한다. 이러한 유통망들의 특성은 자신들의 자원이나 독자층에 있어 매우 제한적이었어서, 자신들 공동체 밖으로 유통되어 더 넓은 독자층에게 다가가게 되는 일은 매우 드물게 일어났다. 

하지만 뷔르거가 지적하듯, 아방가르드는 자신의 성공의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 수많은 1970년대의 문학지들은 단명했지만, <Bridge>같은 출판물은 1980년대에 이르러서도 계속 정기적으로 출간하는 데 성공하여, 공동체의 내부인들은 물론 외부인들도 아시아계 미국 시를 읽을 수 있는 안정된 장을 마련한다. 그러므로, Yale Younger Poets 시리즈에 1982년작 <사진 부인Picture Bride>이 선정되어, 아시아계 미국 시인으로서는 최초로 주류의 인정을 받았던 캐시 송Cathy Song이 자신의 첫 주요 작품을 <Bridge>를 통해 발표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중략)…주류 문학으로부터 대안 유통망을 생성하여 거둔 이 두 집단의 성공은 결국 주류로부터 관심을 이끌게 되었다는 역설적인 효과를 일으키기도 했다. 뷔르거의 말대로, 아방가르드가 “예술로서” 수용되면, 주류문화에 주류문화 기준으로 흡수되어, 비판적 잠재력을 잃게 될 수도 있다. 



과거의 아방가르드 작업들의 주류화는 문학창작 패러다임에서 독서 패러다임으로 변환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아방가르드”라는 꼬리표는 처음엔 예술 생산의 독특한 맥락을 가리키는 말로서 쓰였다. 즉, 비슷한 생각을 가진 예술가들이 작은 집단을 형성하여, 자신들만의 기준으로 독특한 작업의 생산과 유통을 가능하게 할 유통망을 창설한 것이다. 여기서 독자층은 이들을 좋아하는 다른 이들, 그리고 비슷한 기타 몇몇 집단, 그리고 작업을 보고 충격을 받을 몇몇 특정 주류문화에 젖은 독자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러한 공동체의 기준과 미학의 정의는 유연했으며, 똑같은 사회적 환경에 놓여있었던 작가들과 독자들에게는 이러한 정의가 딱히 필요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방가르드 작업이 이러한 생산 맥락에서 동떨어진 더 많은 독자층에게도 이르게 되면서, 이러한 “아방가르드” 처럼 집단을 규정하는 꼬리표는 이러한 독자층에게 새로운 독서 양상을 나타내는 기능을 하게 되었고, 그리하여 이는 아방가르드 생산방식으로 인해 시작되었지만, 결국 원래의 집단과는 많이 동떨어진 다른 작가들 또한 포함하는 넓은 범위를 포함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아시아계 미국문학의 탄생 뒤 약 20년이 지난 후 출판된 서-링 C. 웡Sau-ling C. Wong의 <Reading Asian American Literature>는 아시악 미국인 문학을 특정 집단이나 작가군에 의해 생산된 문학군이라기 보단, 비슷한 주제와 문체를 공유하는 “텍스트적인 연합체” (9쪽)로서 설명된다. …(중략)…

아시아계 미국문학과 언어시 문학이 주류문화로부터 관심을 맏기 시작하면서, 이 두 집단은 원래의 사회적 맥락에서 탈착된 채, 좀 더 기존적인 분류법에 의해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캐시 송의 절제된 1인칭 서정시는 후에 미국 시학계를 지배하게 될 “워크샵” 스타일[각주:1]과 비슷한 것으로 받아들여 지면서, 아시아계 미국시는 고유의 정치성과 스타일로서가 아닌,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주제로서만 주류문학과 구분되는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일조하였다. 이러한 배경에는 물론 새롭게 형성되고 있었던 아시아계 미국문학의 새로운 패러다임, (1982년의 일레인 킴의 기념비적인 연구서 <Asian American Literature: An Introduction to the Writings and Their Social Context>을 따라) 어떻게 문학이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사회 역사를 반영하는가에 대한 강조로 인한 방조 역시 꼽을 수 있다. 이에 반해, 언어시 문학은 <L=A=N=G=U=A=G=E>와 학계의 비평가들의 관심을 통해 더 넓은 독자층을 형성하였고, 이로 인해 자신들의 시학이 좀더 이론적이고 형식적인 측면으로 인한 것임을 공고히 할 수 있었다. 이러한 문학 지형의 결과로, 내용과 형식Content and form이 각 비평가들이 속한 학파의 분열에 맞춰 날카롭게 구분되기 시작했으며, 이는 곧 실험문학과 민족문학이 서로 날카롭게 구분되게 만들어, 형성 초기에 서로 비슷했던 아방가르드적 공통점을 통해서가 아니라, 서로 다른 목적과 의미를 지닌 프로젝트로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나는 이러한 아시아계 미국문학과 언어시 문학의 수용 양상 변화를 테레사 학경 차의 <딕테>를 통해 탐구해 보려고 한다. <딕테>는 1980년대에 그의 아방가르드 동료들에 의해서만 읽혔던 책에서 오늘날 아시아계 미국인 정전의 반열에 들게 되었다. 아시아계 미국인 비평가들이 출판 후 10년간 <딕테>에 주목하지 않았던 것은 이 텍스트가 너무나도 많은 “실험적” 요소들을 갖추고 있어, 아시아계 미국적인 주제의식이 잘 나타나지 않았다고 보여졌기 때문이다. 테레사 차의 인종이야말로 처음 몇몇의 백인 독자들에게 어필한 요소였음에도 말이다.[각주:2]  1990년대 초 아시아계 미국인 독자들이 <딕테>를 포용하기 시작한 것은  그런 의미에서 분기점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고, 아시아계 미국문학을 형식적 혁신과 트랜스내셔널한 관점을 향해 열어제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아시아계 미국이라는 패러다임과 실험성이라는 패러다임의 구분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아시아계 미국인 비평가들이 <딕테>의 좀 더 추상적인 부분들을 희생시켜서 서사적 요소들만 부각시켰기 때문이다. 

<딕테> 정전화의 역설적인 효과, 그리고 실험적 형식과 아시아계 미국인적 소재(content)를 통일한 작업이으로서 소개되는 것은 <딕테>가 등장한 아방가르드의 매우 복잡한 역사를 흐리게 하는 것이었다. <딕테>는 이러한 아방가르드의 역사의 설득력 강한 증인과도 같다. …(중략)…(실험시학으로 시작해 아시아계 미국문학으로 넘어가고, 다시 반대로 넘어가고도 있는 듯한) <딕테> 수용의 특이한 역사는 지배적인 독해 패러다임의 한계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아시아계 미국문학과 실험문학이 같이 등장했던 좀 더 넓은 아방가르드적 맥락을 다시 돌아보게끔 만든다.

언어시와 아시아계 미국시가 서로 얽혀있었던 1980년대의 시학 주류계는 잘 완성되고 절제된 1인칭 서정시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다. 이러한 미학은 찰스 알티에리Charles Altieri에 의해 “장면적 양상scenic mode”이라고 불리어진다.

기교craft란, 작품이 마치 자연스러운 목소리로 말해질 수 있도록 티가 나지 않아야 한다. 마치 독자로 하여금 원래의 사건을 재경험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도록, 이러한 “만들어진 자연적임”에 대한 응급함과 즉각성의 감각이 꼭 있어야 한다, 즉흥적인 사적 진실함의 감각을 조성하는 “연구된 무기교성”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감응적 매듭지음 을 향한 강한 움직임이 있어야 하고, 이런 움직임은 주로 시인이 서사적 구조를 다룸으로서 만들어진다. (10)


버논 쉐틀리는 이러한 미학의 발흥을 동시대 시학계의 지배적인 요소인 문예창작 워크숍의 등장과 연결시키며, 이러한 지배적 스타일을 “MFA(문예창작과 석사) 주류”라고 이름짓는다. (20) 언어시인 찰스 번스타인은 더 강한 어조로 이러한 주류 스타일의 제도적 권력을 “공식적 운문 문화”(247)의 산물이라고 자신의 선집 <소재의 꿈Content’s Dream>에서 주장한다. 이러한 문화는 <뉴요커>지 부터 <Poetry>지에 이르기까지의 출판물들과 상업지 그리고 대학가 출판물들로 이루어진 성좌를 가리킨다. 미학과 제도권의 결합은 주류 독자층을 끌어당길 새로운 접근이 힘들도록 만들었고, 신진작가들이 지배적인 서정시 패러다임에 부합하지 않으면 내쳐질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언어시와 아시아계 미국문학같은 아방가르드 담론이 주류문화와 맞닥뜨리면 생기는 일은 1980년에 두 집단에서 인종과 미학과 관련된 논의가 거쳐간 변화를 짚어보면 명확해진다. 아시아계 미국시학계의 경우, 캐시 송의 성공이 아시아계 미국인 문학이라고는 읽어본 일이 없었을 주류 독자층에게 본보기를 보여줬을 뿐만 아니라,  아시아계 미국문학 그 자체의 중심을 뒤흔들어 놓기도 했다. 1970년대에 유명했던 작가들인 로슨 후사오 이나다Lawson Fusao Inada, 재니스 미리키타니Janice Mirikitani 등은 캐시 송, 데이빗 무라, 리영 리 등과 같이 주류 서정시에 부합했던 좀 더 젊은 작가층에 의해 밀려나게 되었다. 앞선 장의 끝부분에 설명했듯, 개렛 홍고Garret Hongo의 1993년판 선집 <The Open Boat: Poems from Asian America>는 이러한 지형 변화를 선언하는 가장 단적인 작업이며, 이는 전위적이고 1970년대의 굉장히 정치적인 패러다임을 보다 개인적이고 서정적인 주체성으로 대체하는 것이었다.[각주:3] 

<The Open Boat>는 아시아계 미국인이 엮은 첫 아시아계 미국 시선집이다.[각주:4] 이 선집의 서문에서, 홍고는 아방가르드주의자로서 정치화된 아시아계 미국인 시인의 이미지를 노골적으로 거부하며, 이를 “보다 오래된, 문화적으로 편향된 아시아계 미국인 작가의 전형”이라고 묘사하며, 이러한 전형은 “60년대 후반 고취된 정치적이고 민족적인 의식”의 잔여물이라고 받아들인다. 그는 아시아계 미국 문학이 “공동체에 대한 충직함을 나타내는” 기준을 대표하기를 요구하는 “저속한 몇몇”을 비판한다 (xxxi-xxxii). 이에 반해, 홍고는 개인의 서정적 목소리를 나타내는 시학을 지지한다. “아마도 목구멍에 걸린 감정을 통해 시를 쓰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감정은 우리로 하여금 말하게 한다. 엄청난 격정이 부풀어 올라, 긍지로 인해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말하는 행위라는 것이 될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우리들의 시인은 그것을 말해버린다.” (xl) 아시아계 미국인의 표현 형식에 관한 70년대의 논의들은 순수한 소재content의 강조로 대체되었다. “우리는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에 대해 쓴다. 우리는 우타마로와 빌렘 데쿠닝의 회화에 대해, 그리고 대농장 노동자들과 중매 결혼 여성,[각주:5] 공장 노동과 섹스의 쾌락/위험성에 대해 쓴다. 우리는 도한 유라시안 아이들에 대해 쓴다.” (xix) 홍고에게 있어 아시아계 미국인 정체성은 제도적 그리고 학술적 개념으로 재구성된다. 홍고의 서문은 1990년 미국 현대언어협회MLA 주관 학회에서의 아시아계 미국인 문학연구 그룹Asian American Literature Study Group 미팅 이야기로 시작하는데, 이 미팅은 “과정중에 있는 새로운 공동체”로서 설명된다. (xvii)


홍고는 정치화된 아방가르드적 수사를 거부하고 자연화된 시예 개념을 선호한다. “우리는 우리의 신체를, 목소리를 모래에서부터 끌어올려 부른다.” (xlii) 이는 1990년에 이르러서 얼마나 아시아계 미국 시가 효과적으로 주류 미학에 부합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반증이며, 그가 선별한 아시아계 미국인 작가들이 엘리트 학술계에서, 출판계에서, 그리고 정부기관에서 거둔 성공의 반증이기도 하다.[각주:6] < The Open Boat>에서 홍고가 선별한 작업들은 이러한 새로운 성향을 반영하고, 1970년대의 주요 시인이었던 로슨 후사오 이나다나 쟤니스 미리키타니 등의 작업은 비교적 적게 포함되어 있으며 1970년대를 통틀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다른 아시아계 미국인 시인들의 작업은 아예 무시된다. <The Open Boat>를 읽고 있노라면, 굉장히 실험적인 성향을 보였던 시인들은 존 야오나 메이메이 베르센브루게로 단 두명만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러한 저작을 통해 어째서 독자들이 민족문학을 평범한 형식미를 가지며 순수하게 개인의 이야기만 강조하며 언어 중심의 백인 시인들의 작업과 급진적으로 분리되어 있다고 특정짓는지에 대해 알 수 있다.

최근의 <딕테> 정전화는 1980년대 아시아계 미국인 비평가들이 <딕테>에 대해 보인 강한 거부감을 생각해 보면 더더욱 충격적이다. 아시아계 미국 문학비평으로서는 첫 주요 저서인 1982년 연구서 <Asian American Literature>의 저자 일레인 킴은 <Writing Self, Writing Nation>에서 처음 테레사 차의 작업에 의해 완전한 소외감을 느꼈다는 고백으로 시작한다. “처음 <<딕테>>를 훝어보고 난 순간, 흥미를 잃어버렸다. 테레사 차는 내가 아니라, 오히려 내가 인식하기에 나와는 거리가 먼 “그”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것 같았다.” (3) 로라 현이 캉 또한, “난 이 책에 문자 그대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이 텍스트를 전부 곧바로 읽어낼 수 없다는 것에 대해, 그리고 내가 아닌 어떤 다른 굉장히 학식있고, 이론적으로 수준 높은 독자층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 같다는 것에 대해 너무나도 화가 났다. 무엇보다도, 테레사 차 자체를 이해하기 너무 힘들었다.” (75-6) 이렇게 어렵고, 이해하기 힘들고, 화나게 하는 텍스트가 어쩌다가 아시아계 미국문학의 대들보가 되었단 말인가? 무엇이 <딕테>를 1982년에는 불가해하게 만들었고, 1994년에는 독해가능하게 만들었던 것일까? 특히, 무엇이 <딕테>를 1994년에 아시아계 미국문학 텍스트로서 받아들여지도록 했을까?



테레사 차의 1970년대의 예술작업은 언어 그 자체에 대한 탐구를 잘 나타내준다. 개인적이고 역사적인 관계성들은 그의 작업에서 언어적인 것이 된다. 사람들은 언어 안에서의 위치로서 이해된다. 베켓에 대한 테레사 차의 관심과 다시쓰기는 서사와 정체화로부터 거리를 두어, <딕테>를 이루는 언어학적 구조에 대한 탐구와 추상화를 향한 움직임을 잘 나타낸다. 이러한 요소들과 페미니스트적 그리고 정신분석학적 측면을 통해 테레사 차의 작업이 받아들여진 것이 1980년대이다. 차의 동려들, 그리고 독자들은 그의 작업의 정치적 힘을 지배적인 역사서사에 대한 비판에 있다고 이해했으며, 이는 그의 사진과 역사적 문서들의 배치, 그리고 개인적 성찰들에서 자명하게 드러났다.

…(중략)…<딕테>의 실험적 스타일이야말로 1970년대 후반부터의 아시아계 미국문학 비평계가 이를 독해하지 못하게 한 요인이었으며, 이는 더 나아가 당시 비평계가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자전적 서사를 더 선호하느라 실험적인 아시아계 미국 시인들을 간과했던 점도 크다. 이러한 서사들의 형식은 주류문화에서 큰 성공을 거둔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작업과 일맥 상통하며 (이는 우연이 아니다), 이러한 서사들을 통해 전해지는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이야기는 1970년과 1980년대 “문화민족주의”의 핵심이었다. 1990년대 초에 이러한 문화민족주의 패러다임을 문제화하면서 생긴 기회가 바로 아시아계 미국적인 <딕테>의 독해였다. 하지만 <딕테>는 이러한 패러다임 변화의 원인이자 결과로서, 역설적인 역할을 맡는다. 이는 리사 로우의 작업에서 매우 두드러지는데, 로우는 <딕테>를 새로운, 이질적이고 혼종적인 아시아계 미국 문화의 표본으로 삼았다.

백인 아방가르드 비평가들에 맞서 <딕테>를 아시아계 미국인 문학작업으로 새로이 주장하는 행위는 테레사 차의 “실험적” 기술들이 어떻게 아시아계 미국적인지를 설명하는 일을 동반하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시아계 미국인 비평가들의 <딕테> 수용양상은 테레사 차의 책과 아시아계 미국문학 비평의 정치적 근간을 병치시키는 것이 매우 어려운 작업임을 증명한다. 차의 텍스트를 아시아계 미국인의 것임을 주장하기 위해, 이 독자들은 지속적으로 자전적 그리고 서사적 표식들에 천착할 수 밖에 없었고, <딕테>에서 바로 이러한 천착을 비판하는 부분들을 간과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사실상 <딕테>를 아시아계 미국문학 텍스트로서 주장하는 것은 서사로 이해되는 “아시아계 미국인”이라는 개념이 앞으로 어떻게 일관성을 가질 수 있는지 질문하는 것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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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역주: 북미의 문예창작 석사과정이 유행하면서 생긴 문학적 스타일로, 흔히 “아이오와Iowa” 모델을 프로토타입으로 꼽는다. 이러한 문창과에서는 “워크숍”이라는 세션을 핵심적으로 실천하는데, 이러한 워크샵에서 발제자가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고, 워크샵 참가자들이 돌아가면서 피드백을 남긴다. 교수가 참여하기도 하고, 일단 모든 참가자로부터 피드백이 끝나면 발제자가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작품은 해체되고 다시 재조합되며, 새로운 관계성들이 형성된다. 작가 자신의 “목소리”의 중시, 그리고 문체적 간결함으로 대표될 수 있다. [본문으로]
  2. 역주: 1강 “포스트모던 아메리칸 오리엔탈리즘” 참조 [본문으로]
  3. 홍고의 선집은 그리하여 많은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줄리아나 챙Juliana Chang은 이 선집은 “아시아계 미국시를 이민과 동화라는 헤게모니적 서사로 인용하는” 위험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한다. (87) 카탈리나 캐리아가Catalina Cariaga는 “선집 The Open Boat의 독자는 책을 읽고 나면 아시아계 미국문학이 ‘이주민 이야기’의 다양한 변형으로 환원되는 하나의 균질한 미국 “아시아성이 있다고 생각하게 될 수도 있다”고 한다. 빅토르 바스카라Victor Bascara는 홍고가 시학을 사회적인 것으로부터 분리하려고 한다고 받아들인다. 마지막으로, The Open Boat가 출간된 지 2년이 지난 뒤 나온 월터 K. 류 Walter K. Lew의 선집 Premonitions은 훨씬 더 실험적인 느낌의 작업을 포함하며 1970년대 문학계에서 영향력 있었던 시인들을 좀 더 많이 포함했다. 그의 후기에서 류는 “이 선집에 수록된 저작들은 기존의 운문 형식에 국한되지 않는다…이전의 선집들은 여러 공동체와 시학계에 널리 퍼져 있던 새로운 시집들의 놀라울 정도의 다양성과 유창함을 보여주기엔 너무 좁거나 보수적이었다 (575). [본문으로]
  4. 오로지 아시아계 미국 시만을 수록한 시선집은 조셉 브루샥Joseph Bruchac의 Breaking Silence (1983)이다. [본문으로]
  5. 역주: 원문은 picture bride. 20세기 초반 동북아계 이주민들이 중매를 통해 본국의 여성들의 사진을 보고 결혼 대상을 선택하는 것을 의미. 선택되어진 여성은 “국제 결혼”을 위해 미국/캐나다 등지로 건너오게 된다. 이 장의 초기에 소개되었던, 영화화되기도 했던 캐시 송의 저작 <사진 부인> 또한 원제가 Picture Bride이다. [본문으로]
  6. “요즘에는, 우리들 중 일부는 재단과 National Endowment for the Arts(역주: NEA; 미국 정부의 예술기금 지원기관)의 패널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여럿 국가적 문학상 심사위원으로도 활약하고, 문예창작과 과정의 지도와 교수직을 맡고 있으며, 문예지의 편집을 맡기도 한다… 우리는 노튼Norton, 히스Heath, 맥그로-힐McGraw-Hill, 리틀 브라운Little Brown, 머로우Morrow, 고딘Godine, 세인트 마틴St. Martin’s, 푸쉬카트Pushcart, 그리고 스크리브너Scribner’s 등에서 출판하는 교과서와 연간 선집에도 포함되어 있다. (홍고, xxxiii)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