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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시 왕Dorothy Wang, 존재를 사유하기Thinking Its Presence - 서문 일부번역


원문: https://hangildoogil.tistory.com/attachment/cfile26.uf@9921B04D5D298D9A180AA6.pdf


Introduction


동시대 시학연구의 미학 대 “정체성” 프레임 


오늘날 시학계의 상황을 보여주는 몇 장면들


PMLA(현대언어협회Modern Language Association의 공식 출간물. 100개국에 걸쳐 가입되어 있는 3만명 이상의 회원들에게 배부됨)의 2008년 1월호는 <새로운 서정시 연구The New Lyric Studies>[각주:1]라는 제목으로, 여덟명의 저명한 문학평론가들이 기고한 에세이가 실렸다.[각주:2] 이 글들이 시작점으로 삼고 있는 것은 유명한 시 평론가 마조리 펄로프Marjorie Perloff가 2006년 12월에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연례 회의에서 발표한 MLA 협회장 연설문인 <변해야 합니다It Must Change>. 이 연설문은 나중에 PMLA 2007년 5월호에도 글로서 실렸다. 이 글에서 펄로프는 “‘그저’ 문학적인 것이 오늘날 왜 이렇게 의심을 사고 있는 것일까?”(강조 원문)라고 질문을 던진다. 이어서 “지금 소위 문학연구라는 것의 지배적인 패러다임은 인류학과 역사학에서 나오고 있습니다”라며 주장한다.[각주:3] 

오늘날의 서정시는 좀 더 일반적인, 즉 시라는 범주 자체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각주:4] PMLA 주제는 오늘날의 서정시 연구의 지형은 물론이요, 좀 더 넓은 의미에서 시학 연구의 지형까지 포함한다고 할 수 있다. 아홉명의 평론가라니, 숫적으로 좀 적어 보일수도 있지만, (미국 학계 내에 있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시 평론가들을 모두 대표한다고도 할 수 없다) 이들의 영향력 (특히 펄로프와 조나단 컬러Jonathan Culler)[각주:5]을 생각했을 때, MLA가 (가끔 조롱거리가 되기 일쑤임에도 불구하고) 문학과 교수들과 학술계 내 문학평론가들에게 있어 가장 규모가 크고 강력하며 영향력 있는 조직[각주:6]이라는 것을 생각했을때, 그리고  PMLA가 읽히는 범위가 다른 그 어떤 문학-비평 학술지보다 넓다는 것을 생각했을 때, 이들 평론가들의 관점은 매우 가시적이고 영향력있으며 쉽게 무시되거나 거부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MLA는 에드워드 사이드가 말했던, 아놀드적인 의미에서 “권위적이고 권위부여적인” 문화적 “매개자” 중 하나이다 (앞선 책 8쪽). PMLA의 개별 기고문은 도외시할 수 있을지 몰라도, 저명한 회원이 문학평론 분야의 현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꺼낼 경우 (특히 “새로운”이라는 수식을 붙일 때 더욱 더) 이는 꽤 많은 숫자의 독자들의 이목을 끈다.

…(중략)…PMLA 기고자들의 방법론적, 학제적, 그리고 미학적 성향 간의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모두 동의하는 듯한 몇몇 순간들이 있다. 어떤 이들은 예상대로고, 몇몇 이들은 예상 밖이다. 바로 문학연구에서 익숙한 “문학적인 것 대 문화적인 것”의 양분구조 말이다. “문학적인 것”에 환장하는 학자들 중 하나는 놀랍지도 않게 컬러Culler이다. 펄로프와 마찬가지로 컬러는 서정시의 역사를 그리스로부터 추적하자는 주장을 펼친다. 스타티스 구르구리스Stathis Gourgouris 역시 그리스 유산의 권위에 의존함으로써 (구르구리스는 그리스 문학 연구자니까, 그닥 예상 밖이지는 않았다) 자신의 주장을 강화하고 오히려 펄로프가 포이에티케poietike를 “시학의 학제”로서 너무 좁게 해석한다고 슬며시 비판한다. 여기에 펄로프가 ‘“시학’이 오늘날 좀 더 신선한 언어로 행해질 수 있는지에 대해 탐구하지 않았다”고 지적한 구르구리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연구가 잘못된 길로 들어섰다는 펄로프의 주장에는 동의한다. …(중략)…<포이에인Poiein—정치적 무한>에서 구르구리스는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1990년대부터 약 10년 혹은 그보다 더 오래, 이론계에서의 미시정체성주의적microidentitarian인 변화는 자신을 향한 탐구의 결핍을 초래하였으며, 이는 간학문적interdisciplinary 실천을 통해 등장한 새로운 학제 구분의 역설을 생각해 볼 때 더욱 그러하다. 이 결과로, 문학연구(와 다른 학과들)은 피해를 입게 되었고, 이 피해는 펄로프가 암시하듯 이빨이 빠진 것이라기보다는 신중하지 못한 것, 혹은 오만함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중 한 특성은 다른 특성의 증상일 뿐이다). 이로 인해 문학연구 종사자들은 자기탐구의 길을 버리고 대신 정체성 정치라는 기고만장함으로 무장하게 되었다. 다르게 말하면, 펄로프의 우려대로 문학연구가 부차적인 학과의 자리로 밀려나게 된다면, 이는 외부적 요소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부적 요소에 의한 것이라는 뜻이다. (224)


결론적으로 (“정전적 저서에 모두 통달하고 동시에 그것들에 문제제기까지 할 수 있는 이중작업을 필요로 하는”(225)) 더 “진실한” 간학문적 체계를 강하게 어필하는 구르구리스가, “시는 삶과의 관계 밖에서 이해될 수 없다”라고 열정적으로 주장한 구르구리스가, 갑자기 문학연구의 추락이 너무 확고하게 그리고 질문의 여지도 없이 “정체성 정치라는 기고만장함”(그는 정체성 정치가 삶과는 관련이 없다고 가정하는 듯하다) 탓이라며, 이는 “신중하지 못한” “자기탐구”의 길을 버린 결과라고 주장하는 순간은 뜻밖이다. 사실 구르구리스가 “이론계의 미시정체성주의적 변화”가 “자기에의 탐구의 결핍”을 불러일으켰다는 둥 어쩌구 할때 이미 “정체성”은 낙인찍힌 개념으로서 언급되긴 했었다…(중략)…


자신의 기고문인 <우리 머리에서 나온 시들> 2페이지에서, 오렌 아이젠버그Oren Izenberg는 문학연구를 “정신이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해 보여줄 수 있는” 좀더 과학적인 학제들과 연결시켜야 된다고 주장하기 전에, 다음과 같이 펄로프를 인용하며 그와 뜻을 같이 한다.


나는 펄로프와 마찬가지로 시를 “문화적 욕망, 충동, 불안감, 혹은 편견의 증상”으로서 바라보는 것에 반대한다. 이러한 관점이 추구하는 막무가내적인 간학문적 체계 또한 마찬가지로 반대한다. (217)


이러한 지점도 꽤나 뜻밖인데, 이건 학제적 이유에서가 아니라 미학적이고 방법론적인 이유에서다. 아이젠버그는 펄로프가 열렬히 지지하고 비호했던 언어시인Language poets들에 굉장히 비판적이었다. 뿐만 아니라, 시에 대한 펄로프의 보다 더 문학사적인 접근법이나 대륙철학적 취향에 반해 아이젠버그는 분석철학적 방법론을 매우 특별시했다.[각주:7] 

따라서, 이들의 미학적, 방법론적, 그리고 학제적 차이점들에도 불구하고, 구르구리스, 아이젠버그, 그리고 펄로프는 현재 문학연구의 망조가 깃든 원인 중 하나인 이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바로, 살짝 차이가 있을지라도 결국엔 서로 근본적으로 닿아있는 엉성한 (신중하지 않은, 막무가내적인) 사유의 형태들 말이다. 이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펄로프의 말에 따르면) 문학적인 것보다 사회학적인 것을 특권화하며, (구르구리스에 따르면) 철저한 자기탐구보다는 정체성정치를 특권화하고, (아이젠버그에 따르면) 문학적이나 철학적이거나 “현실”과 현실의 “인과적 구조”라고 불리우는 것보다 문화적인 것을 특권화한다. 한마디로, 문화적인 것, 그리고 (불특정한 “불안감” 혹은 “편견”으로 치부되는) 정치적인 것에 대해 지나친 학구적 관심도가 진지한 문학연구자들로 하여금 문학적인 것에 대한 연구, 특히 시에 대한 연구를 소홀히 하게 만들었다는 얘기다. 펄로프는 자신의 협회장 연설문에서 이러한 이분법을 꽤 적나라하게 펼친다.


하지만, 저희 각자의 개별 연구가 얼마나 문화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치우쳐져 있든, 저는 저희 중에 과연 누가 문학연구가 커리큘럼에서 사라지는 것에 만족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656)


펄로프가 “우리”라는 1인칭 대명사를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문화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치우친 연구들이야말로 “문학적 텍스트를” “텍스트 너머의 세상, 문화적 충동과 불안감, 혹은 편견들의 증상들을 볼 수 있는 창문”으로서 도구적으로 “사용하는” (654) 연구들이라고 암시하고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은 강한 경고와 함께 연설을 마친다.


이제는 우리를 애초에 이 분야로 뛰어들게 한 그 문학적 본능을 신뢰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가 행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그토록 이국적으로 보이는 다른 분야들에 홀려 그들을 좆기보단, 우리가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우리의 학제 내에서의 이론적, 역사적, 그리고 비판적인 훈련이라는 걸 깨달아야 할 때입니다. (662)


재밌게도 “우리”를 (도대체 누가 “우리”의 일부인지?) 애초에 이 분야로 뛰어들게 만든 “본능”에 기초한 학제인, 문화연구 학제 내에서의 더 철저한 훈련이 막심한 폐해를 야기한 (“이국적”이고 사람을 “홀려 좆게하는”)문화적 그리고 정치적 전환에 대한 해독제로 작용한다는 주장이다.


…(중략)…


여기서 나의 비판은 펄로프라는 한 개인 학자로서의 관점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그가 자신의 MLA협회장 연설문과 소식지에서 표명하고 있는 이념적 입장을 향한 것이다. 이러한 이념적 입장은 학술사회에서 꽤 널리 퍼져있는 편이지만, 이정도로 직설적으로 주장되는 일은 흔치 않다. 사실, 난 펄로프의 직설적인 점이 마음에 든다. 다른 많은 문학연구자들은 폐쇠된 공간에서 진행되는 교수 채용회의 때를 제외하면, 생각으로만 마음으로만 다음과 같이 되뇌일 뿐이다. “무서운 유령이 떠돌고 있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문화연구적인 학술사회 내의 압박 때문에 (이는 1960년대의 민권운동과 1980년의 문화투쟁에서 비롯한 해로운 유산임에 틀림없다) 가치있고 중요하고 사랑받은, 순수하게 문학적으로만 가치있는 문학 작품들이 커리큘럼에서 떨어져 나가고, 그 자리를 소수자 작가들이 쓴 저열한 저작들이 채워가고 있다. 이들 작가들이 커리큘럼에서 한자리 해먹을 수 있는건 소수집단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과 인종쿼터제racial quotas 덕분이거나, 이념적 리트머스 시험을 통과해서지, 문학적 가치가 있어서가 아니야.” 이러한 정서는 훨씬 더 완곡한 방식으로 표현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박에 이해될 수 있다. 

특히 더 실망스러운 점은, 시 혹은 문학이라고도 치부되지 못했던 새로운 양식, 그리고 형식의 시 저작들을 학술계로 도입하기 위해 오랜 시간동안 싸워왔던 사람이 (이러한 싸움으로 인해 그 어떤 제도적인 이득도 취할 수 없었을 시기에) 바로 펄로프라는 점이며, 그랬던 펄로프가 이제는 MLA협회장이라는 매우 강력한 지위를 사용하여 앞서 서술한 (문학 제도권의) 보수적인 관점으로 소수자 문학과 인종문제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펄로프는 언어시인들을 비호하고 가장 큰 목소리를 냈던 가장 처음이면서도 영향력 있는 학계 내의 문학평론가였으며, 거의 혼자의 힘만으로 언어시인들의 지위를 공식적인 정전의 위치로 올려놓고, 그들로 하여금 전국의 대학 영문학과 (펜실베이나 대학과 버클리 소재 캘리포니아 주립대 등)에서 정교수 자리를 얻을 수 있게 했다고 할 수 있다. 나를 포함해, 전위시에 대한 작업을 하는 이들은 펄로프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중략)… 

밝혀지듯, 펄로프와 다른 여덟명의 기고자들이 자신들의 글에서 논하는 아홉 명 가량의 시인들 중, 몬코아치Monchoachi만이 유일한 비 백인 작가이며, 동시에 미국 학자들 사이에서 제일 알려지지 않았다.[각주:8] 다시 말하자면, 이 아홉명의 기고자들이 매우 다채로한 미학적 성향과 관심사 (전통 대 전위, 주류 대 비주류, 등등), 방법론 (문학비평, 분석철학, 프랑크푸르트 학파), 학제체계에 관한 의견 (기존 학제적 대 간학문적), 그리고 이념적 헌신도 (고전, 막시즘, 포스트모던, 등등)를 나타내고 있는 와중에도, 이들의 논의를 위해 선택된 시인들을 보면 매우 동질적이고 좀 더 좁은 작가군을 형성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찰은 넘어갈 만한 것이 절대 아니다. 평론가가 어떤 작가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지 선택하는 것은 그들의 머릿속에서 누가 문학적인 가치가 진정으로 중요하게 여겨지는지 가늠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척도이다. 우리가 믿고 싶어하는 것과는 별개로, 여기서 소수자 시인들이 누락된 것은 좀 더 넓은 시학연구 분야를 대변하지 않는다고 할 수 없다. 미학과 정치학을 연결시키려 했던, 근현대 시를 대상으로 하는 (비 소수자) 평론가들의 저작들을 고려한다고 한대도 말이다. (몇명을 거론해 보자면, Rachel Balu duPlessis, Michael Davidson, Alan Golding, David Lloyd, Cary Nelson, Aldon Nielsen, Jerome McGann, Susan Schultz, Donald Wesling, 그리고 Shira Wolosky 등.)[각주:9]

여기서 나도 고백해야 할 것이 있다. 내가 이렇게 시인들의 이름을 열거하면서도, 나는 “정체성 정치”의 반대자들이 그렇게 비판하는 도구적인 접근을 취했다는 사실에 매우 죄책감을 느낀 것이다. (아니면 원래 내 죄목은 정해져 있던건가?) 즉, 내가 “문학적”인 것에 맞서 정치적, 사회적, 그리고 문화적인 것의 편에 선 것 말이다. 나는 오랜 시간 나의 삶, 학자로서의 삶과 다른 삶의 많은 순간들을 시에 바쳤던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죄책감이 들었고 지금도 든다. 나는 두 명의, 낭만주의 영문학과 빅토리아 시대 영문학 교수 두 분을 부모로 둔 사람이고, 문학과 문학 비평에 매우 독창적인 가치가 있으며, 문학비평가가 분석철학적, 과학적, 혹은 법학자나 경제학자처럼 되는 것은 큰 실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각주:10]

하지만—큰 목소리로, “하지만”—나는 왜 베켓과 에이메 세제르 사이에서 이항대립적 선택을 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문학적 욕구, 충동, 불안감, 혹은 편견”에 대해 지적하고 질문하는 것으로부터 순수한 시적 영역, 즉 환유metonymy, 교차배열법chiasmus, 도약율sprung rhythm, 싯줄 구조lineation, 대용어anaphora, 병렬서술parataxis, 강약격trochee 등을 분석하는 것이 왜 격리되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러한 선택구조는 거짓된 것이다.

19세기 미국시학자(이자 파울 첼란 연구가) 쉬라 울로스키는 다음과 같이 쓰고있다. “시를 격리된 미학적 영역이라고 상정하는 개념, 오로지 형식적 분석의 범주로서만 접근해야 할 형식적 객체라고 보는 개념, 메타역사적으로 초월적으로 보는 개념, 시적으로 독자적이고 순수한 언어로 이루어진 텍스트로 보는 개념들이 있다. 이러한 개념들은 겨우 19세기에나 와서야 등장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며, 이러한 개념들이 등장하는 과정 자체 또한 당대의 미학적 경향 만큼이나 아니라 사회적, 그리고 역사적 변화에 반응하여 독특하게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각주:11]

오랜 기간을 “문학적 가치” 그리고 “문학성” 따위를 대동한 비난에 맞서 싸워 온 아방가르드 문학의 비평가들이 함정에 빠진것은 참 신기한 일이다. 그들의 문학이 받던 비난이 오늘날의 소수자 문학에 가해진다. 하지만 아방가르드 시인들과 비평가들 같이 한 쪽에서 소외되었던 적이 있다고 해서, 그들이 다른 형식의 소외형태, 특히 인종으로 인한 소외형태에 대해 잘 이해할 거라는 보증은 없다. 

…다시 말해, 여기서 노골적으로 드러난 것들 아래에서 더 활발하게 작동되고 있는 것들은 바로 굳이 노골적으로 말할 필요가 없는 것들, 혹은 짧게만 이야해도 될 것들이다. “정체성적”, “정체성정치”, “정치적”, “문화적”, “사회적”, “정치”, “불안감”, “편견”, “이국적”, “조심스럽지 못한”, “제멋대로인”…그리고 이런 것들에 맞서 “문학적,” “고전”, “고전적”, “학제적” 등의 단어들이 등장한다. 이러한 단어들은 (“아방가르드”라는 단어도 같이) 훨씬 더 많은 가정과 고정관념을 내포하고 있으며, 이러한 가정과 고정관념들은 대부분 문학 대 문화라는 대립구조를 상정할 때 규범적인 역할을 맡게 된다. 

21세기에 들어섰음에도 불구하고, 흑인 대통령이 연음을 하고, 아방가르드였던 언어시인들이 저명한 대학교에서 주요직들을 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서구 국가들이 세계화된 세상에서 “부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형태의 테크놀로지와 매체가 우리가 적응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나타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에는 디지털 시학의 새로운 형태들, 그리고 문학비평의 공론장과 아카이브들이 포함된다), 우리 업계의 수많은 종사자들은 아직도 지속적으로 전국의 영문학과에서 불가역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가정들, 고정관념들, 분류법들, 그리고 규범들에 의존하고 있다[각주:12].…(중략)…

물론 시학 연구의 몰락을 사회관점 대 문학적인 것으로 프레임하는 행위가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사회에 있어 시의 역할과 중요성, “형식” 대 “내용”form versus content, 등은 시의 역사를 쭉 거슬러 올라가서도 발견될 수 있다. 물론 고대 그리스에서도 존재했던 내용이지만, 현대의 우리에게 좀 더 의미있고 급박한 맥락에서 볼 땐 낭만주의자들에게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독일인들, 그리고 무엇보다 처음으로 자본주의의 무자비한 승리를 목격한 영국인들은 동시에 시장 중심의 세계와 “순수하게” 예술적인 감각의 영역의 분리 또한 목격했다). 우리가 이 때로부터 얼마나 조금밖에 나아가지 못했는지 이해하기 위해선, 윌리엄 블레이크나 퍼시 쉘리 등의 시인이 자신의 작품들이 순수하게 “문학적인” 측면에서만 논의되는 것에 대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상상해 보면 된다. 레이먼드 윌리엄스는 다음과 같이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19세기 말에 분리된 관심사로서 여겨졌던 것들, 즉 어떤 사람이 자신을 시인이라고 칭할지 사회학자라고 칭할지 선택하는 일은, 사실상 세기초에 불가분적으로 엮여 있는 관심사로 여겨졌었다…이런 형태의 단절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로, 워즈워스는 정치적 팜플렛을 썼고, 블레이크는 톰 페인의 친구였고 폭동 혐의로 재판을 받았으며, 콜러릿지는 정치 저널리즘과 사회철학에 대한 글을 썼다. 쉘리는 여기에 보태 거리에 나가 팜플렛을 배부하였고 사우시는 지속적으로 정치평론을 계속하였다. 바이런은 폭동 선동을 주장하다가 정치적 전쟁에 자원하여 전사했다. 더 나아가, 여기 열거한 시인들의 작품에도 적나라하게 드러나듯, 이들의 이러한 활동들은 우연이나 잠깐의 일탈이 아니라, 자신들의 시가 쓰여질 수 있게 했던 경험의 큰 원천에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각주:13] [각주:14]


낭만주의 시대라고 부르는 혁명적이고 세계역변의 시대 이후에도, 미학과 사회적인 것 그리고 정치적인 것의 연관성과 급박한 마음으로 씨름했던 이들은 수많은 독특하고 생동감 넘치는 시학 운동과 집단을 형성했다. 여럿 모더니즘 운동들 (이태리와 러시아의 미래주의 다다, 초현실주의, 할렘 르네상스 등), 프랑크푸르트 학파, 네그리튜드 운동, 블랙아츠(흑인예술) 운동(=BAM), 언어시학, 등이 그것이다. 영문학 전통에서만 윌리엄 블레이크, 퍼시 쉘리, 에즈라 파운드, 알렌 긴스버그, 아미리 바라카, 에이드리엔 리치, 그리고 해리엣 물렌 등의 예술가-시인들과 비평가-시인들은 미학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의 교차성에 대해 매우 심도깊게 그리고 날카롭게 분석하였다. [각주:15] 

하지만 최근 20년동안, 즉 1960년대와 70년대의 수많은 정치운동과 그들이 낳은 1980년대의 문학 정전을 둘러싼 “문화 전쟁”의의 여파 속에서 태어난 논의들 중에서 달라진 것은, “정체성” “정체성적,” 그리고 가장 노골적인 “정치성 정치”라는 단어들이 문학적인 가치와 비평적 엄격함의 반테제 (대척점에 있으며 대립되는) 개념들로서 단단하게 자리잡게 되었다는 것이다…(중략)…

미국의 학계와 더 넓은 사회에서, “정체성,” “정체성적”, 그리고 “정체성 정치”는 자동적으로 똑같이 취급되기 마련이다. 비슷한 의미로 쓰이면서 세 개념들은 본질주의적이고 사유하지 않는 “정체성 정치”의 환원적인 약칭으로서 기능한다. 이러한 “정체성 정치”는 노골적으로든 아니든 회한으로 가득 찬 소수자의 영역으로서 받아들여진다. “정체성 정치”는 허수아비 개념이다. 앞서 내가 <PMLA>의 평론가들 절반이 사용했던 단어들을 “가정과 고정관념을 내포”하고 있다고 말한 건 이 의미에서다. 이들은 독자들이 직감적으로 문제적이라고 생각할 만한 것을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이 것의 정확한 실체는 불분명하고 형체조차 제대로 없다. 그리고, 여기에 덧붙여 나는 이 실체가 일관성도 없고 방어할 수도 없는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사실, 구르구리스의 “정체성 정치의 기고만장함”만을 따로 떼내어 보면, 이러한 질문들이 가능하다. “도대체 학계에서 이러한 ‘정체성 정치’를 실천하는 이들이 누굽니까? 이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믿음을 갖고 있죠? ‘정체성 정치’가 정말로 시학연구와 이론 학제들을 난파시키고 문학연구를 전복시킨 악마입니까?”

“정체성”이라는 단어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은 이념적 그리고 미학적 견해 차이를 넘어서 동일하다. 물론 각자의 이유는 뉘앙스의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말이다…또다른 학자인 스티브 에반스Steve Evans는 형식적으로 “급진적인” 시에 있어 매우 주요한 비평가이며, 그 또한 젊은 아방가르드 시인들이 “정체성”에 대해 갖는 반응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그의 이유는 구르구리스의 PMLA기고문에서 보였던 것보다 좀 더 복잡하고 급진적이다. 원래 1993년에 당대의 새로운 실험문학 선집을 소개하기 위해 쓰여졌던 <새로운 해안에서의 문학Writings from the New Coast>의 서문 (이 글은 나중에 2002년 아방가르드 시학 비평문 선집을 위해 다시 쓰여졌다)에서, 에반스는 예이츠가 즉 “문학이 디디고 설 수 있는 운동은…위대하고 오래 지속되는 것들을 혐오하는 운동이다”라고 주장한 것을 다룬다. 

나는 예이츠가 주장하는 혐오라는 것이 오늘날의 세대 (아방가르드 언어문학 이후의 세대)를 움직이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혐오는 너무나도 빈틈없고, 만연하고, 끊임이 없어 그것의 발화를 불필요하고 속임수처럼 보이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이것은 정체성(대문자 I로 시작)의 혐오이다…이는 오늘날 주어진 조건에 따라 보니 사회적으로 인식되는 “차이”중 자신의 것으로 점유할 만한 것이 단 하나도 없음을 인식한 이들의 분노이다.[각주:16]

에반스는 모두에게 폭력이 가해지고 차이가 소거되는 자본주의의 조건들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그가 “지배(체계적인 정체성)를 강화하고 지속하는 동시에 ‘차이’(상품화)를 표시하고 생산해낼 자본의 필요성”이라고 묘사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14쪽)

사회 공간이 점점 많은 자결권을 “시장”에 양보하도록 강제되면서, (이러한 “시장”은 진부한 상품화의 논리가 정체성적 요소들을 제외한 다른 모든 것을 보이지 않게 만드는 공간이다)민족적, 언어적, 그리고 성적 차이들에 대한 인식을 주장하는 진보적 요구들조차 정체성에 대한 권리행사로 개종되어 인상된 가격으로 이러한 주장이 시작되었던 공동체들에 되팔리게 된다. (14-15)

이 문구는 구르구리스와 같이 다양한 소수자들을 가정하고 그들이 “정체성적” 주장을 한다며 비판하는 평론가들과 궤를 같이 한다. 에반스는 예리하게 후기 자본주의와 상품화 논리 아래에서 차이에 대한 진지한 주장들이, 자신들의 발화지였던 공동체에 “인상된 가격”으로 “되팔린다”고 관찰한다. 예를 들어, “정체성 정치”라는 부당한 비판으로서 혹은 매우 높은 대가가 숨겨져 있는 “포용적” “다문화주의”의 형태로서 말이다.[각주:17]

자본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에반스의 주장에 동의하면서도, 나는 그의 주장이 갖는 거침없음에 대한 불안의 감정을 떨칠 수가 없다. 그는 자본주의 아래에서 “오로지 단 하나의 차이만이 남는다. 그 차이는 아직 소유되지 않은 정체성들(꿰뚫려질 운명의 ‘시장’)과 정체성(대문자 I) 그 자체 (모든것을 꿰뚫는 자본) 사이의 것이다” 라고 주장한다. 나의 불안의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자본주의 아래에서 “사회적으로 인식되는 ‘차이’중 자신의 것으로 점유할 만한 것이 단 하나도 없”다는 그의 주장에 따라 이러한 차이들이 환상에 불과하더라도, 현실에서는 (나는 에반스가 여기에 부인할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러한 차이들이 지속적으로 강제되고 유지되면서 만들어내는 물리적 그리고 정신적 표식이 부과하는 짐과 무게를 불평등하게 짊어지게 되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둘째, 진공 상태에 가깝게 꽉 닫힌 자본주의 체계 속에서도, “사회적으로 인식된 차이”들이 갖는 현실적인 영향력을 인식하고 이에 대응하려는 다양한 민족적 그리고 정치적 행동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차이들과 대응들이 자본주의의 부패한 권력 아래서 생성되고 궁극적으로는 환상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셋째, 에반스 같인 이들이 만들어내는 넓은 범위의 경제적 기반 분석은 그 자체로서 차이와 정체성들의 다양한 층위를 소거하는 매우 불행한 결과를 야기한다. 에반스가 아무리 “지금 세대의 정체성(대문자I)에 대한 증오가

뜻하는 것은 추상적인 개념인 “타자성”과 후기구조주의 그리고 다문화주의 담론 속에서 형성된 “차이”의 모든 흔적들이 오늘날의 [1990년대 아방가르드 시] 담론으로부터 단 한방에 지워질 거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15)

당연히 에반스는 차이와 타자성으로 인해 피해를 짊어지는 이들이 있다는 것, 이것이 단순히 “추상적 개념” 이상으로의 연구와 노력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잘 이해한다. 하지만 그가 인식하지 못한 것은 아주 손쉽게 이러한 거침없는 주장을 가능하게 하는 특권, 즉 민족적, 언어적, 그리고/혹은 성적 소수자가 아닌 사람으로서의 특권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에반스는 아방가르드 시학계의 스마트하고 힙한 백인 남성 이론가들과 활동가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은 제도화된 형태의 지식, 권력, 계급, 그리고 그들과 시학과의 관계에 대한 매우 설득력있는 비판을 가하지만, 여기에 있어 자신들의 (인종적) 특권을 함께 다루지는 못하는 듯하다. 개념시인 들 중 가장 유명하며 펄로프의 최애인 케네스 골드스미스Kenneth Goldsmith가 에반스로부터 20년이 지난 뒤 저술한 <비창조적 문학Uncreative Writing>[각주:18]에서 그는 자신의 주체 위치성이 부여하는 특권에 대해 훨씬 더 근시안적인 무지를 드러낸다. 

비창조적 문학은 탈정체성 문학이다. (85)


내가 생각하는 대로, 나의 정체성이란 것이 아무나 선택할 수 있는 것이고, 시시각각 변하는 것이라면, 나의 문학이 이렇게 항상 유동적인 정체성과 주체성의 상태를 반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84)

“과거 정체성 정치의 도래는 발언권을 가지지 못했던 많은 이들에게 목소리를 주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아직 과제가 산적하다. 많은 목소리들이 소외되고 무시되고 있기 때문이다”라는 골드스미스의 적선심은 정체성이 “아무나 선택할 수 있고 시시각각 변하는 것”이라는, 그의 인종적, 젠더적, 그리고 계급적 무분별함과 무지에서 비롯된 주장을 상쇄하지 못한다.

골드스미스가 탄생시킨 “탈정체성 문학과 함께, 그리고 에반스의 “정체성(대문자 I) 혐오”와 함께 동반되는 위험은 바로 에반스의 “다문화주의 담론들”에 대한 해명에도 불구하고 “정체성(대문자 I)”이라는 단어의 사용은 불가피한 방식으로 독자들로 하여금 인종이라는 유령을 떠올리게 하며, 눈치가 조금 떨어지는 독자들에게는 본질주의적이고 사유하지 않는 인종 “정체성 정치”를 떠오르게 할 것이다. 이는 단지 미국이라는 사회의 맥락에서 “정체성”과 “정체성 정치”가 자동적으로 똑같이 취급되어서, 그리고 인종적 소수자들의 회한맺힌, “부당한unearned” 요구와 연결되어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만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 사회적으로 인식되는 차이가 작동하는 체계 안에서 살고 있다. 이것이 현실이다. 이 나라에서 인종에 관한 논의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억제, 방어기재, 기표 부재, 미리 정해진 매우 좁은 범위의 위치성, 모든 방면에서 일어나는 사유의 캐리커쳐 등에 의한 시련을 받는다. 이러한 논의들이 애초에 존재라도 한다는 가정하에 말이다. 요약하자면, 이는 기억과 상상력의 매우 스펙터클한 기능정지와도 같다. 그러므로, 에반스의 다문화주의적 경고에도 불구하고 “정체성(대문자 I)”이라는 단어를 상기시키는 행위는 자동적으로 독자들의 머리속에 “정체성 정치”의 유령과 인종적 본질주의와 인종에 대한 그 밖의 모든 “정체성”과 “정체성 정치”를 둘러싼 반사적 행동들, 재고되지 않는 반응들, 가정들, 예상들, 범주들, 그리고 고정관념들을 불러일으킨다. 중립적으로든 “무해하게”든 (“다문화주의”와 “다양성”의 담론에서 그렇듯), 이 단어들은 코드처럼 받아들여지며, 멍청하게 “정체성”이라는 단어, 혹은 이보다 더 나쁜 “인종”이라는 단어를 언급하는 소수자 비평가는 비난받기 마련이다. 공손한 사람들끼리는, 어떤 사안에 관해서는 이야기를 아끼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일 수 있다. 

동시에, 정치적 성향이 어떻게 되었든 우리 학자들은 어떤 파티에든 한명의 흑인 비평가가 꼭 끼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이해한다. 이 경우에는 PMLA가 되겠다 (역주: PMLA의 9명의 기고자 중 백인이 아닌 사람은 흑인 비평가 브렌트 에드워즈Brent Edwards 한명이었다). 브렌드 에드워즈는,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시스템에서 그에게 정해진 역할, 즉 예외적인 예외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아이비 리그 제도권의 세례를 받은 것 뿐만 아니라, 문학의 영역에서 사회적인 것의 (표상과 대표 두가지 의미로서의)대표로서, 그리고 (아무도 부러워하지 않는) 소수자 비평가와 시인에 대해 말하고 대변하는 암묵적인 역할 말이다. 

…(중략)… “하드코어” 혹은 “진성” 문학 및 시학 비평가들은 인식론, 운율학, 그리고 형식에 관한 이야기를 중시할 때, 소수자 시인들과 그들의 시집들은 문학적인 것에 관한 논의에서 소외되기 마련이다 (아니면 그냥 모든것에서 소외되거나). 아홉 명이나 되는 시 평론가들이 몇세기에 걸친 다양한 시대의 시인들, 그리고 “새로운 서정시 연구”를 논의하는데 단 한명의 영어권 유색인종 시인을 거론하지 않는 것이 가능키나 한 것일까? (역주: 브렌트 에드워즈는 프랑스어권의 흑인 작가를 거론했다) 소수자 그리고 후기식민주의 작가들이 떼거지로 우리의 문학 수업을 장악한다는 펄로프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진지하게 받아들인다고 치자. 이렇게 장악당한 상황에 도대체 어떻게 단 한명의 영어권 유색인종 시인이 논의 대상이 되지 않는 상황이 가능한건가? 이러한 누락은 물론, 우리가 보았듯, 아방가르드든 고전적이든 문학적인 사안들을 강조하는 평론가들은 물론, 역사(그리고 역사화)와 이념에 관심 있는 평론가들에게 공통적으로 해당한다. 

…(중략)…”새로운 서정시 연구”든 “시학의 재고” 학회든, 미국 시학이라는 분야를 근본적으로 재고하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 이 분야 형성에서 인종이라는 것이 맡았던 내부적 역할을 포함해서 말이다.[각주:19] (이는 즉, 소수자 시학과 미국 시학의 불가분성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러한 맹점은 미국의 맥락을 고려하면 특히나 더 변호의 여지가 없다. 미국이라는 민족국가의 형성은 물론 “미국적”인 것이 무언인지에 대한 개념에서 인종의 문제가 얼마나 핵심적인지, 그리고 사실 근본적인지를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다. 우리의 역사, 이념, 고정관념, 정신세계, 그리고, 물론, 우리의 예술 형식들, 그리고 우리 문화를 포함해서 말이다.[각주:20] 미국 상상계와 현실에 있어서 인종이라는 것이 갖는 핵심적 중요성은 단순히 사회학적인 “소재”content”의 문제가 아니라, 이전에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렇듯, 우리의 텍스트 생산의 형식forms에 있어서 결정적이었다. 이러한 텍스트는 신성한 국가 근간의 문서들, 독립선언문과 미국 헌법문을 포함한다.[각주:21]

시는 시대적 맥락, 그리고 역사에서 절대 분리될 수 없다. 이 시들이 형식적 제한을 가지고 철학적으로 사유하는 방식으로 여겨질 때조차 말이다.[각주:22] 마찬가지로, 시의 사회적인 것, 문화적인 것, 그리고 정치적인 것을 이루는 요소들은 언어학적이고 구조적인 형식의 측면에서 분석되어야 한다. 시는 의식적이고 무의식적인 방법을 통해 작동하며 시적 상상력과 이보다 더 큰 세계간의 굉장히 복잡한 교류로부터 만들어진다. 미국 시인 혹은 미국 시 평론가이면서 이러한 더 큰 세계와 역사에 대해 사유하지 않는 것은 굉장한 억압 행위나 마찬가지이다. “뭐든지 이 세상에서/말해지는 것, 혹은 잊혀지는 것,/혹은 말해지지 않는 것이, 형태(form)를 만든다.”라고 로버트 크릴리는 상기한다.[각주:23]


인종과 미국시


21세기가 벌써 20년이 다 지나가고 있는 마당에 우리 문학평론가들이 자신들 분야에서 가장 저명한 학술지의 지면을 통해 아직도 이항대립적 혹은 이분법적인 “사회적인 것 대 문학적인 것”의 프레임을 횡횡시키고 있다는 사실은 미국시학연구의 상태는 물론 보다 넓은 의미에서의 미국 사회가 아직도 자신의 역사, 특히 인종에 관한 역사와 그 역사의 결과를 직면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시사한다. 내게있어 인종이란 가장 두드러지고 가장 큰 논쟁거리이며,  미국이라는 맥락에서의 사회적 차이가 고통스럽게 기인하는 요인으로 알려져 있다. 인종이라는 주제가 “문학적”인 요소와 대치되어 언급될 때에는 좀 더 일반적인 단어들, 즉 “문화적” 그리고 “정치적”이라는 수식을 (통해 숨겨져야 하며) 부여받기도 한다. 그리하여, 나는 인종의 문제가 계급의 문제와 불가분적으로 엮여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으며, 계급이라는 것도 인종과 마찬가지로 굉장히 고통스러운 차이들을 생산해낸다. 하지만 “정체성” 그리고 “정체성 정치”를 비난하는 이들의 머릿속에서 “정체성”과 “정체성 정치”의 엔진을 가동시키는 것은 계급이 아니라 인종이다. 물론 이러한 믿음은 “인종차별주의자”로 보이기 때문에 노골적으로 거론되는 일이 거의 없을 뿐이다.

…(중략)…소수자 주체들과 문화들이 미국 상상계에서는 신체적인 것, 물리적인 것, 그리고 사회적인 것의 영역을 점유하고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문학적인 요소와 문화적인 요소(여기서는 고급 문화 향유를 이야기할때의 문화가치를 의미한다)의 문제를 거론할 때, 소수자들은 흔하게 누락된다. 형식이라는 것은 좀 더 고전적인 서정시 형식이 되었든 아니면 아방가르드 시 형식이 되었든, 뛰어난 문학적 그리고 문화적 감각의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상정되고, 인종적 표식이 부재한것으로 여겨지지만, 이러한 부재는 암묵적으로 백인적이라고 상정된다.[각주:24]

소수자 작가들이 문학 생산을 한다고 인식이라도 되는 경우에는, 이들의 문학은 항상 다른 “하위문화”를 비추는 민족적 창문으로서, 모방적으로 그리고 사회학적으로 기능한다고 여겨진다. 미국 건국공신 토마스 제퍼슨의 말에 따르면, 이는 “상상력이 아닌 오로지 감각만의” 시이다.[각주:25]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20년 가량 강단에 서 왔던 저명한 여성 문학 평론가인 일레인 쇼얼터 또한 소수자 문학의 특성에 대해 위와 크게 다르지 않은 관점을 표한다.

1960년대와 70년대에는, 문학을 가르치는 일은 대학 내 급진적인 집단과 소수자 집단을 위한 노골적인 정치적인 행위가 되었습니다. 영문학과는 페미니스트들과 아프리카계 미국인 평론가들이 처음으로 자신들의 수업을 개설함과 함께 커리큘럼에 흑인과 여성 작가들을 포함하도록 압력을 넣었고요. 그들의 노력은 정전 형성과 문학연구 일반에 걸친 패러다임 전환으로 성과를 거뒀고, 형식주의를 거부하면서 좀 더 참여적이고 정치적인 해석이 퍼졌으며, 이러한 해석은 개인 정체성과 정치 투쟁의 형성을 문학 연구의 목적으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1970년대 이론적 혁명이 일어난 뒤로, 이러한 관심들은 빠르게 문학의 모방적 사용으로부터 멀어져 갔습니다.[각주:26]


쇼월터가 부드럽게 “급진적”과 “소수자”를 겹쳐버리는 것에 주목하자. 영문학과가 정치 투쟁의 처음의 장이었다는, 사실과는 조금 다른 그의 인식에 더해서 (영문학과들은 제일 씁쓸한 투쟁이 일어났던 장소들 중에 하나였다. 일반적으로 영문학과들은 소수자 작가들을 커리큘럼에 포함시키는 데에 있어서 큰 거부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는 오늘날에 와서도 그 예가 수없이 많을 정도로 변함이 없다), 그는 영문학 교수들 사이에서 매우 흔한 의견, 즉 소수자 문학이 “형식주의를 거부”하고, (인종적인 표식이 부재하며, 정치적이지 않다고 여겨지는 정전 문학에 비교하면) “정치적”이며, 모방적이고, “개인 정체성의 형성”을 문학연구의 “목적”으로서 강조한다는 의견을 표한다.[각주:27]

“소수자”와 “모방적” 형식을 등치시켜 같은 의미로 활용하는 것을 보면, 쇼얼터는 자신의 미국 문학사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진 투머Jean Toomer, 랭스턴 휴즈Langston Hughes와 같은 모더니즘 작가들, 그리고 필리핀계 시인 호세 가르시야 비야는 1970년대 그리고 1960년대 훨씬 이전부터 형식을 다루며 실험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일본인이었던 혼혈 시인 사다키치 하트먼은 19세기 말에 상징주의 시를 쓰고 있었다 (그는 한때 월트 위트먼의 비서로 일하기도 했다).[각주:28] 심지어 “급진적”이었던 1960년대와 70년대에도, 아미리 바라카와 같은 블랙 아츠(흑인 예술 운동) 작가들과 메이-메이 베르센브루게 같은 아시아계 미국인 작가들까지 영어 언어의 한계들을 밀어부치는 작업에 굉장한 관심을 보이고 있었으며,[각주:29] 이러한 관심은 18세기부터 시작된, 백인들만의 사유재산으로서가 아니라 모두에게 약속된 평등권을 얻기 위한 투쟁과 전혀 대립관계에 있지 않았고, 오히려 이를 더 강화했다. (바라카는 리로이 존스라는 이름으로 1950년대 뉴욕의 다운타운 아방가르드 문화에 매우 중심적인 역할을 했으며, 다양한 아방가르드 운동과 대항문화 문동의 여러 시인들과 매우 가깝게 교류했다)

(…중략…)소수자 시 작품들을 거론할 때 사용되는 수사와 형식이 내포하는 문제적인 성향은 여러가지 요인에 기인한다. 물론 인종 억압과 차별의 전통과 현실을 제대로 직면하지 못하는 미국의 병적 무능함도 이 요인들 중 하나다. 첫번째로, 문학연구 내, 그리고 좀더 넓은 독자층에게 있어서 떨쳐지지 않는 경향이 남아있는데, 이 경향은 산문을 사회적 분석의 상징으로, 그리고 시, 특히 서정시를 좀더 사적이고 개인적이며 “순수하게” 문학적인 장르로 이해한다. 바흐친같은 저명한 비평가조차 이러한 편견을 가졌다. (이는 6장에서 좀더 자세히 논할 것이다)[각주:30]

두번째로, 인종지어진racialized 시인, 주체, 그리고 사람은 신체적[각주:31], 물리적, 그리고 정치적 개념을 통해 받아들여지기 일쑤다. 이는 그의 문학작품으로 하여금 불가피하게, 하지만 의식적이지 않게, 추상적이고, 지적이고 문학적인 것과 대립된 항으로서 받아들여지게 된다. 소수자 문학은 시를 포함하여 불가피하게 모방적으로, 자전적으로, “대표적”으로, 그리고 민족적으로 읽히게 마련이며, 이러한 독해에서 시인은 원주민 정보원으로서 (예를 들어 차이나타운 투어 가이드처럼), 자신의 민족 문화에 대해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이로 상정된다. 21세기에서조차도 시는 높은 문학 문화의 최고봉으로서 여겨지는 경향이 있으므로, 소수자 시 생산은 이러한 긴 전통을 위해 갖다 쓰고 버려질 수 있는 부속물 취급 받는것이 흔하다. 노튼 시 선집Norton Anthology of Poetry과 같은 시 선집에서 최근 소수자 시인들이 포함된것은 오늘날의 소위 다문화 시대에서 (시장 수요에 의한) 주어지는 적선 역할을 하는 것이 크다.

세번째는…(중략)…소수자 시는 좀 더 문화연구나 민족연구의 영역에서 다루는 것이 더 적합한 작업물이라고 간주되는 것이다. PMLA의 “새로운 서정시 연구”에서 볼 수 있었듯이, 소수자 시를 운율법이나 시적 형식의 관점에서 분석하려는 시도는 만약 있다고 친다 하더라도 매우 드물며, 이 점에 있어서는 아방가르드 평론가이건 대중 서정시 평론가이건 똑같다.“진짜 시인들”, 조리 그래햄이나 존 애쉬베리 같은 이들을 독해할 때, 평론가들은 언제나 대부분 “시 작업 자체”를 분석하려 드는데, 예를 들자면, 어조라던가 병렬서술이 어떻게 활용되는지에 대해 주목한다. 아시아계 미국인 작가의 문학작품, 픽션, 혹은 시를 독해할 때, 이 평론가들은 거의 빠지지않고 작품을 그들의 하이픈(-)으로 이어진 정체성과 이국적인 “고향”문화에 대한 민족적 “진실”을 비추는 투명한 창문으로 기능한다고 가정한다. 다른 말로 이야기하자면, 이들 작품에서 언어의 매개성 따위는 없는 셈 취급되는 것이다.

이러한 미학적 스펙트럼의 반대편에서는, 아방가르드 아시아계 미국 시 (탠 린이나 메이메이 베르센브루게 등)를 독해할 때 평론가들은 시인의 인종을 완전히 무시하는 경향을 보인다.[각주:32] 심지어 해당 시인들이 자신의 작업에서 인종화된 혹은 민족적 정체성이 사소한 문제가 아님을 꽤 명료하게 하고 있을 경우에도 말이다. 형식에 대한 강조를 중히 여기며 시집들을 소재적으로만 독해하는 행위를 비난하는 아방가르드 시 평론가들이 베르센부르게 같은 시인의 작업에서 인종 개념이 갖는 중요성을 무시하는 것은 그래서 역설적이다 (그리고 모순적이다). 베르센부르게의 작업에서 인종적 소재나 표식이 없다는 이유로 인종 개념의 중요성을 무시하고, 이렇게 그들은 자신들이 그렇게 싫어하는 소재적 논리를 통해 그러한 무시를 정당화한다. 하지만 관찰력이 있는 독자라면, 특히 형식적으로 실험적인 문학에 경험이 있는 독자라면 소재뿐이 아니라 형식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이것이 독자들에게 무엇을 이야기하는지를 관찰하게 될 것이다.[각주:33]


아시아계 미국시와 미국의 신체 정치Body Politics


…(중략)…만약 의논되는 경우가 있다고 가정할 때, 아시아계 미국문학은 오늘날의 학계에서 매우 부속적인 취급을 받으며 아시아계 미국인 학생들만이 관심을 보일만한 문학으로만 간주한다. 아프리카계 미국문학과는 좀 다르게, 아시아계 미국문학은 거의 오로지 아시아계 미국문학의 전문가들만이 연구하며, 이들 전문가는 거의 전부 아시아계이다. 아시아계 미국문학이 미국문학 수업에 포함이라도 되는 경우는, 매우 적선적인 포함, 즉 맥신 홍 킹스턴의 <여성전사>나 줌파 라히리, 그리고 창래 리의 픽션들로 대표된다 (이 두 작가 모두 <뉴요커>지의 지면을 장식한 바 있다). 시의 경우 거의 다루어지는 경우가 없으며, 몇몇 특수한 아시아계 미국문학 수업에나 있는 양상이고, 그마저도 거의 없는 형국이다.

…(중략)…아시아계 미국인들에게 가해지는 인종적 호명의 전례없는 형태 때문에 (이러한 형태는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문화적으로 그리고 언어적으로 동화될 수 없다는 관념과 뗄 수 없는 방식으로하게 연결되어 있다) 아시아계 미국문학은 특히 시사하는 것이 많은 “한계 사례”로서 작용한다. 이 사례가 시사하는 것은 시인이 당하는 호명화(인종화를 포함한)와 그 시인이 영어 언어와 맺는 관계뿐만 아니라, 좀 더 넓은 의미에서의 영문시, 미국문학, 미국성, 그리고 영어 언어, 문학적 가치 등에 대한 고정관념과 선입견들까지 포함한다. 

내가 이야기하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에 대한 지식이 필수적이다.

미국의 다른 모든 소수자 집단들처럼 아시아계 미국인들 또한 미국 내에서 전례없는 형태의 인종적 호명을 경험했다. 하지만 미국의 다른 모든 소수자 집단들과는 다르게, “오리엔탈들”, “아시아 인종”, 그리고 “아시아인”들은 특히 더, “미국인”이 무엇인지로부터 구분되는 필수적이고 불가변적인 외부성이라는 인종화의 형태를 대표하게 된다…(중략)…실제로, 중국인들은 과거 소지품 취급을 받아왔던 흑인 노예들보다도 더 미국 사회에 섞일 수 없는 존재로 인식되어 왔다. 1896년에 플레시 대 퍼거슨 판결에 강하게 반발하며 “분리하되 평등하다”라는 주류 논리에 반박하여 찬사를 받는 대법원 판사 할란은, 그의 글에서 “우리와 너무나도 다른 나머지, 시민권 획득마저 금지된 인종이 있다. 이 인종에 속한 이들은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우리나라에서 전적으로 배제된다. 나는 지금 중국인 인종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각주:34]

…(중락)…이 나라의 모든 소수자 집단들이 해당하는 두가지 사실이 있다. 첫번째는, 인종화의 과정들로 인해 동화로서의 압박이 가해지고, 자신의 “미국성”을 증명하도록 강요되며, 그리고 이러한 압박과 강요는 폭력과 지배의 형태들을 통해 시행되었다. 두번째로, 자신의 “미국성”을 증명하는 일은 언제나 불가분적으로 영어에 통달하는 것[각주:35], 그리고 외국 억양과 외국어 흔적을 지우는 것을 필수로 하였다.[각주:36] 하지만 아시아계 미국인들만 미국 역사에서 필수적으로 그리고 불가역적으로 외국인, 그리고 비원주민 취급을 받았으며, 이는 미국 문화와 신체 정치body politics에서 더욱 그러하다[각주:37] (이는 “미국성”의 개념에 매우 위협적인 것으로 여겨졌다).[각주:38] 아시아계 미국인들에 대한 이러한 치명적이고 확고한 이념적 특징화는 “오리엔탈”인들이 필수적으로 영어 원어민이 아닌 자들이며 아무리 노력해도 그들의 미숙한 영어는 근본적인 것이기 때문에 절대 극복될 수 없다는 고정관념과 떨어뜨려 놓고 생각할 수 없다. 영어가 완벽한 4세대 아시아계 미국인들조차 모국어가 영어냐는 질문을 받는 일이 흔하다.[각주:39]

…(중략)…나는 물론 “아시아계 미국인”이라는 범주가 가진 많은 모순들과 긴장관계들에 대해 강하게 의식하고 있지만, 동시에 실제 현실과 이러한 범주의 전략적 필요성 또한 이해한다. 1960년대와 70년대 중국, 일본, 필리핀, 한국, 베트남, 그리고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서 이주해온 다양한 미국인들(혹은 그런 이들의 후손들)이 미국 사회 내에서 공통된 인종차별과 차별의 경험—“gooks”[각주:40]라고 불리운 것과 “다 똑같이 생겼다”라는 내용의—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아시아계 미국인”이라는 기치 아래 모여 정치권력을 형성할 수 있었던 것처럼, 21세기 학계 속에서 “아시아계 미국연구” 그리고 “아시아계 미국문학”의 범주는 이러한 아시아계 미국문학이 애초에 연구대상으로서 교육대상으로서 존재할 수 있게 해준다. 사실, 이러한 제도적 자리가 마련되어 있지 않고서는 <여성 전사>같은 문학조차도 수업에서 가르쳐질 일이 없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들이 매우 뚜렷하다. “여성 연구” 그리고 “아프리카계 미국인 연구”의 범주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학제들의 제도적 존재야말로 여성과 흑인들에 의해 쓰여진 문학이 대학의 문턱을 넘어 커리큘럼에 포함될 수 있도록 하는 데 필수적이었다. 이러한 문학은 그냥 마법처럼 대학가에 뿅 하고 등장한 것이 아니다. 이들의 존재는 몇년에 걸쳐 투쟁하여 어렵게 얻어진 결과들이고, 이러한 결과를 얻기 위해 소수자 교수들과 학생들에게 직업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많은 대가를 치루게 하는 투쟁들이 오늘날에도 일어나고 있다.[각주:41] 곧, “아시아계 미국인” 범주를 분석 비판하기 위해서는, 애초에 이러한 범주가 있음을 필요로 한다.

아시아계 미국문학은 오늘날 존재감이 떠오르는 동시에 (전국의 많은 영문학과들이 아프리카계 그리고 여성 문학 전문가들을 고용한 지 한참이 지나서야 아시아계 미국문학 전문가들을 고용하고 있다) 사라지고 있는 역설적인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 전국의 저명한 대학 영문학과들 중 적지 않은 수가 오늘날 아시아계 미국문학을 “트랜스내셔널”, “글로벌”, 혹은 “디아스포라”적으로 개념화, 맥락화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미국 내의 인종정치학과 인종차별주의에 대해 다룰 기회가 점점 적어들고 있다.

학부생, 대학원생, 그리고 동료 교수들 중 아시아계 미국 역사나 문학에 대해 알고 있는 이들은 매우 적으며, 이를 직면할 때 나는 그들에게 지난 한세기동안 미국은 4개의 아시아 국가들(필리핀, 일본, 한국, 베트남)과 싸우며 수백만 명을 죽였고, 세계 역사상 원자폭탄이 (두개나) 떨어진 국가는 아시아 국가가 유일하며, 구체적으로 민족/인종이 언급되며 법적으로 체계적으로 미국에서 이민이 배제된 국가 또한 아시아 국가가 유일하고, 민족/인종을 이유로 강제 수용소에 감금되었던 집단은 오직 일본계 미국인 뿐이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이런 사실을 상기할 때, 이들은 거의 항상 황인공포증의 수사학이 지난 한세기동안 얼마나 일관적이고 지속적이었나에 대해 경악하며, 이는 거의 한세기 반 전의 중국인 배제법에서 시작하여 오늘날 21세기의 “중국의 부상”에 대한 경계심으로 이어진다. 

…(중략)… 나는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영원한 외국인이며 그들이 쓰는 영어는 네이티브가 될 수 없다는 대중적인 (오)인식이야말로, 아시아계 문학이 독해되는 (아니면 오독되는) 양상에 영향을 안줄래야 안줄 수 없었다는 사실을 확신한다.

예를 들어보자. 1982년 캐시 송이 아시아계 미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자신의 첫 시집 <사진 신부>가 예일 젊은 시인상에 선택됐을 때 심사위원이자 시인인 리처드 휴고는 호놀룰루에서 태어난 웰레즐리 대학 출신의 이 시인이 “경험적 극단을 특유의 인내심으로 다져진 감각과 함께 수용한다”며, 이러한 인내심은 “몇 세기만큼 오래되고, 선조적이며, 부족적인, 대에 걸쳐 내려온 재능centuries old, ancestral, and tribal, a gift passed down”이라고 묘사했다.[각주:42] 듣는 이로 하여금, 수상자가 백인이었다고 해도 휴고가 똑같이 백인의 “선조적이고 부족적”이며 “몇세기만큼 오래된” 인내심과 감각에 대해 언급하거나 백인 시인의 “수용적” 혹은 “경험적”인 성향을 강조했을지 의문이 들게 한다.

다문화주의와 정전 전쟁이 야기한 변화로 인해 오늘날은 많은게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이로부터 무려 30년이 지난 뒤, 켄 첸Ken Chen이 똑같은 상을 2009년 수상했을때, 리뷰어들의 반응은 두 가지의 양분된 범주로 나뉘었다. 첸이 그의 이메일에서 서술한대로, “내 책으로 인해 [리뷰어들이] 혼란스러워 했는데, [그건] 그들이 내 작품을 아시아적인 내용으로 가득하다고 생각하면서 다른 요소들을 무시했거나, 아니면 아방가르드적인 형식적 부분만 강조하고 나머지 소재적 요소들은 다 무시했기 때문이다.”[각주:43] 전자의 예시로서, 시 재단Poetry Foundation의 해리엣 블로그는 첸의 <Juvenilia>를 오로지 소재적으로만 다룬다.

화자의 성장기는 그의 부모님의 불화적인 결혼 (“생전 키스하지 않을 얼굴들”)과 다가올 분가로 점철되어 있다. 소통 불능과 이 중국계 미국인 가족에게 세대를 걸쳐 남을 상처는 젊은 화자가 앓는 미스테리한 질병으로서 구현된다. 이 화자는 자신의 친적들이 끓어오르는 불행의 구더기로 빨려들어가고 있다고 여긴다.  [각주:44]

이러한 수용형태는 드물지 않다. 리뷰어들과 학자들이 아시아계 미국시에 관해 서술할 때 그들은 언어적, 문학적, 그리고 수사학적 형식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이는 그들이 뼈속 깊이 가진,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몇 세대동안 “소통 불능”을 앓아왔다는 인식에서 비롯한 것이지 않을까?). 이런 간과는 서술 대상이 시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매우 이해하기 어렵다. 시라는 것의 존재 자체가 발화 방식, 운율, 리듬, 그리고 다른 형식적 요소들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평론가가 소수자 문학분야에 종사하는 소수자인 경우에도 이러한 경향은 (좀 덜 티가 난다 할지라도) 나타나는 것 같다.

몇 줄이라도 시를 써본 적이 있는 사람은 시인이 어떤 것을 쓰기로 결정할 때 그 결정들이 얼마나 핵심적인지 (기사나 정치 선언문과는 다르게) 알 것이며, 시인이 매 번 사용하기로 결정하는 다양한 형식적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 또한 알 것이다. 어디에서 다음 줄로 넘어갈 것인가, 어떤 운율적 혹은 리듬적 패턴을 기용할 것인가 (아니면 어떤 패턴도 기용하지 않을 것인가),  연(聯) 단위는 무엇으로 정할 것인가, 책장에 시가 시각적으로 어떻게 배열되게 할 것인가 등. 의식적인 작가의 선택 말고도 언어의 잠겨있는, 혹은 무의식적 구조들이 개개별의 시의 언어를 통해 매우 독특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인종이라는 것이 국가 역사와 국가적 정체성 형성, 그리고 일상의 표면에 전적으로 근본적인 요소로 작용한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당연히 개인의 인종적 정체성 (혹은 인종적 표식이 “부재”하다고 가정되는 보편성)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미국 시 형성에 있어서도 큰 역할을 맡는다. 그게 흑인이 되었든 황인이 되었든 백인이 되었든 간에 말이다. 인종적 호명은 미국인 주체성 형성에 있어 전적으로 불가피한 것이며, 이는 “가시적인 소수자들”의 주체성에만 국한된 것이 전혀 아니다.

그러므로, 비평 스펙트럼에서 아방가르드 쪽에 위치하는 시인들과 평론가들이 인종의 문제를 무시하거나 누락한다는 것은 주류 시학 평론가들이 인종적 그리고 민족적 소재와 정체성을 페티쉬화 하는 것만큼이나 끔찍한 일이다. 시와 주체성의 연결고리에 대해 생각할 때(아니, 좀더 정확하게는 생각하고 있지 않을 때), 아방가르드 문학의 평론가들은 급진적이고 새로운 시학적 형식에 대해 그들이 취하는 수용적인 태도에도 불구하고, 형식적으로 더 보수적인 평론가들이 빠지는 함정에 같이 빠지는 경우가 흔하다. 그들 중 절대 다수는 오로지 형식적인 요소나 다른 주제만을 강조(예를 들어, 베르센브루게의 시에서의 감정이나 과학에 관한 주제)함으로 인해 인종의 문제를 누락하며, 정치적 사회적 “소재” (인종적 정체성 포함)를 형식적 문학적 문제에 대립시키거나, “구린bad” 민족시 (자전적, 정체성 기반)와 어쩌다 유색인종 시인에 의해 쓰여진 “좋은” 시 (형식적으로 실험적인)로 이분화하는 경향이 있다.[각주:45] 

마지막에 설명한 경향의 예시는 <출판인 주간지Publishers Weekly>지에 실린 첸의 <Juvenilia>에 대한 리뷰에서 나타난다. 아방가르드 출간물은 아닐지라도, 이 익명의 리뷰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정 종류의 형식적 실험들을 높이 사는 동시에 구린 민족문학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관점을 확고하게 드러낸다.

가장 최근의 예일 젊은 시인 수상자는 자신의 중국계 미국인 가족사에 대해 쓰고 있다. 그는 잘 알려진 중국 시인들, 즉 왕웨이나 리유 등을 참고한다. 하지만 그의 운율과 산문은 이러한 회고적 시들로부터, 그리고 1인칭 “정체성”, 즉 최근의 미국에서의 이주민 인생에 관한 많은 운율들을 특정지었던 이 정체성에 기반한 시들로부터 최대한 먼 거리를 둔다. 첸은 가장 긍정적이고 넓은 의미로 “실험적”이다. 장을 넘길 때마다 자기표현, 문장, 문법, 혹은 (긴) 싯줄을 통한 실험이 펼쳐진다.[각주:46]

여기서 좋은 소수자 시와 구린 소수자 시가 대치된다. 구린 소수자 시는 “정체성” (또 그 망할 개념이다)을 강조하며, “가장 긍정적이고 넓은 의미로 실험적”인 것은 암묵적으로 인종이나 민족적 정체성을 논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혹자는 여기서 “실험적” “혁신적” 그리고 “아방가르드” 등의 범주가 암묵적으로 “백인”의 것으로 코드화되고 있다고 확신하게 될 지도 모른다. 해리엣 물렌Harryette Mullen과 다른 몇몇의 소수자 실험시인과 학자들이 주장했듯 말이다. 오직 몇몇만의 소수자 작가들이 실험문학 선집들과 학회에서 할당적으로 포함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물렌은 이러한 상황을 “미학적 분리정책aesthetic apartheid”이라고 묘사한다)[각주:47] 바라카의 경우에서도 보았듯, 실험성의 특정 양상들, 예를 들자면 재즈 시학같은 경우는 아방가르드와 “실험적”인 것들의 정의로부터 배제된다. 무엇이 아방가르드 안에 포함되는가에 대한 기준은 21세기에 와서도 상위 모더니즘High Modernism의 순수한 형식주의적 레퍼토리에 기반한다. 예를 들자면 파편화, 문법체계 파훼 등등.[각주:48] …(중략)… “정체성” 정치와 마찬가지로, “아방가르드” 또한 자신들만의 (인종화된) 선입견들과 암시들로 가득 차 있다. 

소수자 실험시인들이 아방가르드 쪽에 포함되는 경우는 그들의 작업과 스타일적인 선택지점들이 아방가르드 운동의 일부로서 보편화되거나 (“그 작가는 우리랑 같아, 근데 흑인이라는 게 더 대단한 것 같지 않아?”) 잘못되게 정체성 정치에 대해 강조하거나 구린 글을 쓰는 대부분의 소수자 시인들 중에 매우 특별한 “예외”로서 간주된다 (아니면 이들의 글이 구린 게 인종과 정체성에 대해 강조하기 때문인가?). 내가 논했듯이, 인종적 정체성은 허수아비 개념인 “정체성 정치”와 똑같이 여겨지는 경우가 대다수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나는 메이-메이 베르센브루게와 파멜라 루의 작업을 분석한다. 그들의 시에서는 실상 인종적 소재나 표식이 없다. 이 아방가르드 문학들을 살피면서 나는 나의 주장, 그러니까 오히려 시의 형식적 그리고 수사학적 구현, 특히 언어적 구조를 통해서 사회적 그리고 역사적 영향의 흔적을 더 강하게 인식할 수 있다는 주장을 좀 더 큰 시험대에 들게 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 베르센브루게가 베이징에서 네덜란드계 아버지와 중국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중국어를 모국어로 하고 있었지만 뉴잉글랜드에서 성장했다는 사실은 자신으로 하여금 인간의 정체성 뿐만 아니라 언어와 자연 현상이 갖는 상대성과 수반성relationality and contingency에 대해 더 날카롭게 의식할 수 있게 하였다. 이러한 의식은 그의 싯줄 하나하나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그의 싯줄은 수반성과 조건성contingency and conditionality의 문법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러한 문법은 가정법과 조건법subjunctive mood and conditional mode 사용으로 표시되어 있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그녀는 신체가 드러낼 것이 무엇인지, 구름이 투명했다면, 궁금해한다 She wonders what the body would reveal, if the clouds were transparent.” (“허니문”, <공감Empathy>)[각주:49]

소수자 아방가르드 시인의 작업과 그의 인종화된 민족적 주체성 사이의 연결고리에 대해 주장함으로써, 나는 오늘날의 아방가르드 문학에 대한 논의에 매우 중요한 개입을 하고자 한다. 비평가가 좀 더 주류의 아시아계 미국시에서 나타나는 오로지 민족적 소재만을 강조하든, 아니면 아방가르드 아시아계 미국시에서의 인종 문제를 깡그리 무시하면서 “순수하게” 문학적이거나 형식적 (민족적인 것에 대치하는)인 것을 우선시하든, 아시아계 미국시—그리고 미국 소수자 시—의 완전함과 복잡함은 제대로 인식되지 않는다. 이러한 비평적 접근들은 영어로 된 시와 미국시의 복잡한 다면성과 상충성에 대한 이해를 매우 궁핍하게 만들어버린다. 


존재를 사유하기


이 책에서, 나는 앞서 언급한 아시아계 미국시 독해의 환원적 양상들에 대한 반론을 제기한다. 이 책은 다섯명의 동시대 아시아계 미국 시인들을 집중 조명한다. 이들은 나이와 문학 스타일등에 있어서 천차만별이다. 40대 초반에서 60대 후반의 작가까지 있으며 (리영 리, 메릴린 친, 존 야오, 메이-메이 베르센브루게, 파멜라 루), 표현주의적 서정시에서부터 좀 덜 투명하고 재현적인 작업, 그리고 좀 더 형식적으로 실험적인 스타일까지 포함한다. 각 시인의 작업군에 있어서, 나는 매우 세세한 독해를 통해 비유, 역설, 패러디, 수반성의 문법, 가정법 등의 형식적 부분 혹은 양상들을 다루며, 이러한 요소들의 사용이 이들의 시학에 있어 얼마나 중심적이고, 이러한 구조들이 각 시인의 좀 더 넓은 정치적 (가장 넓은 의미로서), 그리고 시학적 관심과 문제의식을 어떻게 언어로 표현하고 구현하는지에 대해 다룰 것이다.

이들 시에서 사용되는 구체적인 형식적 요소들은 미학적 영향 (구성적 선택, 언어 구조—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영향받은 다른 문학인들 등)뿐만 아니라 사회정치학적 영향과 역사적 맥락, 즉 지리적 위치, 당대의 사건들, 혹은 이 세계에서 특정 인종, 젠더, 섹슈얼리티, 계급, 그리고 교육수준 등에 예속되는 한 사람으로서의 사회화 과정 등을 반영하고 동시에 드러낸다.[각주:50] 이것은 “주류” 서정시인들뿐만 아니라 “아방가르드” 시인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리고 이는 소수자 시인들뿐만 아니라 백인 시인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심지어 “은둔적”이고 “불가사의”하다고 여겨지는 시인인 파울 첼란 (물론 그는 헤게모니적 유럽 언어권에서 인종화된 소수자 시인이 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직접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다)조차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시는 시간의 바깥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시는 영원함을 주장하고 시간을 넘나들려고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넘나듦은 횡단일 뿐, 초월은 아니다.”[각주:51] 이 구절은 1958년에 그의 연설, 즉 나치의 죽음 수용소가 문을 닫은 지 13년 뒤에 주어진 연설에서 발췌했다.
…(중략)…나는 내가 세계와 시 작품 사이—이 경우, 아시아계 미국의—의 매우 단순한 인과적 혹은 환원적 연결고리를 주장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아이헨바움Ejxenbaum을 다시 인용하겠다. “문학적 세계의 사실들과 외적 사실들 사이의 관계들은 단순히 인과적 관계일 수 없다” [61]). 나는 리영 리의 은유 사용이 독특한 “아시아계 미국적” (혹은 중국계 미국적)인 방법으로 사용된다고 주장하거나, “아시아계 미국인적”인 방법으로 시를 쓴다고 주장하거나, 물화할 수 있는 아시아계 미국인의 “본질”이 형식적 요소나 구조에서 발견될 수 있다고 주장하거나, 하나의 “아시아계 미국인” 혹은 “중국계 미국인” 본질이 존재한다고 주장하거나 다른 아시아계 미국인 시인들의 작업을(혹은 내가 연구하는 대여섯 명의 중국계 미국인 시인들의 작업을) 한데로 묶으려고 하는게 전혀 아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아메리카 미국 문학”이라는 범주는 “여성 문학”이나 “아프리카계 미국 문학”이나 “미국 문학”이나 “빅토리아 시대 문학”이라는 범주들이 그런 것처럼, 자신의 범주 내에서 이질적이고 다양한 텍스트들이 다 포함되어 있다.[각주:52]
 

그리하여, 메이-메이 베르센브루게가 자신의 시에서 사용하는 분사구(分詞句)는 명미 킴이나 로버트 로웰이 자신들의 작업에서 사용하는 분사구 사용과 다르게 작용하며 다른 출처를 갖는다. 이 세명의 시인들의 체험들, 즉 특정 사회적 그리고 역사적 형성기에서 삶을 살아낸 체험들은 이들이 각자의 시적 전통에서 독해되는 방식만큼이나 이들의 시적 주체성에 있어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하며, 이러한 체험의 영향은 이들 시에서 언어의 형식을 통해 등장한다. 각자 시인의 삶의 역사는 자신들의 시학적 실천만큼이나 자신에게 고유한 것이지만, 이것은 특정한 공통 그리고 일반적 경험이 있을 수 없다는 주장이 아니다 (대공황 시대라는 것이 공유될 수 있는 것처럼). 이러한 공통된 일반적 경험은 각자의 주체성과 작업에 큰 영향을 미치지만, 각 시인에 따라서 다른 방식으로 표현된다. 인종화된 시인의 경우, 그의 체험과 정신적 경험에 있어 매우 큰 부분은 이 세계에서 인종화된 주체로서 받아들여지고 움직이게 되는 것일 것이다. 미국 역사와 국가형성에서 인종과 인종화가 갖는 중요성을 생각해보면, 혹자는  백인이건 소수자이든 “미국” 시인들에게 있어 인종과 같은 매우 근본적인 사회정치적 사안을 지속적이고 오랫동안 무시해 가는 것은 심각한 누락의 행위와 다름없는 것이다. 

세계와 시적 텍스트 간 연결고리의 정확한 특성은 온전히 설명되기 힘들지라도, 이러한 관계가 오로지 개별 시 작품의 자세한 독해, 그리고 개별 시인과 그들의 텍스트가 갖는 시간적 공간적 위치성과 역사적 맥락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만 이루어 질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리영 리, 제럴드 스턴, 메이-메이 베르센브루게, 혹은 레즐리 스칼라피노 등, 누구의 시를 독해하건 간에, 독해자는 각 시인의 특정한 언어 사용과 그들을 둘러싼 사회정치적 환경이 갖는 특이성들과 미묘한 지점들에 아주 깊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사회정치적 환경의 (공통되거나 구분되는) 흔적들은 각 시인의 주체성에 스며들어 그들의 시 창작과 수용에 영향을 미친다.

이 점은 몇번 더 강조해도 모자르다. 인종이라는 개념—구체적으로는 인종적 주체성과 시의 형식 사이에 연결고리를 제시—을 아방가르드 문학을 둘러싼 비평적 논의로 끌고 들어오는 이는 분명 있지도 않은 연결고리를 만들어 낸다는 비판을 받을 리스크를 짊어지게 된다. 혹은, 인공적으로 인종의 문제를 “인종적 표식이 부재한” 문학에 “부과”함으로써, 인종적 정체성의 환원적이고 본질적인 관점을 몰래 반입시킨다는 비난을 받을 것이다.

예상되는 반론은 다음과 같다. “존 야오와 TS 엘리엇이 자신들의 시에서 안정적이고 투명한 주체성에 대한 개념을 문제시 한다면, 왜 야오의 문제제기만이 구체적으로 ‘아시아계 미국적’이거나 ‘중국계 미국적’으로 간주되야 하는가?” 이러한 반론은 야오와 엘리엇이 비슷한 시적 (그리고 형이상학적) 양상을 보이기 때문에, 이러한 양상은 형식적으로 그리고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잘못된 가정에 기인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엘리엇과 야오가 자신들의 시에서 하는 것을이 전혀 같은 것이 아니다. 그들의 인격, 주체성, 역사, 맥락 등등이 전혀 다른 점을 감안하면, 주체성을 불안정하게 하려는 그들의 목적은 서로 절대 같을 수가 없다. 그것에 따른 그들의 시 또한 절대 똑같지 않다. 

시적 주체성과 시적 실천은 상호교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엘리엇과 야오가 상호교체될 수 있다는 것은 야오와 탠 린이 상호교차될 수 있다는 주장만큼이나 틀리다. 슬프게도 우리가 가진 소수민족 미국인에 대한 개념은 우리로 하여금 이들을 하나의 추상적이고 단차원적이고 균질하고 상호교체될 수 있는 것들로 간주하게 하기 일쑤다.

야오와 엘리엇이 처음에는 주체에 대해 똑같은 접근을 취하고 있는 것 처럼 보이지만, 이러한 접근을 취하는 각자의 이유는 다른 맥락에서 기인하며, 이는 각자 자신들만의 역사, 주체성, 그리고 시적 목표에 기인한다.[각주:53] 그러므로, 야오가 강조하는 정체성의 불안정화가 그 자체로 “민족적”이거나 “중국계 미국적”이거나 필연적으로 중국계 미국인 주체들에게만 한정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것 또한 잘못된 것이다. 

인종화된 사람으로서의 야오의 경험이 갖는 다양하고 복잡한 구체적 요소들은 하나의 실천이나 “중국계 미국인”이라고 불리우는 어떤 것으로 물화될 수 없다. 하나의 단일하고 안정적인 아시아계 미국인 혹은 중국계 미국인 정체성이나 주체성이나 관점이나 시적 실천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소수민족 미국인의 주체성은 물건이나 소재가 아니다. 당연히 중국계 미국인이 나닌 다른 시인들, 예를 들면 TS 엘리엇 같은 이들 또한 주체성을 불안정화시킨다. 엘리엇이 자신이 시적으로 접근할 때 그렇게 하는 이유는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야오의 것과는 다르다. 

인종이라는 요소가 시가 관한 논의를 얼마나 비트는지, 얼마나 환원적이고 모순적이고 혼동적인 사유를 유발하는지, 인종의 사안을 제기하는 비평가들에게 증명에 대한 요구를 얼마나 많이 지우는지를 강조하기 위해서, 나는 다음의 두 사고실험을 제시한다.

첫번째로, 야오와 일레엇의 비교를 계속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사고실험에서는 야요의 소수자 시학에 요구되는 증명의 짐을 엘리엇의 정전적 시학에 지우며, 인종적 요소 대신 인종화되지 않은 경험 같은 외부요소를 통해 증명을 해 보는 것이다. 예를 들면 엘리엇이 경험했던 유럽의 세계2차대전 같은 것 말이다. 한 모더니즘 시 평론가가 <황무지The Wasteland>에서 등자하는 파편화된 주체성이나 끊어진 싯줄 등을 엘리엇의 전쟁 경험과 연결했다고 치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평론가에게 이러한 연결점에 대해 비난하며 끊임없는 증명을 요구할까? 이러한 외부적 요소로의 어필이 “텍스트와 상관없다”라며 저격당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엘리엇의 외부 경험과 그의 시 사이에의 연관성이 증명될 수 없으므로, 엘리엇의 전쟁경험이 <황무지>에서 나타나는 파편화된 싯줄 그리고 주체성에 끼치는 영향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반박할 비평가가 몇명이나 있을까?

이러한 실험을 더 밀어부쳐 보자. 다음과 같이 반박할 사람이 등장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존 야오도 똑같이 ‘겡기스 찬Genghis Chan’에서 주체성을 파편화하고 싯줄을 끊잖아요. 야오랑 엘리엇이 똑같은 걸 하는데, 야오는 전쟁중인 유럽에 살았던 적이 전혀 없으니, 엘리엇의 시집 <황무지>가 유럽 전쟁경험에 영향 받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지 않습니까? 그 경험이 이 시를 쓰는데 필수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예 영향이 없었다고 받아들이는 게 더 설득력 있지 않나요?”

두번째 사고실험이다. 아예 공식에서 인종을 배버린 다음 백인 시인과 소수자 시인이 아니라 두명의 백인 시인만을, 예를 들어 엘리엇과 슈타인을 비교해보자. 그리고 앞서 설명한 가상의 비평가가 똑같이 엘리엇의 유럽에서의 전쟁경험이 <황무지>의 형식에 영향을 줬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다른 모더니즘 시 비평가가 슈타인 또한 시적 주체성과 싯줄을 파편화시키는데 엘리엇이 유럽에서 경험했던 것과 똑같은 걸 경험하지 않았으니, 엘리엇의 전쟁경험은 “필연적으로” <황무지>의 싯줄에 영향일 미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아예 상관 없는 요소였다고 주장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이 책에서 펼치는 인종적 주체성과 시쓰기 사이의 상호작용에 관한 주장은 개개인의 시인(특히 소수자 시인)이 창작한 개별의 시에서 등장하는 언어사용과 구조에 대한 깊은 관찰에 핵심적으로 의존한다. 실천에 기반한 이 비판적 논증은 시 작품들이 그 자체로 이론적 방향을 제시한다고 간주하며, 인종적 주체성과 소수자 시집에 관한 주장들을 쉽게, 그리고 과다하게 단순화 (따라서 환원적이고 일차원적으로 만들어버리는)시켜 버리는 추상적인 일반화를 지양한다. 시—미국 문학의 모든 시—의 언어와 형식이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하는지 더 섬세하게 주목해보도록 하자.


  1. MLA와 이 조직의 회원권에 관한 내용은 http://www.mla.org/about 참조. [본문으로]
  2. “새로운 서정시 연구” PMLA 123 (2008): 181-234 [본문으로]
  3. 마조리 펄로프, “바뀌어야 합니다It Must Change”, PMLA 122.3 (2007): 655, 654. [본문으로]
  4. 예를 들어 버지니아 잭슨Virginia Jackson의 “누가 시를 읽는가?Who Reads Poetry?” PMLA 123.1 (2008): 181-7 그리고 딕킨슨의 불행: 서정적 독해 이론 (프린스턴대학 출판, 2005) 참조. [본문으로]
  5. 이 기고자들은 모두 문학연구, 그리고 시학연구에 큰 지분이 있기에 기고를 요청받았다. 그리고 이들 모두 엘리트 기관들, 버클리 소재 캘리포니아 주립대, 시카고대학교, 어바인 소재 캘리포니아 주립데, 터프츠 대학교, 미시간 주립대, 콜롬비아 대학교, 그리고 코넬 대학교에서 가르친다. [본문으로]
  6. 자동적으로 출간물을 받아보는 3만명의 회원들 말고도, 국내 그리고 국외의 다른 문학이나 언어학 교수들도 이 출간물을 읽는다. 가장 넓고 다양한 문학 분과들을 가로지르는 문학 학술지는 이것이 유일하다. [본문으로]
  7. 아이젠버그의 “Language Poetry and Collective Life”, Critical Inquiry 30.1 (2003): 132-59 참조. [본문으로]
  8. 거론되는 다른 여덞명의 작가들은 정전적 위치에 올라와 있으며 “주요”적으로 거론되는 이름들이다. 보를레르, 베켓, 카바피Cavafy, 딕킨슨, 프로스트, 레이니어Lanier, 멜빌, 톨스토이 등. (이들의 성만 가지고도 바로 알아볼 수 있다는 점이 그 증거다). 물론 19세기 운율체계 사용을 특징으로 프린스Prins가 언급하는 시드니 레이니어는 비주류 시인으로 간주되고 잭슨Jackson이 언급하는 멜빌은 시보다는 산문으로 더 유명한 케이스이기는 하다. 에밀리 딕킨슨만이 이 그룹에서 유일한 여성 시인이다. 21세기의 미국 시인으로서는 로버트 프로스트 (쿨러가 언급하는)가 유일하다. 그러므로, 지나치듯 거론되는 이 4명의 미국 시인들 중 두명 (멜빌과 레이니어)만이 랭스턴 휴즈나 아미리 바라카보다 시인으로서 더 중요한 인물들은 아니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다. 아니면 국제적으로 봤을 때 (여기 기고자들이 많이 그렇듯, 그리고 펄로프가 미국 문학 평론가들에게 그렇게 하라고 자주 혼내듯) 에이메 세제르와 비교할 때도 그럴 수도 있다. [본문으로]
  9. 주요하게 혹은 오로지 소수자 시집에 집중하는 시 평론가들은 굉장히 그 수가 적다. 가장 유명한 경우 앨던 닐슨Aldon Nielsen, 프레드 모텐Fred Moten, 네대니얼 맥키Nathaniel Mackey, 그리고 브렌트 에드워즈Brent Edwards가 되겠다. 이들 모두 아프리카계 미국인 혹은 아프리카 디아스포라 시에 대해 분석한다. 소수자 시를 분석하는 평론가 그룹군 사이에서, 형식적 요소에 집중하는 이들의 숫자는 더 적다. 미국에서 문화와 사회연구의 지위를 상승시켰던 레이먼드 윌리엄스 정도의 지위와 영향력을 가졌던 시 평론가는 여태껏 없었다. 윌리엄스는 영국 문화에서의 젠더와 인종의 중요성을 온전히 인식하지 못했다는 결점에도 불구하고 문학적 언어, 역사에 대한 깊은 지식, 그리고 사회정치학적 요소들과 구조들에 대한 날카로운 인식에 기반한 기분을 설립했다. [본문으로]
  10. 적지 않은 숫자의 문학자들이 문학이나 문학적 언어에 대해 굉장히 적은 관심도나 감정을 표하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내게 있어서는 혼란스러운 일이다. 이러한 비판에 있어서 아시아계 미국연구나 민족연구 학자들 또한 예외가 아니다. 문학적 예시들은 가끔 이론적인 주장의 액세서리처럼 취급되곤 하며, 이러한 주장들은 마치 그런 예시들이 딱히 필요 없는 것 같다. 도대체 그렇다면 왜 문학을 애초에 연구하나? 왜 문학대신 나가서 경제학이나 법학을 공부하지 그런가? 내 감에 의하면 이것은 영어 언어에 통할하고 문학 전통에 익숙해 지는 것이 미국인으로서의 완전한 동화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여겨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주민들, 그리고 이주민들의 자식들(나처럼), 특히 영구적으로 “외국인" 그리고 비-미국인 취급을 받는 아시아계 미국인들에게 있어서 “완전히 미국인 되기”를 위한 도구로서 문학평론의 길은 굉장히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마찬가지로 전 세대의 유대인 문학연구 학자들, 즉 해롤드 블룸Harold Bloom이나 스티븐 그린블랏Stephen Greenblatt등과 같은 경우도 포함된다. 물론 이들에게 있어서는 블룸이 얘기했던 “저명한 시인”을 연구하는 것, 즉 셰익스피어 등을 통해서만이 가능했다).재밌는 것은 민족이나 정체성을 시와 관련해서 의논하는 것을 지양하는 적지 않은 저명한 동시대 시 학자들이 이러한 특정 유럽 민족 출신의 자녀이거나 후손들이라는 점이다. (펄로프, 블룸, 알티에리 등). 마조리 펄로프의 The Vienna Paradox: A Memoir (뉴욕 뉴디렉션즈 출판사, 2004), 안토니오 바이스Antonio Weiss, “Harold Bloom: The Art of Criticism No. I”, Paris Review 33.118 (1991): 178, 232 참조. 스티븐 그린블랏, “The Inevitable Pit: Isn’t That a Jewish Name?” London Review of Books 22.18 (2000): 8-12 또한 참조. [본문으로]
  11. “The Claims of Rhetoric: Towards a Historical Poetics (1820–1900),” American Literary History 15.1 (2003): 15 참조. 또한 Poetry and Public Discourse in Nineteenth-Century America (New York: Palgrave Macmillan, 2010)도 참조. 파울 첼란에 관한 이전 기사에서, 울로스키는 “역사에 대한 저항은, 사회학적 맥락에서든 정치적 지향에서 기인하든, 그 자체로, 한스 매그너스 엔젠스버거가 경고하듯, 역사적 맥락에서 발생하는 역사적 현상이다.” “The Lyric, History, and the AvantGarde: Theorizing Paul Celan,” Poetics Today 22.3 (2001): 652 에서 발췌. [본문으로]
  12. 이러한 경향은 신비평New Criticism이 “시 자체”를 제외한 그 어느 것에도 어필하지 말라는 규칙을 반영하는 동시에 지속시킨다. 신비평주의를 지지하고 행하는 이들은, 우연찮게도 1920년의 적색공포 시절에 생겨나고 40년대 그리고 50년대 적색 공포 시절에 전성기를 구가했다. 신비평에 있어서 사회적인 것을 시의 독해에 사용하는 그 어떤 시도도 “프로파간다적”이라고 받아들여졌으며, 이는 자신이 “빨갱이 공산주의자”라고 선언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데리다와 푸코의 저작들이 갖는 정치적 의미에도 불구하고 해체주의와 다른 형태의 후기구조주의 이론들은 많은 시 평론가들이 시학적인것과 사회적인 것 사이의 분리에 대해 갖는 선입견을 바꾸는 데 기여한 것이 매우 적다) 텍스트 외부적인 것들(젠더, 계급, 환경)이 거론되는 것은 얼마든지 수용됨에도 불구하고, 인종만이 가장 강렬한 반응을 이끌어내는 단 하나의 사회적 사안으로 작용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이것은 아방가르드 시에 관해 글을 쓰는 이들과 좀 더 전통적 형식에 더 치우친 이들 둘 다에게 적용된다. 달리 말하자면, 시학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 사이의 구분은 “사회적인 것”이 인종적인 것을 의미할 때 더더욱 강하게 분리된다는 것이다. [본문으로]
  13. (이 부분은 한국어로 이미 번역된 게 있을 법한데… 혹시 문학평론 하시는 분 있으면 이 레이먼드 윌리엄스 구절 부분 번역된게 있나 확인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본문으로]
  14. 레이먼드 윌리엄스, Culture and Society: 1780–1950 (1958;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83), 30–31. 미학적인 것과 정치적인 요소를 엮는 많은 시 평론가들이 낭만주의자들이었거나 낭만주의자로 시작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제롬 맥간, 데이빗 심슨, 도널드 웨슬링, 수잔 울프슨 등) [본문으로]
  15. 다른 언어로 시를 쓰거나 다른 문학 전통에 기인하는 많은 시인들도 빼놓을 수 없다. 레파르디Leopardi, 보들레르, 패스터낙Pasternak, 마야코프스키Mayakovsky, 네루다, 세제르 등. [본문으로]
  16. 스티브 에반스Steve Evans, “Introduction to Writing from the New Coast,” in Telling It Slant: Avant-Garde Poetics of the 1990s, ed. Mark Wallace, Steven Marks (Tuscaloosa: University of Alabama Press, 2002), 13, 15. [본문으로]
  17. 찰스 번슈타인Charles Bernstein 또한 “다양성”의 공허한 주장을 비슷한 방식으로 꿰뚫는다. “도래하는 다양성의 공식 문화공간 내에서, 차이라는 것이 선택될 때는 그것이 서사화 될 때 지배문화의 기존의 형태로 바로 동화될 수 있는 방식—흡수될 수 있는 방식이 아니라—으로 서사화되기 때문이다” (“State of the Art,” A Poetics, 6). [본문으로]
  18. 케네스 골드스미스Kenneth Goldsmith, Uncreative Writing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2011). [본문으로]
  19. 인종과 시의 문제는 미국의 건국 시절부터 확인할 수 있다. 토마스 제퍼슨은 자신의 버지니아 주에 관한 노트들Notes on the State of Virginia (런던에서 1787년에 출판. 이 해는 미국 헌법이 도입된 해)에서 이렇게 서술한다. “불행이란 자주 시가 갖는 가장 강한 영향의 부모와도 같다. 흑인들 사이에서는, 이미 불행이 충분하다. 하지만 시는 없다. 사랑은 시인이 가진 가장 특이한 열기이다. 그들의 사랑은 뜨겁지만, 오로지 감각만을 불피울 뿐, 상상력을 불피우지는 않는다. 종교는 사실 필리스 휘틀리(원본에서 Phyllis Whately라고 이름을 잘못 표기함)를 있게 했다. 하지만 시인을 있게 하지는 못했다. 그녀의 이름으로 출판된 작업들은 비평이라는 명예가 어울리지 않는다. 헤라클레스와 우인열전을 쓴 시인 사이의 관계가, 우인 열전의 영웅들과 그녀 사이의 관계와 똑같다. …흑인들의 심신의 발달은 처음 그들이 백인들과 섞이면서 가능했다. 이는 모두에게 의해 관찰되었고 그들의 열등감이 단지 그들의 삶의 환경에 의한 것이 아님을 증명했다. (14장, “법률The Laws”).. 제퍼슨이 상정하고 있는 이분법들을 주목하자. Thomas Jefferson: Writings: Autobiography / Notes on the State of Virginia / Public and Private Papers / Addresses / Letters, ed. Merrill D. Peterson (New York: Library of America, 1984), 266–67. [본문으로]
  20. PMLA의 아홉명의 평론가들 중 여섯 명이 주로 미국 시인들에 대해 연구한다. 에드워즈, 아이젠버그, 잭슨, 카우프만, 펄로프, 그리고 프린스가 그들이다. 테라다와 쿨러는 문학 이론에 관해 작업하긴 하지만, 둘 다 미국 시인들을 자신들의 기고문에서 거론한다. 구르구리스는 이론과 그리스 문학에 대해 작업한다. [본문으로]
  21. 예를 들어, 폴린 마이어Pauline Maier의 American Scripture: The Making of the Declaration of Independence (New York: Vintage Books, 1997)를 참고하라. [본문으로]
  22. 찰스 번슈타인은 “시는 인식론적으로 탐구로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Artifice of Absorption” 17-8) [본문으로]
  23. “The Finger,” Selected Poems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6), 131. [본문으로]
  24. 문학적 형식들은 그들 자체로 영구적이고 보편적이며 역사 밖의 존재로서 상정되는 경우도 있다. [본문으로]
  25. 제퍼슨, 버지니아 주에 관한 노트들, 267. [본문으로]
  26. 일레인 쇼월터Elaine Showalter, Teaching Literature (Malden, MA: Blackwell, 2003), 23. [본문으로]
  27. 질 낮은 모방적 방법의 소수자 “정체성” 문학 독해에서 좀 더 지적이고 혁명적인 이론의 양상으로 이르는 쇼얼터의 진화론적인 서사는 구르구리스의 에덴 추방서사(이론중심적인 문학비평 방법론에서 조심성없는 정체성-정치적 접근으로 추락한 것에 대한 자기성찰)의 거울 이미지 같이 읽힌다. [본문으로]
  28. 줄리아나 챙의 Quiet Fire: A Historical Anthology of Asian American Poetry, 1892–1970 (New York: Asian American Writers’ Workshop, 1996) 참조. [본문으로]
  29. 티모시 유의 Race and the Avant-Garde 3장인 “Inventing a Culture: Asian American Poetry in the 1970s” 73–99 참조. [본문으로]
  30. 도널드 웨슬링Donald Wesling, Bakhtin and the Social Moorings of Poetry (Lewisburg, PA: Bucknell University Press, 2003) 참조. [본문으로]
  31. 흑색 갈색 혹은 황색 피부가 기표, 즉 형식적 상징으로서 읽힐지라도,이는 항상 정해진 소재로서, 정적인 본질로서 고정되어 있다. [본문으로]
  32. 예를 들어 나탈리아 세사이어Natalia Cecire의 “Sentimental Spaces: On Mei-mei Berssenbrugge’s ‘Nest,’” Jacket2, 23 May 2011, https://jacket2.org/article/sentimental-spaces; 제니퍼 스캐페톤Jennifer Scappettone의 “Versus Seamlessness: Architectonics of Pseudocomplicity in Tan Lin’s Ambient Poetics,” boundary 2 36.3 (2009): 63–76; 찰스 알티에리Charles Altieri의 “Intimacy and Experiment in Mei-mei Berssenbrugge’s Poetry,” We Who Love to Be Astonished: Experimental Women’s Writing and Performance Poetics, ed. Laura Hinton, Cynthia Hogue (Tuscaloosa: University of Alabama Press, 2002), 54–68; 린다 보리스Linda Voris의 “A ‘Sensitive Empiricism’: Berssenbrugge’s Phenomenological Investigations,” American Women Poets in the 21st Century: Where Lyric Meets Language, ed. Claudia Rankine, Juliana Spahr (Middletown, CT: Wesleyan University Press, 2002), 68–93 를 참조. [본문으로]
  33. 찰스 번슈타인은 “소재는 의미와 동일한 것이 아니다”라고 상기한다. (“Artifice of Absorption,” 10). [본문으로]
  34. 할란Harlan은 “하지만, 이 지위의 문제로 인해, 중국인이 미국의 백인과 동등한 좌석에 앉을 수 있게 되지만, 루이지애나의 흑인 시민은 연방의 수호를 위해 자신들의 삶을 걸었었고, 법으로 인해 국가의 정치 통제에 참여할 수 있으며, 법이나 자신들의 인종에 기인한 그 어떤 이유에서도 어떠한 공공 장소에서 백인들이 가질 모든 법적 권한을 가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백인과 같은 좌석에 앉을 경우 범죄자로서, 구속될 수 있는 위치에 놓인다. Plessy v. Ferguson, 163 U.S. 537 (1896). [본문으로]
  35. 또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경우, “표준” 영어가 되겠다. [본문으로]
  36. 우리가 다 인지하듯 모든 억양이 동등하지 않다. 영국 그리고 프랑스 억양은 보너스를 얻지만, 중국이나 멕시코 억양은 부끄러움의 표식으로 기능하며 사용자를 평가절하하게 만든다. [본문으로]
  37. 헨리 데이빗 소로와도 같은 반순응주의자(미국의 대표적인 독립적 사유자이자 자유의 영혼)조차 자신의 시민 불복종에 관한 에세이 “Resistance to Civil Government”(1894)에서 아시아인들이 자신으로부터 완전한 외국인 집단의 표본으로 인용한다 (이는 암묵적으로 다른 미국인들로부터도 마찬가지라는 걸 의미한다). 콩코드의 주민들의 행동을 겁쟁이이고, 수동적이고, 집단 순응적이라고 비판하며, 그는 이렇게 적는다. “그들의 편견과 미신으로 인해 나와는 굉장히 다른 인종이 있었음을 발견했다. 이들은 중국인과 말레이 사람들이었다.” 월든(1854)에서 도 그는 “조나단” (19세기 버전의 미국판 평범남) 과 “천상의 제국의 여성화된 원주민들”에 대해 서술하는데, 이 “원주민들의 이름을 아는 것만으로도 조나단은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라고 한다. 헨리 데이빗 소로, Walden and Civil Disobedience (New York: Penguin 1986) 406, 79–80. [본문으로]
  38. 악몽과도 같은 “아시아 떼거지”의 형상과 황인공포증은 미국과 유럽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서도 발견되며, 오늘날, 21세기가 시작된지 20년이 다 되가는 지금에도 중국이 마치 현대의 징기스칸마냥 세계를 “위협하며” “지배하려 든다”고 여겨진다. [본문으로]
  39. 이는 단지 교육을 덜받고 “무식한” 사람들의 경우만이 아니다. 한 아이비리그 학교 철학과 교수가 내게 영어가 모국어냐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이는 물론 그가 나의 완벽한 미국인 억양을 들은 후였고, 내가 영문과 교수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던진 질문이었다.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그는 자신의 (수사적) 질문에 자기가 대답하였다. “아닐 것 같은데요.” [본문으로]
  40. 이 단어는 필리핀에서 벌어진 미국의 제국주의적 전쟁에서 생겨난 단어이며, 이후에 일본, 한국, 그리고 베트남과의 전쟁에서 다양한 아시아인 “적들”을 지칭하는 데 쓰여왔다. 베트남 전쟁 당시에, “mere-gook rule그저 gook 규칙”(MGR; 역주: 당시 베트남 민간인을 죽여도 단지 베트남인이기 때문에 처벌을 낮게 받았던 암묵적인 상황을 지칭)이 미국 군대에 의해 행해졌다. 이때 탐사저널리즘 기자였던 닉 터스Nick Turse에 따르면, MGR은 “베트남인들은 모두 인간 그 이하의 것이라는 개념이었다… 이 개념에 의하면 베트남인들은 남북, 노소, 그리고 무장한 적이든 무고한 시민이든 상관없이 그저 동물보다 조금 더한 존재일 뿐이고 맘대로 죽이거나 학대할 수 있는 대상일 뿐이었다.” 닉 터스, Kill Anything That Moves: The Real American War in Vietnam (New York: Metropolitan Books–Henry Holt, 2013), 50. 당시 사령관 웨스트모어랜드는 74년도 영화 Hearts and Minds의 감독 피터 데이비스에게 “이 오리엔탈들의 생명은 서구인의 생명과 다른 값어치를 지닌다. 인구가 많은 동양에는 삶이 싸구려가 된다”라고 말한다. 같은 출처, 50쪽. [본문으로]
  41. 에드워드 사이드는 “권력과 권위의 현실들, 제도와 권위와 정통성에 대항해 남자, 여자, 그리고 사회운동이 행하는 저항들은 텍스트를 가능하게 하는 현실들이며, 이 텍스트들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현실들, 그리고 비평가들의 이목을 끌게 하는 현실들이다”라고 서술한다. (WTC, 5) [본문으로]
  42. 캐시 송, Picture Bride (New Haven, CT: Yale University Press, 1983), x. “오리엔탈” 정신성, 무한한 인내력, 그리고 영원히 고통받는 능력에 관한 스테레오타입은 웨스트모어랜드의 끔찍한 관점에 비해서 조금은 더 나아보일지라도 실제 아시아인 그리고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생명을 1차원적 혹은 2차원적으로 만들어버리는 기능을 수행한다. 예를 들어 제인 이와무라Jane Iwamura의 Virtual Orientalism: Asian Religions and American Popular Culture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11)을 참조하라. [본문으로]
  43. 2011년 2월 27일 개인 이메일에서 발췌. [본문으로]
  44. 리고베르토 곤잘레스Rigoberto González, “Shout Out to Ken Chen,” http://www.poet- ryfoundation.org/harriet/2010/04/shout-out-to-ken-chen/; 켄 첸Ken Chen, Juvenilia (New Haven, CT: Yale University Press, 2010). [본문으로]
  45. 예를 들어 찰스 알티에리Charles Altieri, “Images of Form Vs. Images of Content in Contemporary Asian American Poetry,” Qui Parle 9.1 (1995): 71–91 를 참조하라. 알티에리는 메릴린 친의 작업을 그의 “소재의 이미지”를 통해 존 야오의 “형식의 이미지”와 좋지 않은 방식으로 비교한다 [본문으로]
  46. 첸의 리뷰에서 발췌. http://www.publishersweekly.com/978-0–300-16008-6. 리뷰어는 적어도 첸의 언어 사용에 대해 주목하지는 하지만, 나는 고전적인 중국 시인들 (이미 죽은지 오래된 “위대한” 작가들)이 “미국 이주민 삶”의 일상과 배치되어 있다는 것을 간과하기가 어렵다. 인종과 동시대 미국 사회의 현실들은, 여기서 보이는 것처럼, 왕 웨이나 리 유처럼 매력적이지가 않다. [본문으로]
  47. 해리엣 물렌, “Poetry and Identity,” in Wallace and Marks, Telling It Slant, 27–31. 인용문은 31쪽. [본문으로]
  48. 그러므로, 예를 들어 메릴린 친 같은 시인이 고전적 중국시 형식을 아시아계 미국인 시로 들여오는 것은 “실험적”이라고 칭해지지 않는다. [본문으로]
  49. 메이-메이 베르센브루게Mei-mei Berssenbrugge, Empathy (Barrytown, NY: Station Hill Press, 1989). [본문으로]
  50. 그리하여, 나는 러시아 형식주의 비평가 보리스 M. 아이헨바움Boris M. Ejxenbaum이 “문학은 다른 구체적인 사물들의 질서들과 마찬가지로 다른 질서에 복속된 사실들로부터 생성된 게 아니고 따라서 그러한 사실들로 환원될 수도 없다”라고 한 것에 동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관찰은 다른 질서에 복속된 사실들이 영향력을 발휘하는 현실을 중화시키지도 못한다고 생각한다. 보리스 M 아이헨바움Boris M. Ejxenbaum, “Literary Environment,” Readings in Russian Poetics: Formalist and Structuralist Views, ed. Ladislav Matejka, Krystyna Pomorska (1971; Normal, IL: Dalkey Archive Press, 2002), 61. [본문으로]
  51. 파울 첼란Paul Celan, “Speech on the Occasion of Receiving the Literature Prize of the Free Hanseatic City of Bremen,” 로즈마리 월드롭Rosemarie Waldrop 역, Paul Celan: Collected Prose (Riverdale-on-Hudson, NY: Sheep Meadow Press, 1986), 34. [본문으로]
  52. 누구든 당연히 시대적 구분이나 국가적 구분, 혹은 젠더나 인종에 기인한 문학적 프레임이 갖는 논리와 일관성에 관해 논할 수 있겠지만, “아시아계 미국 문학”이 다른 범주들보다 더 일관성 없고 인위적으로 구성된 범주라고 비난할 수 없다. 내 주장에 약간의 역설이 있는 건 이해한다. 비문학적 범주인 “아시아계 미국인”이라는 것으로 묶인 텍스트들의 형식적이고 미학적인 요소들을 조명하는 것에서 생기는 역설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역설은 “복고 드라마”나 “남부 문학”등을 연구하는 문학연구자들이 직면해야 할 그것보다 덜 역설적이지도 더 역설적이지도 않다. 그들 또한 미학적 스타일, 형식적 특이성들, 그리고 좀 더 넓은 범주가 갖는 기준 사이에의 긴장 관계와 자주 맞닥뜨리게 된다. 그들의 경우는 시간대 혹은 지역대가 되겠다. [본문으로]
  53. 한 시인의 속세적 경험 (마사츄셋주의 브루클린에서 상하이 출신 이민자의 아들인 중국계 미국인으로 자란 야오의 경험)이 그의 시적 텍스트에 영향을 끼친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 시를 그 하나의 텍스트 외적요소로 “환원”하는 것이 절대 아니며, 그 한 요소가 어느 특정 형식적 특징을 야기하는 단 하나의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