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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시 박 홍Cathy Park Hong, 증언에 반反하여Against Witness

증언에 반反하여

 

 

 

캐시 박 홍

 

 

 

 

 

더 많은 작가들과 예술가들이 인터넷 독/시청자를 염두에 두고 자신들의 작업을 맞춰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대범하고 보정되지 않은 색깔을 이용해 트렌디한 추상회화를 만드는 그림쟁이들은, 이 그림들이 인스타그램에서 보여지건 갤러리에서 보여지건, 무언가를 더 잃거나 얻을 일이 없다. 온라인에서 이 그림들은 소파 색상 선택지만큼이나 쉽게 파악되며, 이는 실제로 작품을 경험하기엔 너무 바쁜 콜렉터들에게 있어 최적이다. 비슷하게, 글쟁이들 또한 의도가 분명한 압축방식을 통해 글을 쓰는 이들이 있다. 이 작가들은 자신들의 문장들이 원자 단위로 분해되어 트윗으로 사용될 것을, 그리고 자족적이고 끊임없이 링크될 수 있는 파편으로 갈려질 것임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도리스 살세도Doris Salcedo는 이러한 예술가가 아니다. 그는 이러한 디지털 생산시대를 굳건히 저항하는 설치물들을 만든다. 설치예술은 몰입적이고 체감적인 경험을 제공하며, 단지 시각적인 것만이 아니라 공간적인 것, 그리고 아우라적인 것을 포함한 우리 지각의 모든 면을 활용한다. 작품을 진정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직접 그 공간에 있어봐야 한다. 설치 작품들은 발터 벤야민의 유명한 아우라의 개념을 뿜어내는, 의식화된 종교 비스무리한 경험을 줄 수도 있다. 기념비를 설립할 때 필요할 법한 굉장한 양의 노동이 투입된 설치미술의 경우, 무언가 꼴사납고 퇴폐적인 느낌이 들 법도 하다. 이는 설치 미술품의 시간성 때문이다. 그 곳에 영원히 설치되어 있을 수 없으니, 낭비적이지 않을 수 없다.

 

살세도의 조각물들은 반反 기념비적이다. 그는 나무 옷장, 의자, 걸상, 테이블 같은 값싼 가정용 가구들을 전시 공간에 걸쳐 조금씩 배열해 두었다. 파울 첼란의 작업에서 영감을 얻은 그는 자신의 작업 제목들에서 반복적으로 첼란의 시를 인용한다. <반反대지: 입에서 들리는 쉬볼렛Unland: audible in the mouth, Shibboleth>이라던지, <반反대지: 고아의 윗도리Unland: the orphan’s tunic> 이라던지. 전시의 오브제는 모두 실제로 쓰던 것들이며, 이들을 다루었고, 이들에 기대었고, 이들 위에 앉았던 육체들에 의해 비벼지고 닳은 것들이다. 의자는 분리되어 길고 좁은 문짝과 합쳐졌고, 식탁은 같은 세트의 의자들이 벗겨내어짐과 함께 원래 사용환경으로부터 찢겨져 나가, 마치 시체를 올려두는 탁상을 연상시킨다. 이 가구들은 폐허이며 지하묘지와도 같다. 부어진 콘크리트가 감싸고 있는 의자는 마치 해저 깊은 바닥에 잠겨 꺼진 듯하다. 뒤집혀져 있어 부서질 듯한 신생아용 침대는 화산 폭발이나 화재로부터 구조된 듯 보인다. 하지만 오브제의 표면들은 전부 살세도의 손을 거쳤다. 탁상 표면은 손상되고 긁혀있고, 마치 수수께끼같은 사자死者의 흔적마냥 사람 머리카락으로 얽혀져 있다.

 

살세도의 설치물들은 친근하면서도 섬뜩uncanny하다고 이야기된다. 이러한 특징은 작업을 직접 봐야 느낄 수 있는 것들이다. 이 두 특징 모두 근접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섬뜩함the uncanny을 통한 공간으로부터의 거리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애초에 그 공간 안으로 들어가 있어야 한다. 독일어로, 섬뜩함uncanny은 “운하임리히unheimlich”인데, 이를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집 같지 않음unhomely”이 된다. 섬뜩함을 느낀다는 것은 데자뷰를 느끼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데자뷰의 경우, 우리는 낯선 환경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친숙한 무언가가 섬광같이 번뜩 떠오른다. 거꾸로, 우리가 자신의 집에 있을 때, 갑작스레 “지금 이곳은 나의 아름다운 집이 아니야”라는 끔찍한 불안감이 드는 경우가 섬뜩함이다. 프로이트는 섬광같이 번뜩 떠오르는 친숙함은 억압된 자신의 과거로 돌아가는 것을 뜻한다고 말한다. 이는 칸트의 숭고 개념과 정 반대되는 것이다. 숭고의 경우, 당사자가 솟구치는 쾌락을 느끼게 되는 반면, 섬뜩함은 불안감을 일으키며, 당사자 자신의 피부 안쪽으로부터 불편함을 느낀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섬뜩함이라는 것은 생매장 당하는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또한 섬뜩함이란, 프로이트에 의하면, “눈을 강탈당하는” 느낌과 같다.

 

 

 

살세도는 자신을 “2차적 증인”이라고 명명한다. 그는 1988년의 라 네그라와 라 혼듀라스 바나나 농장 학살 사건에 대한 조각을 만들었다. 이 학살에서, 농장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침대에서 끌려나와 가족이 보는 앞에서 사살당했다. 살세도는 자신의 어머니가 살해당하는 것을 목격한 여섯살배기 고아가 어머니가 자신을 위해 짜준 옷을 매일매일 입고 있다는 이야기에 대한 조각을 만들었다. 살세도는 자신이 태어난 콜롬비아의 시골 지역을 훝으며, 마약거래상들과 극우 무장세력 간의 지속되는 폭력사태로 인해 가족들이 “사라진” 피해자들을 찾아 나서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다른 피해자의 고통을 재현하는 예술작업을 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가시돋친 길을 걷는 것이나 다름없다. 수전 손택은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고통 속의 육체를 보여주는 사진을 향한 갈증은 알몸을 보여주는 사진을 향한 욕망과도 같이 간절하다.” 고통의 이미지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경악을 일으키며 관람자와 피해자 사이의 환영적인 동일시, 혹은 “증인 환상”을 유도한다. 그 뒤, 관람자들은 다시 편리하게 일상으로 재투입되고, 타인의 트라우마는 나의 카타르시스로 변환된다. 

 

하지만 살세도는 피비린내를 향한 우리의 갈증을 거부하며, 사실성verisimilitude을 향한 그 어떤 시도 또한 거부한다. 그의 작업에서 부재한 것은 고통받는 육체들이다. 비극은 소비 가능한 서사나 손쉬운, 캐치한 이미지로 치환되지 않았다. 그의 작업에는 칙칙한 제약, 즉 침묵이 존재한다. 그가 수집한 이야기들은 재현될 수 없다. 살세도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난 나의 작업을 비가시성으로 구성했다. 비시각적인 것은 힘 없는 이들을 상징한다고 난 생각한다. 본다는 것은 권력을 점유하는 일이다. 본다는 것은 소유의 방식이다.”


살세도의 작업처럼, 첼란의 시집들 역시 “증언 행위”으로서 특징지어진다. 이러한 특징은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 모든 시는 증언한다. 증언의 대상이 자신의 일상에 관한—영화관에 가거나, 아이스박스에서 자두를 훔치거나 하는—것일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그 중 신성화되는 것은 예외적으로 어두웠던 시절에 대한 증언을 서약하는 시이다. 이러한 시들은 가시적이고 집단적인 트라우마가 존재했던 순간을 박제한다. 많은 경우, 시인은 지리적으로 떨어진 곳에서 일어났던 재앙적인 사건들(증인 시인으로서 분류되는 시인들 중 적지 않은 숫자가 동유럽인이다)이나 이미 과거 문헌들의 두미頭眉를 장식한 적이 있는 사건들에 대해 증언한다. 이러한 사건들이 경제적 불평등과 같은 고질적인 시스템적 문제인 경우는 매우 드물다. 증언으로서의 시를 둘러싼 비판적 수용양상은 윤리적 진정성으로 가득 차있다. 시는 생존에 관한 것이다, 시는 무지와 싸운다, 시는 희망을 불러 일으킨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시는 기억한다.

 

하지만 시가 기억하는 것으로 충분한가? 우리는 오늘날 토탈 리콜(total recall; 완전한 기억)의 시대에 단단히 자리하고 있다. 안드레아스 후이센Andreas Huyssen은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모든것은 클라우드에 저장된다. 세상에는 끝없는 기억력이 존재한다. 아카이브의 관점에서 볼 때, 망각이야말로 궁극적인 범죄행위이다.” 후이센에 의하면, 우리는 기억 비대증 환자들이다. 비욘세가 자신의 삶을 매 분 기록하듯, 우리들 또한 엄청난 양의 아카이브를 축적하였고, 이러한 아카이브는 너무나도 촘촘한 나머지, 리얼 타임real time이 현재의 시간을 삼키고 있다. 그렇다면 왜, 기억이야말로 가장 번창하는 산업인 오늘날, 살아있는 아카이브로서의 시집을 신성화하는가?  재해가 일어난 뒤 몇초만에 직접적인 목격자들의 증언과 사진과 비디오들이 트윗되는 시대에, 증언으로서 시가 가진 힘이란 것은 시대에 뒤쳐진 것, 그리고 본질적으로 수동적인 것처럼 느껴지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이렇게 느끼는 이유는 아마도 증언이라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무기력하게 보이는 시대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법관이 마이클 브라운 살해사건을 검토할 때, 64명의 증인들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대법관은 경찰관 데런 윌슨을 구형하는 데 실패했다. 에릭 가너의 경우, 그의 생명에 치명적 영향을 가한, 경찰이 그를 질식시켰다는 증거가 핸드폰으로 녹화되어 있었다. 뉴욕 데일리 뉴스New York Daily News와의 인터뷰에서, 가너의 미망인은 이 녹화영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대법관은 증인들을 계속 심문했지만, 애초에 증인은 필요하지도 않았어요. 당신이라도 직접 증언할 수 있어요.” 우리 모두 증인이었다. 우리 모두 보았다. 하지만 검사들이 증거를 일부러 제대로 다루지 않고, 법관들의 판단력을 흐리게 할 수 있는 경우, 멋대로 폭력을 행사하는 경찰관을 기소하는 일이 불가능하도록 만든 “법”(Law; 대문자 L)에 증거가 반反할 경우, 증언이 할 수 있는 것은 매우 적다. 판결이 나왔을 때, 우리는 자신들의 눈이 강탈당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첼란의 생전, 비평가들은 그의 “죽음의 푸가”를 반박의 여지 없이 홀로코스트를 증언하는 시라고 찬양했다. 그가 쓴 모든 시들 중에서, “죽음의 푸가”야말로 낭송적인 힘을 가지고 죽음의 수용소와 참혹함을 매우 분명하게 암시하고 있었으며, 이로 인해 가장 많은 시선집에 등장했고 가장 많이 인용되었다. 그의 시집이 점점 더 독창적으로 변해가면서, 문법은 더욱 울퉁불퉁하게, 심상은 더욱 괴물적이고 광물학적으로 되어갔고, 음절들은 더 많은 신조어들을 만들어내는 데 쓰여갔다. 그러는 사이, 첼란은 자신의 “죽음의 푸가”를 끔찍하게 싫어하게 되었다. “죽음의 푸가”는 그를 끊임없이 괴롭혔고, 그의 다른 저작들에 긴 그림자를 드리웠으며, 첼란은 유대인의 홀로코스트 시학의 대변인이 되어가는 것을 두려워 한 나머지, 후에 자신의 “죽음의 푸가”가 더이상 선집에 실리게 되는 것을 거부했다고 한다. 그러는 와중에 “죽음의 푸가”는 독일인들의 집착 대상이 되었고, 기념 행사에서 고정 패널로 자리하게 되었다. 학자 시드라 드코븐 에즈라이Sidra DeKoven Ezrahi는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어떤 승화적 차원에서, 독일인들은 이 시를 알게 되었고…텍스트의 원래 의도와는 다르게, 매우 이른 단계부터 기념 행사 때 치뤄야 할 의례적 관습이 되었다.

 

 

 

“죽음의 푸가”를 낭독하는 것은, 기억의 행위라기보다는 어려운 과거와 제대로 씨름하는 일을 회피하게 해주는 일종의 만트라로서 작용하게 되었다. 하지만 시가 기념비가 된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의미를 전부 빨려버린 경건한 몸짓이 되는 것이다. 시가 기념비가 되는 순간, 시는 죽는다.

 

 

 

네가 어떤 말을 하던지—

 

너는 파괴의 

 

덕을 입고 있다.[각주:1]

 

첼란은 그저 증인으로서의 시인이 아니었다. 첼란은 선구자적인 시인이었고 복수심에 불타는 시인이었다. <Breathturn into Timestead: The Collected Later Poetry>이라는 인상적인 첼란 번역을 집필한 피에르 조리스는 첼란의 시가 어떻게 “시 안에서 그리고 시를 통해서 새롭고 가능한 세계”를 창조하는지에 대해 서술한다. 조리스는 또한 우리가 첼란의 시를 “복수놀이”로 제한시키지 말 것을 경고하지만, 나는 이것을 제한 행위라고 보지 않는다. 증언의 예술처럼, 복수의 예술 또한 자기만의 장르가 될 수 있다 (김혜순Kim Hyesoon, 카라 워커Kara Walker, 그리고 더디 벨라미Dodie Bellamy를 보라). 첼란은 니체가 원한(ressentiment; 르상티망)이라고 부른 것, 즉 노예의 슬픔, 피해망상, 그리고 불복종적인 감각으로 가득 차 있었고, 이를 풍부한 창작의 동력으로 변환시켰다. 이러한 문학이야말로 제도권이 자신들의 죄를 씻어내기 위해 사용하는, 신성시되고 성역화된 시에 저항하는 생혈의 문학이다. 시는 과거의 순간을 보존하고, 과거의 꼭두각시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하고, 증언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생존과 극복이라는 덕망을 칭찬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시인이 결국 극복하지 못하면 어떡한단 말인가? 증언에 증언이 이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똑같이 씁쓸한 판결문을 들은 시인은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그리고 만약에 시인이 아직도 증오의 그림자를 감지하고—이것은 용서의 형태로서 문학에서 편안함을 찾는 독자들을 밀쳐내는 궁극적인 감정적 침범행위이다—이 증오가 노래를 부숴 흉측하게 만드는 것일 경우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하지만 보라. 떨쳐낼 수 없는 회한을 직접 대면하는 방법은 노래를 흉측하게 망가뜨리는 행위를 통해서다. 첼란은 독일어에 있어서는 사디스트와도 같았다. 알맹이를 찾아내기 위한 그의 시도 속에서 이 언어는 계속 갈려나갔고, 갈려나간 껍질 속에서 그는 제3의 언어를 창조했다.

 

 

 

검정

 

기억의 상처로서

 

눈은 너를 위해 파낸다

 

심장-이빨로 인해 밝게

 

깨물려진 이 땅.[각주:2]

 

 

 

그는 부정negation에서 비롯한 글을 썼고 “영원한 무장소eternalized Nowhere/geewigten Nirgends”로부터 글을 썼으며, “무명no name/keinen Namen”의 정체성 아래에서 글을 썼다. 증언은 수많은 음성 조각들로 쪼개져 발췌되고 변형될 수 있으니 증언은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첼란은 반박했다. 그의 언어는 환원불가능하다. 바위이고 잿더미다. 적의 음절을 빈 탄피가 될 때까지 찢어내는 소리없는 울부짖음이다.

 

 

 

아무도

 

증인을

 

위해 증언하지 않는다.[각주:3]

 

 

 

기억에 형태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망각이 필수적이다. 첼란의 시처럼, 살세도의 조각물들은 침묵의 도화선에 불을 붙인다. 그의 설치물들은 지각의 속도를 느려지게 한다. 이 작업은 나로 하여금 그 공간에 직접 있기를, 나의 신체를 통해 보게끔 요구한다. 그리하여 문화산업이 시간과 공간을 클라우드로 휩쓸어 버림으로써 쓸모 없어져 버린 지각방식을 다시 사용하기를 요구한다. 나, 즉 관람자의 실제적 존재는, 너, 즉 타자의 부재를 진실하게 파악하기 위해 필요하다. 폐허가 된 가정은 무장소nowhere로부터, 무인no one으로부터 표류해 왔다. 나는 당신의 의자에 앉을 수도, 당신의 식탁에서 식사를 할 수도 없다. 당신의 옷장을 열고 당신의 셔츠를 만져도, 춤이나 밤산책을 담은 사진마냥 선명한 기억이 떠오르지도 않는다. 나와 당신 사이의 거리는 무한이다. (그리고, 증인으로서 글을 쓰기 위해서는 어떤 종류의 거리가 필요할까? 직접 사건을 겪어야만 할까? 관련 영상을 보고 나서 쓸 수 있는걸까? 피해자와 어떤 식으로든 연관이 있어야 할까? 그리고 여기서 연관이란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 당신이 겪은 일을 나는 절대 소화해낼 수 없겠지만, 불안을 불러일으키는 당신의 슬픔, 고독의 짐으로부터 만큼은 빠져나올 수가 없다. 내가 이 공간을 떠나면 그것은 어떻게 펼쳐질까. 당신은 어떻게 된걸까? 당신이 마음 속으로 생각한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원문: https://www.poetryfoundation.org/poetrymagazine/articles/70218/against-witness

이 번역에 달린 모든 각주는 역주입니다.


 

  1. 파울 첼란, "네가 어떤 돌을 들던지" [본문으로]
  2. 독일어 원시 (Schwarz): Schwarz, wie die Erinnerungswunde, wiihlen die Augen nach dir in dem von Herzzahnen hellgebissenen Kronland, das unser Bett bleibt: durch diesen Schacht mufit du kommen— du kommst. Im Samensinn sternt dich das Meer aus, zuinnerst, fur immer. Das Namengeben hat ein Ende, liber dich werf ich mein Schicksal. [본문으로]
  3. 독일어 원시 (Aschenglorie): Das vor euch, vom Osten her, Hingewiirfelte, furchtbar. Niemand zeugt fur den Zeugen.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