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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글라스 크림프Douglas Crimp, 애도와 투쟁성Mourning and Militancy (1989)

*본 번역문은 그림프의 에이즈/퀴어 정치학 선집인 <Melancholia and Moralism> (2002)에 수록된 버전을 참고한 것입니다. 원문은 더글라스 크림프가 자신보다 스무 살 아래인, 88년 HIV 감염판정을 받았던 동료 예술가 그렉 보르도위츠Gregg Bordowitz를 위해 썼다고 합니다. 그렉은 제가 다니던 모교의 교수님으로 아직도 잘 살아 계시지만, 더글라스 크림프는 2019년 7월5일 다발성 골수종으로 세상을 떴습니다.

 

원문: 

crimp_mourningmilitancy.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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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공포증 전치Displacing Homophobia"를 주제로 한 <계간 남대서양(South Atlantic Quarterly)> 특별호에 수록된 기고문에서 리 에델만Lee Edelman은 데리다적 해체주의에 의거한 교훈을 에이즈 운동권 슬로건인 침묵=죽음(SILENCE=DEATH)에 적용시킨다. 우리의 슬로건이 선동적인 수사에 맞서 결집할 팩트의 담론의 필요성을 제기한다고 주장하면서, 에델만은 이러한 공식이 무의식적으로 수사figure로서의 문자적인 것the literal을 생산하며, 이로 인해 서구 담론의 이분법적 논리에 연루된 지점을 저버리게 된다고 결론내린다.

 

"침묵=죽음과 같은 슬로건에서 나타나는 문자성을 향한 방어적 어필은 특정 지식의 피난처에 대한 필요와 요구의 '수사figure'로서의 문자적인 것을 생산해야 하기 때문에, 이러한 담론은 항상 필연적으로, 위험할 정도로 오염된 방어논리와 다름없다. 데리다적 은유 논리에 의해 오염된 나머지, 수사성을 뛰어넘은 자연적 혹은 문자적 담론을 이루려는 시도는 물화된 (그리고 위협받는) 의심쩍은 정체성을 재생산하도록 되며, 받아쳐야 할 반동적인 의학적 그리고 정치적 담론과 오히려 닮게 된다. 그리하여 침묵=죽음의 담론적인 논리는 문자적인 것과 수사적인 것, 올바른 것과 올바르지 않은 것, 내부와 외부 사이의 이념적으로 의도된 혼란을 가중시키고, 이 과정은 인간 면역력 결핍 바이러스 생물학과 닮아있다. 이 바이러스 또한 신체가 "자신과 자신이 아닌 것"을 구분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공격하기 때문이다."[각주:1]

 

난 에델만이 행하고 있는 침묵=죽음이라는 "텍스트"의 해체 자체가 딱히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이 슬로건이 운동권에 있어서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지에 대해서는 에델만이 제대로 감을 잡고 있지 못하는 것 같다. 첫번째로, 이 슬로건이야말로 정확하게 형상으로서 자신의 기능을 수행한다. 포스터에 나타나는 충격적인 이미지로서, 플래카드로서, 버튼으로서, 스티커로서, 티셔츠로서 말이다. 이 슬로건의 어필은 주로 시각적이고, 그렇게 때문에 이성logos을 우선시하는 행위에 동화되는 것이라고 보기가 매우 힘들다. 두번째로, 이 슬로건은 팩트의 담론이 아니라, 팩트가 경합하는 담론의 장 내에서의 직접적인 행동, 그리고 자신들의 요구에 대한 조직적이고 전투적인 발언을 요청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떤 청자를 염두에 두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 도대체 이 문학이론의 적용은 누구를 위한것인가? 학계 내에서 단순히 흥미롭게 봐 줄 사람들 말고 말이다.[각주:2] 침묵=죽음은 집단적인 정치 투쟁을 위해 만들어졌고 운용되고 있으며, 에이즈 활동가들의 공동체에게 있어 완전히 다른 종류의 문제들을 야기한다. 우리의 상징물을 점유하는 행위는 문자 그대로의 위험을 내포하고 있으며, 에델만의 텍스트 분석에서는 이러한 위험이 감지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바로 죽음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그리고 죽음이 우리에게 얼마나 깊은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서 우리 자신들은 침묵하게 되기 때문이다. 

 

 

나 또한 자신과 자신이 아닌 것의 구분, 그리고 내부와 외부 사이의 혼란에 대해 할 말이 있다. 허나 이 말은, '우리들', 즉 나의 에이즈 활동가 공동체를 '위해서' 하고 싶은 말이다. 애도와 투쟁성에 대해 쓰는 것은 내게 있어서 필수적이고 어렵다. 애도가 우리들로 하여금 문제적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을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라 함은, 에이즈를 직면한 게이 남성들을 말한다. 물론 게이 남성들만 에이즈를 직면하고 있는게 아니라는 말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만, 우리들이 직면한 어려움은 구체적이고 그리고 종종 독특하기 때문에, 그리고 내가 그러한 문제들에 대해 어느 정도 익숙하기 때문에, 나는 그러한 문제들만을 이 지면에서 다루고자 한다. 이 에세이는 나의 동료 활동가들과 친구들을 위해서 쓰여졌다. 이 에세이는 그들의 행동, 그들의 제안, 그리고 응원에 힘입어 쓰여졌다. 이들 중 많은 이들은 여성이기도 하다. 내가 거론하는 갈등들은 내 자신의 갈등들이기도 하며, 이러한 사실은 이 에세이의 몇몇 특정 결함을 보완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내 자신이 겪었던, 양가적 감정들이 엇갈리는 애도에 대한 짤막한 이야기로 시작해보려고 한다. 이 죽음은 에이즈로 인한 것은 아니었다. 1977년 아이다호에 있는 나의 가족들을 방문했을 때, 나의 아버지가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하였다. 아버지와 나는 피로하고 점진적으로 멀어져 갔던 관계에 있었었고, 당시 나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슬픔을 느끼거나 표현할 수가 없었다. 장례식을 치든 뒤 나는 뉴욕에 돌아가 내가 기획한 전시 오프닝에 참석하고, 일상의 삶을 다시 꾸려나갔다. 하지만 이로부터 몇주 뒤, 코에 흉터를 오늘날에까지 남긴 병이 터져버렸다. 내 왼쪽 눈물샘에 굉장한 염증이 생겼고, 이로인해 생긴 농양은 골프공만한 크기로 부풀어 내 왼쪽 눈을 가리고 얼굴을 완전히 망가뜨렸다. 농양이 결국 터졌을 때, 냄새가 굉장히 고약한 액체가 독성 눈물처럼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 사건 뒤로 나는 다시는 무의식의 힘을 의심하지 않게 되었다. 애도라는 것 또한 존중해야 할 정신적 과정이라는 사실 또한 의심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많은 에이즈 활동가들에게 있어 애도는 존중받지 못하는 것이다. 애도는 의심의 대상이다. "저는 수많은 추모 행사에 참여한 이들의 얼굴을 보면서, 왜 이러한 죽음들이 이들로 하여금 밖으로 나가 투쟁하게 하지 않는지, 그러므로 인해 이와 같은 죽음, 어쩌면 자신의 죽음을 막을 수 있도록 하게 하지 않는지 이해하기 너무 어렵습니다. 도시에서 일어나는 촛불 행진에 수많은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참여합니다. 이는 TV 카메라에 아주 잘 촬영되고 있고요. 하지만 정치적 조직에 참여할 때... 혹은 ACT UP에서 보여지는, 이제 막 형성되고 있는 시민 불복종 운동에 참여 할 때... 이 많은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 있는 걸까요?" 이 문장들은 에이즈 촛불행진으로 대표되는 침묵의 감각sense of quietism에 대항하는 래리 크레이머Larry Kramer의 최근 에세이에서 발췌한 것이다.[각주:3] 나는 여기에 올해 크리스토퍼 가Christopher Street 촛불 시위를 조직한 이가 발언대에 서서 앞에 모인 애도자들을 향해 던진 언사를 배치하고자 한다. "주위를 보세요!" 그가 말했다. "여긴 게이 공동체이지, ACT UP이 아닙니다!"[각주:4]

 

이러한 호통이 지레 가정하는 것은 애도하는 이들 사이에서 에이즈 활동가들은 찾아볼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이러한 슬픔의 의식적 표현방식이 게이 공동체의 좀 더 진실한 필요성의 대상으로 종종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정은 매우 확고하게 크레이머의 수사적 몰이해를 뒤집어, 반감으로서 표현된다. "저는 이런 슬픈 의식들을 깎아내리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크레이머는 쓴다.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이러한 의식들이 조금은 송장귀신같다고 여겨집니다."[각주:5]

 

공적인 애도 의식은 물론 고유의 정치적 힘을 가지지만, 활동가들의 시선에서 봤을 때 제멋대로이고, 감성적이고, 패배주의적이다. 크레이머가 암시하듯, 이런 점들은 미디어가 우리를 무력한 피해자로서만 보이도록 하는 것을 더 강화할 뿐이다. 노동운동권의 순교자 조 힐Joe Hill의 유언, "애도하지 말고, 조직합시다!"는 오늘날 집회에서도 외쳐지고 있으며, 뉴에이지에 맞춰 다음과 같이 살짝 변형되기도 한다. "당신의 슬픔을 분노로 치환합시다". 여기서 가정되는 것은 애도가 단순히 건너뛸 수 있는, 간단히 변환될 수 있는 정신적 과정이라고 보는 데에 있지 않다. 반대로, 억압에서 변화로의 움직임은 단지 활동가적인 대응이 가지는 정신/심리적 부분을 포함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궁극적으로 이 두 구호 모두 라이히가 프로이트에게 던졌던 질문, 즉 "불행은 어디에서 오는가?"에 대한 명확한 대답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에이즈가 어떻게 해석되는가, 즉 에이즈 위기가 단순히 자연적이고 우연적인 재난인가, 하필 이 시간대에 이 장소를 덮친 질병 신드롬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거대한 정치적 선동과 무관심의 결과, 즉 발생하도록 용인된 전염병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문제야말로 활동가들이 애도에 대해 갖는 반감을 부분적으로 좌지우지 할것이다.

 

하지만 이 큰 스케일의 정치적 문제점은 잠시 미뤄두고, 나는 운동과 애도의 내면적 대립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이 둘이 서로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은 프로이트가 묘사했던 애도의 작업, 즉 그가 "흡수"라고 불렀던 것의 서술에서 명료하게 드러난다. 프로이트는 "애도와 멜랑콜리아"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깊은 애도는 죽은 이에 관한 생각을 제외한 다른 모든 활동적인 노력으로부터 등을 돌리는 것"을 의미한다. "자아를 이렇게 제한하는 것은 애도에 대한 독점적인exclusive 헌신의 표현이며, 이는 다른 목적이나 다른 관심사를 향한 그 어떤 것도 남겨두지 않는다." 이러한 과정에 관한 프로이트의 서술은 잘 알려져 있지만, 나는 여기서 독점적인 특성을 강조하기 위해 다시끔 서술해 보고자 한다.

 

"현실에 대한 시험은 사랑의 대상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이 대상을 향했던 모든 리비도를 거두어들이게끔 한다. 당연히 이러한 요구에 마찰이 일어난다. 거의 보편적으로 사람은 절대 의도적으로 리비도 위치를 떠나려고 하지 않으며, 이는 대체제가 떠오르고 있을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마찰은 굉장히 강력하여 현실로부터 등을 돌리게 할 수도 있으며, 환영적인 희망-정신증이라는 매개를 통해 이 대상에 집착하게 만들 수도 있다. 가장 일반적인 결과는 현실로의 순응이 승리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것은 즉각적으로 순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일은 조금 조금씩, 그리고 매우 많은 양의 시간과 전이 에너지를 소비하면서 이루어지며, 이 모든 과정동안 잃어버린 대상의 존재는 정신 속에서 지속된다. 리비도를 대상과 연결시켰던 기억 그리고 희망 하나하나가 떠오르고 초전이hyper-cathected되며, 대상으로부터 리비도를 거두어들이는 데 성공한다."

 

에이즈의 시대에서의 애도에 관한 중요한 논문에서 마이클 문은 월트 위트먼의 "드럼-탭" 시들에 대한 독해를 시도한다. 여기서 문은 애도에 대한 프로이트의 관점이 게이들에게는 굉장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라 주장하는데, 이는 바로 프로이트의 애도가 정상성으로의 회귀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게이들에게는 이러한 정상성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레즈비안 그리고 게이들에게 있어서, 우리 중 많은 이들은 우리들의 삶의 굉장히 중요한 순간마다 '정상성'이라는 것으로부터 범주적으로 배제되는 경험에 이미 익숙하다. 우리들의 니즈를 인식시키고, 인정되게 하고, 수용되게 하고, 그리고 가끔은 충족시키기 위한 개인적, 그리고 집단적인 투쟁을 겪어낸 우리들에게는 프로이트적인 애도가 근본적으로는 정상화의 과정이고 그래서 사적이며, 결국 애도의 과정을 폄하하고 애도의 과정이 가질 수 있는 의미의 가능성을 차단해 버린다. 애도의 과정을 이해하도록 돕거나 더 풍부하게 만드는 대신에 말이다." 

 

아마도 그 어떤 레즈비언이나 게이 남성도 프로이트에 대해 문제없는 반응을 보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좀 더 핵심적인 구분을 유지해도록 노력을 들여야 한다. 정상화, 그리고 적응을 향한 야심은 프로이트가 아닌 후대의 "자아중심적" 수정주의자들이 갖고 있는 것이었으며, 이들이야말로 우리들을 향한 억압에 적지 않은 지분을 갖고 있다. 이는 프로이트의 사유에서 정상성에 대한 비전이 전혀 없다는 주장이 아니고, 단지 그 누구도  완전히 정상성을 달성하는 일이란 없다고 주장하는 것에 더 가깝다. 프로이트는 애도를 "삶을 향한 일반적인 태도로부터 떠나는 심각한 여정"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일반적인 태도가 이 맥락에서 뭘 뜻하는지는 나중에 애도가 끝나고 회귀할 상태를 프로이트가 어떻게 특정짓는지를 읽으며 쉽게 알아낼 수 있다. 매우 간단히, "현실로의 순응이 승리하는 것", 그리고 "자아는 다시 자유롭고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다른 가능성을 탐색하기 위해 "애도와 멜랑콜리아"를 넘어 다른 것들을 참조하기보다 (문의 경우 페티쉬즘을 제시하는데, 물론 1927년의 프로이트가 제시하는 페티쉬즘이 아닌, 우리의 동성애적 관계망을 죽은 이들까지 포함하도록 확장하는 의식적인 수단으로서의 페티쉬즘을 제시한다) 나는 프로이트의 좀 더 앞선 시기의 텍스트를 참조하여 오늘날 우리들 중 많은 이들이 경험하는 갈등상황에 빗대어 독해해 보고자 한다. 첫번째로, 두 가지 경고를 보낼 필요가 있다. "애도와 멜랑콜리아"는 애도 그 자체에 관한 이론이 아닌, 병리학적 애도, 즉, 멜랑콜리아에 관한 것이다. 그러므로 문은 프로이트의 애도의 관점이 일반적인 관점을 반복한다고 주장하는 점에 있어서 정확하다. 이 관점은 애도의 역학적 과정을 서술하는 데에 그친다. 두번째로, 프로이트는 우리들 사진의 애도 의식, 추모식, 촛불 행진에 대해 시사하는 점이 굉장히 적다는 것이다. 우리의 공동체적 애도에 관해서는, Names Project 퀼트 뿐이 애도의 정신적 메커니즘에 대해 뭔가를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사랑하는 대상과 연관된 순간들을 엮어낸) 각각의 퀼트 조각을 사랑하는 이와 함께 가졌던 희망과 기억을 끊어내는 행위와 초전이를 상징하는 것으로 읽는다면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공동의 행위와 다르게, 프로이트에게 있어서 애도란 고독한 작업이다. 그리고 우리의 문제점은 여기서 시작한다. 우리의 사적인 노력에 애초에 사회적 박탈이 이미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Policing Desire의 서문에서, 사이먼 워트니Simon Watney는 우리 중 많은 이들이 경험했던 것과 비슷한 장례식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이 사건은 그로 하여금 "그 때 그리고 거기에서" 에이즈에 관한 책을 쓰기로 결심하도록 했다고 그는 쓴다.

 

"[브루노의] 장례식은 런던 외곽에 있는 고대 노르망 교회에서 치뤄졌다. 에이즈에 관한 그 어떤 언급도 없었다. 브루노는 이름 모를 질병과 용감하게 싸우면서 죽었다. 사십 몇명 쯤이 모인 그 자리에서, 나 말고는 두 명의 다른 게이 남성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 둘 다 브루노의 애인들이었다. 브루노의 부모님을 제외한 장례식의 다른 그 어떤 사람들보다도 브루노와 가까운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슬픔은 남자다움이라는 제약 속에서 통제되어야만 했다. 질식할 것만 같은 (우리들이 참석한 장례식이 치뤄진 장소인) 교외의 삶. 그리고 브루노가 굉장히 긍정적이고 향상된 삶을 살았던 게이 남성으로서 실제로 살았던 세계에 대한 우리들의 앎. 이 둘의 차이가 만들어낸 역설, 바로 그 역설이 모든 것을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워트니의 일화는 격한 비판서를 쓰기로 한 그의 결심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지만, 바로 그 때문에 이 일화는 또한 애도에서 무엇이 일어난 것인지도 이야기 하고 있다. 그의 일화가 전하고 있는 것은 위선을 향한 사회의 요구가 이 세명의 게이 남성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슬픔을 숨기도록 한 순간 뿐만이 아니라, 게이 남성으로서의 브루노에 대해 그들이 갖고 있는 좋은 기억들이야 말로 그들이 연루되어 있는 사회적 불명예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억들이 상기될 때, 초전이 과정은 방어기재와 맞닥뜨릴 것이다. 이러한 방어기재는 초전이 과정이 통상적으로 발생하는 혐오로부터 브루노의 세계를 보존하려는 필요성인 것이다. "나의 친구는 브루노라고 불리우지 않았다." 워트니는 덧붙인다. "브루노의 아버지는 그의 진짜 이름을 쓰지 말아달라고 했다. 그래서 익명성이 완성되었다. 에이즈의 관한 커멘터리라고 행해지는 쓸데없는 헛소리들이야말로 또 하나의 '피해자'를 구축한다. 나 책에서 다룰 주제는 바로 이 헛소리이다. 에이즈에 관한 주제를 다루는 우리 사회의 모든 제도/기관을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들의 불협화음들 말이다."

 

그리하여 가장 최전선에 선 국제 에이즈 활동가들 중 한명이 투쟁을 시작하게 되었다. 책의 뒷부분에서는 더이상 브루노의 기억에 대한 내용이 등장하지 않는다. 아마 우리들 모두가 이런 이야기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에이즈 파동 때, 떠나간 친구들에 대한 기억과 희망들, 그리고 우리의 의식에 매일 가해지는 피격 사이에는 필연적인 연관성이 있었다. 상실의 시간을 겪어내는 사람들에게 이토록 야만적인 사회는 매우 드물다. "우리는 [애도에 대한] 그 어떠한 방해행위도 현명하지 않다고, 심지어는 해롭다고 본다"라고 프로이트는 경고한다. 하지만 에이즈 파동의 일상과 살아내는 그 어떤 이들에게 있어서도, 우리들의 애도행위를 향한 거침없는 방해행위는 <뉴욕타임즈>를 읽는 것만큼이나 일상적인 일이다. 우리가 직면하는 폭력은 가차없으며, 침묵과 배제의 폭력은 거침없이 드러나는 혐오와 대놓고 일어나는 살인의 폭력만큼이나 견뎌낼 수 없다. 이 폭력은 또한 떠나간 이들의 기억을 훼손하므로, 우리는 이 기억들을 다시 복원하기 위해 분노하며 일어선다. 우리 중 많은 이들에게 있어, 애도는 투쟁성으로 거듭난다. 프로이트는 애도가 방해받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지 않지만, 우리의 의식적 방어기재가 우리로 하여금 사회적 행동을 취하게끔 할 때, 이러한 방어기재들은 프로이트가 애도의 완성이라고 명명하는 현실로의 순응을 이미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어떤 변수에 맞서, 그리고 어떤 무의식의 영향을 동반하면서 이러한 과정이 완성되는 것인지 질문할 필요가 있다.

 

 

활동가적 충동은 애도의 과정 속에서 두번째 갈등으로 인해 더 강화된다. 프로이트가 설명한다. "현실은 대상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린다. 이는 리비도가 대상에게 부착되기 위해 활용한 각기 모든 기억과 희망에 적용된다. 그리고 자아는 자신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대상과 똑같은 운명을 맞이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의 기로에 직면하고, 살아있다는 사실에 대한 나르시즘적 만족감의 합에 의해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대상과 관계를 끊도록 설득된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과의 직면은 특히 오늘날 애도하고 있는 게이 남성들에게 있어 끔찍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 사라진 대상과 운명을 같이 할 것인가에 대해 내릴 우리들의 결정은 확실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에이즈에 걸린 사람, HIV에 감염된 사람, 그리고 자신의 혈청감염 상태에 대해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있어, 아직 오늘은 살아있다는 사실에 대한 나르시즘적 만족감은 이들로 하여금 죽은 이들에 대한 애착을 끊어낼 수 있게 할 것이다. 이는 무의식의 차원에서는 의심의 여지도 없다. 하지만 우리가 살기 위한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자신이 살아있다는 나르시즘적 만족감을 어떻게 분리해 낼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우리가 떠나간 이들과 동일시하고identify with 있는 순간에, 어떻게 자신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으로부터 자신이 살아있다는 나르시즘적인 만족감이 벗어날 수 있을까?

 

떠나간 친구들과 연인들의 기억을 지키는 일, 그리고 우리들은 생존할 것이라고 결의하는 일은 똑같은 하나의 요구로 수렴된다. 저항하라! 애도는 너무나 굴복과도 같이 느껴진다. 하지만 우리가 인식해야 하는 것은 우리들의 기억들 그리고 우리들의 결의 또한 생존자의 죄책감이라는 더욱 아픈 감정들을 야기한다. 이러한 죄책감은 우리들의 연인들과 친구들의 투병이 길어지면서 들었던 비밀스러운 소망, 즉, 이들이 빨리 죽고 살아남은 우리 나머지는 삶을 지속했으면 좋겠다는 그러한 비밀스러운 소망에 의해 더욱 악화된다.

 

이렇게 우리는 애도와 운동 사이의 괴리에 대한 우리의 (그리고 프로이트의) 개념을 수정한 뒤 다음과 같이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에이즈로 인한 죽음을 직면하고 있는 많은 게이 남성들에게 있어서, 애도 그 자체의 과정 내부에서 일어나는 의식적 갈등으로 인해 야기되는 것이야말로 투쟁성이다. 이러한 현상은 한편으로는 애도를 향한 "현명하지 않다고, 심지어는 해롭다고 보는 방해행위"로 인해 비롯된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애도자가 애도되고 있는 자의 운명을 함께 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해 내릴 수 있는 결론의 불가능성에 기인한다. 하지만 외부에서부터의 방해행위가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애도는 정신적인 과정이기 때문이다. 훨씬 더 어려운 것은 이러한 반응들이 어떻게 무의식에 의해 영향 받고 있는가이다. 하지만, 오로지 무의식의 역할을 인식하는 것을 통해서만 우리는 우리의 애도행위를 가로막는 외부 장애물과 우리 자신들이 애도에 갖는 반감 사이의 관계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또 나는 여기서 분명하게 해 두고 싶은게 있다. 이는 애도에 대해 우리가 갖는 조급함이 내가 이해하려는 운동에 짐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에이즈 운동의 "심리발생론" 따위를 제시하는 일에 하등 관심이 없다. 우리가 매일 직면하는 사회적 그리고 정치적 야만성은 우리의 투쟁성으로 하여금 그 어떤 설명도 필요로 하지 않게 한다. 오히려, 설명이 필요한 것은 래리 크레이머의 불평이 암시하듯, 바로 침묵이다.

 

매번 400명 정도의 인원이 정기적으로 참석하는 뉴욕의 주간 ACT UP 미팅에서, 나는 내 세대, 즉 스톤월 세대 참여자들이 한줌 정도밖에 안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여기에 모인 많은 이들은 스톤월 이후의 세대들이고, 게이 해방운동보다도 더 일찍 태어났다고 말하기 힘든 세대들이다. 이들의 상실은 내 세대가 겪는 상실과 한가지 매우 중요한 차이점을 갖는다. 작년에 이 젊은 이들중 한명은 내게 무언가를 말했고, 이는 모든것을 설명했다something that said it all. 우리는 게이 레즈비언 실험영화제에서 70년대 초반 영화 한 편을 보고, 영화가 끝나고 한 잔 하러 나왔다. 내게는 별 특이할 것 없어 보였던 섹스 장면에 이 젊은 남성은 매우 흥분되어 있었는데, 그는 바로 뒤에 이렇게 말했다. "정액 맛이 어떤 맛인지만 알 수 있다면 제 모든 걸 줄수 있어요. 그러니까 타인의 정액 말이에요." 이 말을 듣고 나의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두가지 이유에서였다. 하나는 이 젊은이가 아직 정액 맛을 모른다는 것에서였다. 그리고 두번째는, 나는 알고 있다는 것에서였다.

 

프로이트는 애도가 단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대한 반응만이 아니라, "자신의 장소를 점유하고 있는, 예를들어 조국, 자유, 그리고 이상 등의...어떠한 추상적인 것의 상실"에 대한 반응이기도 하다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문명화된" 목록 안에, 도착적인 (승화적인 것이 아닌) 성적 쾌락의 이상 또한 추가할 수 있을까? 죽음의 음울한 대가와 함께, 우리가 상실한 것은 성애적 가능성의 문화였다. 뒷방back rooms, 다방tea rooms, 서점, 영화관, 목욕탕, 트럭, 부둣가, 산책로, 모래사막. 우리에게 섹스는 어디에나 있었고, 우리가 모험하고 싶은 모든 것이었다. 골든 샤워, 수상스포츠, 펠라cocksucking, 리밍rimming, 섹스fucking 그리고 피스트퍽fistfucking. 절제되지 않은 우리의 욕망은 오늘날엔 금지되거나 라텍스로 인해 보호받게 되었다. 과거에 먹어도 안전했기 때문에 윤활제로 자주 쓰던 크리스코Crisco(역: 미국에서 매우 흔한 식용유 브랜드)마저도 고무를 분해하는 성분이기 때문에 더이상 쓸 수 없게 되었다. 섹스 토이는 추가적인 쾌락 강화제가 아니라, 안전한 대체제로 바뀌게 되었다.

 

문명의 법이 강제하는 생식기적 이성애성에 순응한 사람들은 우리가 상실한 선택지들이 추상적으로 보일 것이다. 에이즈 파동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널리 인식되지 않았지만, 이제 우리의 성생활은 매료와 질투를 동반한 공적 조사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 이러한 매료와 질투의 감정은 거짓스럽게 놀라운 척하는 태도로 일부분 가려지고 있다. (예를 들어 윌리암 덴네마이어 William Dannemeyer는 1989년 6월 26일 하원 기록에 내가 위에서 나열한 쾌락 행위의 목록을 입력했다) 우리가 떠나간 연인과 친구들을 그리워하는 만큼이나 제한없고 라텍스 없는 섹스를 그리워한다고 말하는 행위는 연대는 커녕 포용도 요청할 수 없게 할 것이다. 하지만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의 말마따나, 포용이란 "언제나 그리고 순수하게 명문적nominal"인 것이며, 단순히 "규탄의 좀 더 정교한 형태"일 뿐이다. 에이즈 파동은 그의 말을 입증했다. 어차피 우리의 쾌락은 절대 포용되었던 적이 없다. 우리는 쾌락을 가졌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쾌락 또한 애도하여야만 한다.

 

우리의 이상을 애도할 때, 우리는 떠나간 이들을 애도할 때와 마찬가지로 똑같은 비난을 마주하게 되고, 다른 종류의 심리적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우리가 가졌던 쾌락의 기억은 이미 양면성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많은 게이 남성들이 자신들의 과거 성생활에 대해 비굴하게 부인하는 행위는 이러한 양면성의 증거와도 같다. 우리들이 안전한 섹스 방식을 받아들여 널리 퍼트렸다는 사실이야말로 우리의 적응력에 대한 좋은 담보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마 우리가 상실한 성적 이상을 애도하는 도중 떠오른 대체적인 리비도 위치야말로 바로 안전한 섹스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서 게이 남성 세대들간의 차이점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지금 20대인 게이 남성들은 우리들의 성적 이상이야말로 그저 이상일 뿐이다. 절대 삼켜질 수 없는 정액 같은. 안전한 섹스를 행하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 반항의 행위이고, 안전한 섹스를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에이즈 운동에서 제일 덜 억제된 태도일 것이다.하지만 스톤월 세대의 많은 남성들, 즉 에이즈 파동으로 인해 가장 강하게 얻어맞은 게이 인구층에게 있어, 안전학 섹스는 반항이라기보단 포기의 행동에 더 가까울 것이고, 완성된 애도라기보다 멜랑콜리아에 더 가까울 것이다. 이러한 성향이 병리적이라는 암시를 하려는 게 물론 아니지만, 이러한 성향에는 프로이트가 묘사하는 멜랑콜리아의 많은 특징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그 원인에 대한 맥락에서 고려된다면 말이다. 

 

프로이트는 다음과 같이 쓴다. "멜랑콜리아를 발생시키는 사건들은 대부분 분명한 사례들, 즉 죽음으로 인한 상실을 넘어서며, 상처받고, 다치고, 소외되고, 방치되고, 실망하고 하는 상황들을 모두 포함한다. 이들은...이미 존재하는 모호함을 더 강화시킨다." 프로이트의 이론은 대상과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이지만, 이러한 상황들을 사회적 영역에서 풀어보면 이러한 설명은 매우 완벽하게 에이즈 파동 때의 게이 남성들의 환경과 딱 맞아 떨어진다. 특히 우리들이 겪는 거부당하는 경험과 자기의심의 맥락에서 보면 말이다. 프로이트의 분석에서 보면, 멜랑콜리아는 애도로부터 딱 하나의 단일한 특징으로부터 구분된다. 이 특징은 "자존감의 하락"이다. 애도하는 동안 세상은 쓸데없고 공허하다. 멜랑콜리아를 겪을 때 쓸데없고 공허해지는 것은 자아 바로 그 자체다. 그리고 이 자존감의 하락이야말로 "지배적으로 윤리적인 것"이다. 이는 윤리적 측면에서의 자신에 대한 불만족감이다. "환자는 자신의 자아를 가치없는 것, 그 어떤 노력도 행할 수 없는 것, 그리고 윤리적으로 혐오스러운 것으로 표상한다. 환자는 자신을 책망하고 비난하고, 그리고 자신이 추방되고 벌을 받게 되기를 바란다." "자기비판을 악화함에 따라 그는 자신을 한심하고, 자아도취적이고, 진실하지 못하고, 자립감 없으며, 자신의 약점을 숨기는 것만이 자신의 삶의 목적이라고 여긴다..." 더 나아가, 멜랑콜리아 환자는 "자신 내에서 그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감지하지 못하며, 자신의 과거로까지 자기비판의 대상을 확장함으로써 자신이 과거로부터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고 판단한다."

 

이러한 윤리적인 자기비하는 에이즈에 대한 몇몇 특정 게이 남성들의 반응을 통해서 매우 친숙한 것으로 다가온다. 이런 내용들은 너무 친숙하다. 왜냐하면 미디어는 이러한 이들의 생각을 게이 남성들의 대변인으로서 목소리를 부여하는 일에 굉장히 기뻐했기 때문이다. 랜디 쉴츠Randy Shilts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다. 그에 대해 다른 곳에서 다루긴 했어도, 그가 몬트리올에서 열린 제5회 국제 에이즈 학회의 폐막식 연설을 맏게 되어, 우리를 대변하는 인물로 선택되었다는 것은 이 맥락에서 볼 때 거론할 만한 일이다. 그는 자신을 초대한 이들을 위해 학회에 참여한 국제 에이즈 활동가들의 투쟁성에 대해 공격하기로 했다. 하지만 훨씬 더 비굴한 최근의 예도 있다. <무도회가 끝나고After the Ball>는 쉴츠의 <그리고 밴드는 계속 연주했다And the Band Played On>의 후속작으로, 매우 적합한 제목을 달고 나왔다. 전작의 내용은 권위와 함께 인용되며, 전작의 "0번 환자" 역시 자신의 불행한 역할을 후속작에서도 계속 수행한다. 책의 앞뒤장에는 "90년대의 게이 선언문"이라고 적혀있으며, 더블데이Doubleday에 의해 출판된 이 책은 두명의 하바드 출신 사회과학자들이 생산한 더러운 작업이다. 이들 중 한명은 높은 IQ를 가진 사람들을 위한 시험지를 만드는 일을 하고, 다른 하나는 자신들이 "조용한 다수의 게이들"이라고 명명하는 이들을 위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창출하는 데 특화되어 있다고 자부하는, 매디슨 가의 PR 컨설턴트이다. 사회생물학의 가장 최신 트렌드로 무장한 마셜 커크Marshall Kirk와 헌터 맷슨Hunter Madsen은 동성애공포증(그들은 이를 동성애혐오증Homo-hatred이라고 명명하며, 동성애공포증homophobia이 갖는 무의식적 층위를 부인한다)을 물리칠 프로그램을 고안해 냈다. 그들의 제안은 차이의 부정에 기인하는 미디어 캠페인에 의존한다. "좋은 시작점은 쿠어스Coor 맥주 광고를 아주 자세히 들여다 보는 것으로부터이다." 하지만 쿠어스 광고를 따라하는 것은 "긍정적" 이미지를 창출하는 것의 전부가 아니다. 이들에 의하면, 우리들은 "우리의 행위를 청결히" 해야 한다는데, 이는 "비주류 게이 집단", 즉 드랙 퀸drag queens, 래디컬 페어리즈radical fairies, 소년성애자pederasts 불 다이크bull dykes, 그리고 다른 쓰레기들로 이루어진 공동체를 척결하는 것을 의미한다.

 

분명, 우리는 이 책을 질병의 증상으로서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는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게이 문화에 가하는 일침에 있어서, 이 책은 프로이트가 지적했든 멜랑콜리아의 모든 특징을 지닌다. 더군다나, 이 책이 주장하는 비난들 또한 자기비난이다. "우리들, 즉 이 책의 저자들 또한 우리가 묘사하고 있는 더러움에 있어서 다른 게이들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죄가 있습니다"라고 하버드 보이들은 고백한다. "이는 이러한 악행에 관해 우리가 비판할 자격을 상실시키지는 못하고, 오히려 그럴 자격을 더 강화합니다." 이 저자들이 게이 남성들에게 가하는 비난은 전적으로 예측가능하다. 우리는 거짓말을 하고, 현실을 부인하고, 윤리관 따위는 없고, 자아도취적이며, 제멋대로고, 자기파괴적이고, 사랑할 수도 길게 유지되는 우정을 쌓을수도 없으며, 공공장소에서 과시욕이나 있고, 알콜과 마약을 남용하며 우리 공동체의 지도자들과 지식인들은 파시스트들이다. 여기 몇가지 예시들을 한번 보자.

 

저희가 처음으로 게이 도심 화류계로 뛰어들었을 때, 저희는 이들이 그래도 우리의 가치관이 아니더라도 어떤 가치관 정도는 있겠거니,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을 저희는 빠르게 폐기하게 되었습니다.

 

소시오패스적인 성격의 많은 학생들의 작업들이 그렇듯, 병리적 거짓말쟁이들은 놀라울 정도의 높은 확률로 게이입니다.

 

게이 바는 성적 경합의 결투장과 다름없으며, 이는 인간성에 있어서 가장 혐오스러운 부분만을 보여주도록 합니다. 위트와 쾌활함의 표면마저 다 찢겨나가 버린 채, 게이들은 단편적이고, 이기적인 성범죄자의 모습을 발가벗겨지듯 드러냅니다.

 

그러므로, "이성애자들은 게이들에 대한 고정관념과 거짓된 정보로 인해서 그들을 혐오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진짜 모습 때문에 혐오하는 것이다." 책에서 내가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은 이 구절이 유일하다.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이러한 선언은 또한 동성애공포증에 관한 그 어떤 사회학적 설명도 동성애 공포증을 설명하거나 반박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동성애공포증적 고정관념에 의존하여 우리들이 진짜로 누구인지 설명하는 커크와 맷슨은 동성애공포증에 대한 자신들의 이해를 펼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이 공포증과 완전히 동일시화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멜랑콜리아 또한, 동일시화와 동화의 정신적 과정에 의존한다. 이 지점을 강조하지는 않겠다. 얼마나 자기혐오가 극단적이든 간에, 나는 게이 남성들이 그 어떤 병리학적 증상을 앓고 있다고 혐의를 씌우는 것 자체를 싫어하며, 이는 매우 자명한 이유에서 비롯한다. 내가 여기서 보고자 하는 것은 몇몇 게이 남성이 우리들의 불완전하게 해방되었던 과거를 미성숙하고 부도덕한 것으로 봐야 하는 필요성과 병리적 애도 사이의 유사지점들이다. 하지만 나는 프로이트가 멜랑콜리아에 대해 내린 결론을 인용하는 것을 마다하진 않겠다. 이번엔 "자아와 이드The Ego and the Id"에서 발췌한 것이다. "이제 초자아를 지배하는 것은, 이전보다 더한, 죽음충동의 순수한 문화이다."

 

ACT UP, 즉 힘을 분출하기 위한 에이즈 연맹(AIDS Coalition to Unleash Power)은 1987년 3월, 뉴욕의 게이 그리고 레즈비언 커뮤니티 센터에서 행해진 래리 크레이머의 연설에 대한 응답으로 설립되었다. 조롱과 몰이해를 혼합하는 방식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크레이머는 다음과 같이 꾸짖었다. "저는 가끔 우리가 죽음 충동death wish을 갖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르는 죽기를 바라야만 한다고 생각이 돼요. 저는 6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왜 우리가 뒷짐지고 앉아서, 제대로 된 싸움 한번 없이 문자 그대로 한사람 한사람씩 나가 떨어지도록 내버려 뒀는지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현실부정이라는 말을 들은적이 있지요. 하지만 이건 현실부정보다 훨씬 더한 겁니다. 이거야말로 죽음 충동입니다.

 

약 2년뒤, <네이션Nation>지에서 에이즈 운동에 대한 악의적이고 이이제이적인 공격을 담은 기사가 출판되었다. 여기서 데럴 예이츠 리스트Darrel Yates Rist는 ACT UP을 전적으로 거짓된 방식으로 비난한다. ACT UP이 에이즈를 제외한 그 어떤 게이 사안도 무시한다고 말이다. 샌프란시스코의 텐더로인 지역을 방문했던 일을 떠올리면서 그는 집을 나온 10대 게이들과 성노동자들을 만난 일을 회고한다. 그는 이렇게 쓴다. "이 도망나온 10대들과 밤을 같이 보내고 난 다음날, 나는 카스트로에서 저녁을 먹으며 다른 방문객들이 에이즈, 죽은 이들, 그리고 죽어가는 이들 이야기 말고 그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는 걸 들었다. 이들 머릿속에는 이 도시의 모든 게이 남성에게 해당되는 현상과 다름없었다. 트렌디한 히스테리이다. 그들 중 한명은 '이것이야말로 투쟁할 가치가 있는 유일한 거야"라고 실제로 말했다. 얼마 전에도 나는 극작가이자 에이즈 활동가인 래리 크레이머가 이와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을 들었었고, 그때, 그 질식할 것만 같았던 순간에, 드디어 우리가 자살적으로 몰아져 가는구나, 우리의 죽음 충동이 드디어 우리를 죽게 만들겠구나, 라고 느꼈다." 바로 이 두 가지 죽음 충동 혐의의 사이에서 (하나는 우리가 아직 에이즈 활동가가 아니라는 사실에서 기인하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이제 전부 에이즈 활동가가 되었다는 사실에 기인하는) 나는 나의 글의 마지막 부분들을 맥락짓고 싶다.

 

내가 여태껏 서술한 것만 보면 마치 에이즈 전염병 사태로 인해 크나큰 상실을 겪은 게이 남성들의 반응들이 굉장히 예측 가능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과 매우 다르다. 그렇게 생각된다면, 그것은 내가 프로이트의 "애도와 멜랑콜리아"를 우리들의 경험에 대해 내가 아는 것에 반해서 굉장히 의도적으로 독해한 것의 결과일 뿐이다. 우리들의 갈등에 관한 온전한 깊이와 다양성에 관해, 혹은 가능할 수 있었던 다른 결과들의 다성성에 관해서는 난 전혀 다루지 않았다. 이 결함을 바로잡기 위해 내가 제공하는 것은 단순한 목록 뿐이며, 이 목록에 우리가 직면한 문제점들에 대해 그 어떤 사람도 더 추가할 수 있을 것이다.

 

에이즈로 인해 죽어가는 사람들은 매우 젊고, 이런 죽음과 직면하고 있는 우리들 또한 매우 젊으며, 이러한 큰 상실을 거의 아무 준비없이 직면하게 되었다. 죽음의 숫자는 생각조차 불가능한 것이다. 연인들, 친구들, 지인들, 그리고 공동체 구성원들이 병에 걸려 죽었다. 우리들 중 많은 이들은 100명이 넘는 이들을 잃었다. 이러한 죽음들을 차치하고서도, 우리는 계속 이 소름끼치는 질병과 싸워갔다. 간병자로써, 매우 오랜 기간동안, 많은 횟수의 병문안을 다니며, 감정적으로 병자들을 지탱하고, 정말로 부족하고 비인간적인 의료체계와 공공체계와 씨름해가며, 다양한 방법의 실험적 테라피를 계속 파악하 나가면서 말이다. 우리들 중 몇몇은 의사들보다도 에이즈에 관한 복잡한 약물들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 다른이들을 간병하고 잃어가는 동안, 우리는 우리들 자신의 HIV 질병에 관한 치료에 대해 알아보고 결정을 고민해야 할 필요도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우리 자신들의 건강에 대한 불안과 직면해야 했다.

 

질병과 죽음이 야기한 고난을 거치는 동안, 사회는 우리에게 매우 적은 지원을 제공했으며, 아예 인식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오히려, 우리는 폄하되고, 책임이 물어지고, 배제되고, 비난받았다. 우리는 차별받았고, 집을 잃고 직장을 읽고, 의료 그리고 생명보험을 거부당했다. 이 질병과 싸우도록 만들어진 모든 공공기관은 대응이 느렸고, 전적으로 실패했으며, 그게 아니라면 매우 의도적으로 반생산적으로 나왔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우리들 자신을 돕고, 간병하고, 교육시키고, 그리고 심지어 우리들만의 치료법 연구를 행하고 기금을 지원할 수 있는 기관들을 꾸려나갔다. 우리는 박살난 우리들의 공동체와 문화를 재건하고, 성관계를 다시 구축하고, 성적 쾌락을 다시 개발해 나갔다. 이 짧은 시간동안, 그리고 어마어마한 적대감 속에서 우리가 이룬 엄청난 성과에도 불구하고, 주류 미디어는 아직도 우리들을 병상 위에서 썩어가는 피해자로 그려나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재현의 전쟁 또한 벌여야 했다.

 

좌절, 화, 분노, 격노, 불안, 두려움, 공포, 수치심, 죄책감, 슬픔, 그리고 절망. 우리가 이러한 감정들을 느끼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더 놀라운 일이 무엇인가 하면, 우리는 많은 경우 이런 감정들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로지 감정없는 마비감과 지속적인 우을증만을 앓는 우리들 중 일부눈, 전투적인 격노를 느끼는 것이 상상 불가능한 일일수 있다. 공포로 마비되거나, 회한으로 가득차거나,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들처럼 말이다. 이러한 반응들을 비난하는 것은 (우리들만의 윤리주의의 한 형태) 우리가 견뎌왔던 폭력의 정도를 부인하는 일이다. 이보다 더 중요하게, 이러한 비난은 정신적 삶의 근본적인 사실을 부인하는 일이다. 폭력은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가하는 것이기도 하다.

 

프로이트의 후기 저작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이론적 개념은 죽음 충동이었다. 생존 충동과 경합하며 공격성과 자기공격성을 구성하는 그런 충동 말이다. 이 개념을 두고 라이히는 프로이트와 갈라섰으며, 프로이트가 결정적으로 인간 불행의 사회적 원인들을 간과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라이히와 초기 정치학적 정신분석학을 지지하던 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재퀼린 로즈는 우리가 정신적 삶과 사회적 삶의 관계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로지 죽음충동을 통해서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이를 통해 "폭력을 어디서 찾을 것인지"를 결정하려 한다는 것이다. 에이즈 활동가들이 모두 죽음충동을 갖고 있다는 대럴 예이츠 리스트의 대중심리학적 억측에 반해, 나는 정확이 이 반대로인, 즉 우리가 죽음 충동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주장하는 바이다. 말인즉슨, 우리는 우리의 불행이 외부는 물론이고 내면에서부터 기인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부인한다는 것이고, 우리의 불행은 정신적인 것은 물론 사회적 갈등의 결과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아니면, 로즈가 서술하는 것처럼, 우리의 불행은 "내부 혹은 외부, 정신적 혹은 사회적인 것에 위치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이러한 이분법 그 자체에 기인하는 결과인 것 같아 보인다." 모든 폭력을 외부적인것으로 돌림으로써, 그리고 그것을 "적" 기관들과 개인들로 대상화함으로써, 우리는 폭력을 정신적인 측면으로부터 설명하는 작업을 거부하며, 그것에 의해 야기되고 영향받는다는 사실을 거부한다.

 

사례를 들어 보면 나의 주장이 좀 더 명료해 질 수 있겠다. HIV 항체검사에 관한 사안은 에이즈 운동이 태동했을 때부터 에이즈 활동가들의 핵심적 관심사였다. 모든 의무적 그리고 기밀 검사 도입 시도에 반해 우리가 주장했던 것은 자발적이고 익명적인 검사에 대한 절대적인 권리였다. 1989년 몬트레올에서 열린 국제 에이즈 학회에서 뉴욕시 보건위원장 스티븐 조셉은 면역체계 검진과 조기 치료법이 HIV환자들의 수명을 늘리고 생명을 살릴수도 있다는 사실에 의거해 의무적인 접촉자 추적조사를 포함한 기밀 검사 도입을 주장하였다. 그의 시니컬한 제안에 대해 우리는 즉각적으로 모든 제대로 된 반론을 제기하였다. 오로지 익명성만이 사람들로 하여금 검사를 받게 할 것이다. 뉴욕이 지금 제도를 따라서라도 검사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운영하는 검사소는 그 숫자가 극히 적으며, 감염 판정이 난 사람들을 위해 간병하는 인력이 지금 상태로는 턱도 없이 모자라다는 것이다. 검사, 상담, 검진, 그리고 조기치료 등은 물론 중요하다는 것에 동의하면서도, 우리는 익명 검사소 숫자의 증설, 검진과 치료를 위한 동네 워크인 HIV 병원 체계 구축을 요구했다. 우리는 우리의 저항과 요구에 대해 전적인 자신이 있었다. 우리는 스티븐 조셉이 끌던 어그로의 역사에 대해 알고 있었고, 어마어마한 감염 인구를 위해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있어서 시 정부가 깊은 실패한 것도 알고 있었으며, 그리고 우리는 조기치료의 이점뿐만이 아니라, 정확히 어떤 종류의 치료 방법이 가능한지에 대해서도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견고한 지식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한가지를 잊고 있었다. 우리들 자신이 검사에 대해 갖는 양면적 감정 말이다. 혹은 만약 감염 판정이 났을 때, 치료에 관한 어려운 결정들을 하는 것에 대해 갖는 양면적 감정들. 검사, 치료시설의 좀더 폭넓은 증설을 요구하는 토론의 시간동안, 우리들은 언제나 우리들 자신을 위해 그러한 치료와 검사를 활용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우리가 자신들의 불안감과 망설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조셉의 주장과 거기에 맞서 우리가 그의 계획을 성공적으로 저지한지 바로 뒤, 월요일 밤의 회의에서 ACT UP의 치료법 및 데이터 의원회의 마크 해링턴Mark Harrington이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저는 여기서 폐렴(PCP)으로 인해 쓰러진 세 분을 개인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운동이 기회성 감염에 대한 예방법이 아니라는 걸 깨달아야 합니다. 물론 운동은 분무식 펜타미딘aerosolized pentamidine(PCP를 예방하는데 쓰는 약물)과 시너지를 낼 수는 있겠습니다만, 에이즈에 감염되는 것을 막아 주지는 않습니다."

 

프로이트의 죽음충동 개념 인용을 통해, 나는 죽음을 향한 충동이 우리로 하여금 질병을 예방하는 것을 직접적으로 거부하게 만든다고 단순하게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나는 죽음 충동을 무시함으로써, 즉 모든 폭력을 외부적인 것으로 치환함으로써 우리는 자신들을 직면하는 것, 우리들의 양가적인 감정을 인식하는 것, 우리의 불행은 우리 자신이 초래한 부분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에 실패한다는 것을 이야기 하려는 것이다. 나의 사례로 돌아와보자. 뉴욕 시의 무너지고 있는 의료체계와 사악한 보건의원장만이 우리들의 운명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 무의식적인 갈등이 의미하는 것은 우리 자신들도 결정을 내릴 수 있고 (혹은 결정을 내리는 데 실패하고), 그 결과가 매우 치명적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스티븐 조셉에게 우리의 격노를 돌리는 것 또한, 매우 정당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들 자신의 거부 메커니즘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이로 인해 우리들로 하여금 지금 우리가 내릴 수 있는 모든 결정을 내리고 있다고 자신을 설득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재차 명확히 하고자 한다. 우리의 투쟁성이 위험한 거부 메커니즘의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은 운동의 정당성을 무력화하려는 의도가 전혀 아니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사회가 우리에게 가하는, 입에도 담을 수 조차 없는 폭력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사실에는 질문의 여지 따위가 없다. 하지만 이 사회의 일부인, 정신적 매커니즘을 통해서도 폭력이 뿌린 씨앗의 끔찍한 열매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이해하게 되면, 우리는 우리의 격노와 함께, 우리의 공포, 죄책감, 그리고 깊은 슬픔 또한 인식할 수 있다. 투쟁성, 당연하지, 하지만 애도 또한 마찬가지. 애도와 투쟁성.

 


 

  1. Lee Edelman, "The Plague of Discourse: Politics, Literary Theory, and AIDS" South Atlantic Quarterly 88, no.1 (winter 1989), 313-4. [본문으로]
  2. 이 구절에 대한 정정은 이 책의 서문 각주 24번 참조. 침묵=죽음이라는 슬로건에 대한 다른 종류의 비판에 대해서는 Stuart Marshall, "The Contemporary Use of Gay History: The Third Reich", How Do I Look? Queer Film and Video, Bad Object Choices 편 (Bay Press, 1991), 65-102 참조. Douglas Crimp, with Adam Rolston, AIDS Demo Graphics (Bay Press, 1990)도 참조. [본문으로]
  3. Larry Kramer, "Report from the Holocaust" Reports from the Holocaust: The Making of an AIDS Activist (St Martin's Press, 1989), 264-5. [본문으로]
  4. Red Maloney가 남긴 이 언사는 Naphtali Offen이 Outweek지 (4호, 1989년 7월)에 기고한 편지의 6쪽에서 다루는 주제이다. [본문으로]
  5. Kramer, "Report from the Holocaust", 264. [본문으로]